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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친노 같은 부활을 꿈꾸지만...

황교안 대표를 탄생시킨 자유한국당 친박계는 ‘폐족’이던 친노무현계가 당과 정권을 장악한 선례에 주목한다. ‘친노 부활 시나리오의 친박계 버전’은 실현 가능할까?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9년 03월 11일 월요일 제5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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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황교안 체제’ 등장은 당연해 보인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자유한국당 다수파인 친박계가 2020년 총선 공천 경쟁을 염두에 두고 옹립한 대안이었다. 황 전 총리가 1월15일 입당한 직후, 한 친박계 의원은 “50%는 확보했고, 나머지 후보들이 남은 50%를 놓고 싸우는 구도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2·27 전당대회 결과와 같았다. 황교안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55.3%를 얻어 당심(黨心)의 절반을 가져가면서 당 대표로 뽑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황교안 당 대표 시대는 역사의 농담처럼 들린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은 한국 정치의 보수 우위 시대를 끝장낸 대사건이었다. 역대 보수 정당 사상 최대의 분당 사태도 겪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당의 얼굴로 골랐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30% 반영하는데, 이 여론조사에서 황 후보는 37.7%를 얻었다. 탄핵 찬성파를 대표해 전당대회에 나선 오세훈 후보가 50.2%로, 국민 여론에서는 훌쩍 앞서 나갔다.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의 괴리가 선명하게 확인됐다.

친박계는 믿는 구석이 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친노의 전례가 있다”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노무현 정부가 끝난 후 ‘폐족’이라고까지 불렸던 친노무현계가 결국 부활하여 처음에는 당을, 결국에는 정권을 장악한 선례가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친노의 정치 궤적은 겉보기에 친박계와 유사한 듯하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 극심한 민심 이반에 시달리면서 정권을 놓쳤다. 이 과정에서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집단 탈당 사태를 겪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민주당계 정당이 얼추 복원된 뒤에도, 친노는 한동안 2선 후퇴를 강제당했다.


ⓒ시사IN 조남진
2월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전 총리가 당기를 들고 인사하고 있다.


이후 친노의 부활은 극적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빠르게 민심을 잃었다. 집권 한나라당은 중간평가 격이었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패했다. 위태위태하던 민주당은 이 승리로 당을 추스르는 데 성공한다. 이 지방선거 때 친노 핵심인 안희정·이광재·김두관 세 후보가 충남·강원·경남 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당 밖 친노 그룹은 ‘혁신과 통합’을 만들어 민주당과 통합을 이뤄낸다. 이를 통해 친노가 다시 민주당 주류로 떠오르고,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정치 신인 문재인 변호사가 대선 주자로 부상한다.

친노가 ‘폐족’을 자처하던 2007~2008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다음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벌어졌다. 지금 친박계는 이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탄핵과 분당 사태로 2선 후퇴를 강제당했던 친박계는 이제 당권을 접수하는 단계까지는 왔다. 이 친노 부활 시나리오의 친박계 버전이 가능할까. 간단치 않다. 첫눈에 보이는 공통점 뒤로는 결정적 차이들이 있다.

첫째, 민심 이반의 성격이 다르다. 노무현 정부가 겪은 민심 이반은 ‘무능에 대한 실망’에 가까웠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겪은 민심 이반은 ‘헌정체제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는 선고’였다. 헌법에 따라 권력을 운영하지 않은 세력에 두 번째 기회가 가기는 어렵다. 친박계는 이 결정적 차이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황교안 대표는 2월19일 당 대표 후보 텔레비전 토론에서 “탄핵이 타당한지 동의할 수 없다”라고 말했고, “탄핵이 어쩔 수 없었는가?”라는 사회자 질문에 ‘엑스(X)’ 팻말을 들었다. 탄핵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강성 지지층 성향에 맞춘 답변을 내놓았다.


ⓒKBS 화면 갈무리
자유한국당 당 대표 후보 TV 토론에서 ‘탄핵이 어쩔 수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김진태·황교안 후보는 ‘X’, 오세훈 후보는 ‘O’ 팻말을 들었다(왼쪽부터).

탄핵은 헌정체제를 운영할 자격에 대한 유권자의 밀도 높은 판단이었다. 여느 정치 이벤트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탄핵 효과가 희석되리라는 친박계의 기대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얻은 정당 득표는 700만 표(27.8%)였다. 탄핵 직후 치른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얻은 785만 표(24%)와 큰 차이가 없다. “탄핵 부정”이라며 여론이 들끓자 다음 날 토론에서 황 후보는 “O·X 답변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세모(△)로 답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 이도 저도 아닌 세모(△)는 자유한국당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당 대표가 되려면 탄핵 반대 강경파를 잡아야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당 대표는 700만 표를 뛰어넘기 어렵다.

황교안 체제의 운명을 결정할 변수는?

둘째, 부활의 경로가 다르다. 친노는 민심에서 먼저 복권을 받은 뒤에 당을 장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빠르게 민심 이반을 겪었다. 거기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을 택하면서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진다. 이 흐름 위에서, 2010년 지방선거 때 안희정·이광재·김두관 친노 트로이카가 승리를 거둔다. 민주당의 전통적 약세 지역인 충남·강원·경남이었다. 유권자들이 이 세력에 다시 기회를 줄 의사를 보였다. 친노의 당권 장악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것은 2012년 ‘혁신과 통합’ 기획과, 2015년 문재인 당 대표 선출로 완성된다.

친박계는 정반대 경로를 밟고 있다. 친박계의 복권은 민심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민심이 자유한국당을 떠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도 보수 유권자층이 대부분 이탈하면서, 자유한국당 당권 경쟁은 강성 우파 여론이 과잉 대표되는 구도로 흘러갔다. 당내 선거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계 후보가 민심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적은 없다. 이 경로 차이는 정치세력의 궤적을 다르게 그린다. 민심을 먼저 얻고 당심을 잡으러 가는 정치세력은 둘을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거기에 자신들의 승리가 걸려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친박계처럼 강성 당심을 먼저 얻은 정치세력은 당심과 민심이 상충하는 딜레마를 다루기가 무척 어렵다.

셋째,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노 역시 부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노가 부활했다는 평가에는 착시가 섞여 있는데,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무능에 대한 실망’ 정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은 문재인 후보 지지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고 제3의 대안을 찾아 헤맸다. 그 에너지가 제3 후보를 만나 폭발한 것이 ‘안철수 현상’이었다.

이 교훈은 현재 친박계에도 적용된다. 문재인 정부가 민심 이반에 시달린다고 해도, 그렇게 떨어져 나온 유권자층이 자유한국당으로 곧장 돌아서리라는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에너지는 2012년처럼 제3 후보를 찾아 폭발할 수도 있고, 대안 부재에 분노하며 아예 선거에서 퇴장할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 후보가 대안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핵심으로 제기될 것인데, 이 문제에 어떤 답을 내놓느냐가 황교안 체제의 운명을 결정할 전망이다. ‘이도 저도 아닌 세모(△)’를 극복할 수 있을지부터가 당장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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