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하노이 정상회담 준비 과정과 회담 이후 직간접으로 전해진 내용을 종합해보면, 북·미 양측은 구체적인 합의사항까지 논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회담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번 회담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북한이 미국이 기대했던 수준의 비핵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미국에 요구한 대북제재 완화의 폭이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특히 양측은 북한이 요구한 제재 완화에 관한 부분에서 의견이 갈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종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미국에 완전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3월1일 자정께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Reuters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오른쪽은 폼페이오 국무장관.


그런데 리용호 외무상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하나는 북한은 왜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가 아닌 ‘유엔 대북제재’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은 걸까? 또 북한은 유예나 면제와 같이 상대적으로 유엔 안보리나 미국이 수용하기 쉬운 수위의 ‘제재 완화’ 대신 가장 높은 수위의 제재 완화 조치인 ‘해제’를 요구한 것인가?

현재 미국 국무부가 홈페이지에 게시 중인 대북제재 법안은 7개이지만 이와 관련된 간접적인 조항을 담고 있는 법을 모두 더하면 16개에 이른다. 여기에 각종 행정명령과 행정규제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북한이 제재를 피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유엔 제재보다 미국 독자 제재가 훨씬 촘촘히 짜여 있고,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더 크다. 그래서 북한이 미국 독자 제재가 아닌 유엔 제재를 협상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다소 의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독자 제재의 구조와 내용을 자세히 보면 북한의 전략이 드러난다.

미국 법안에는 제재 조치를 유예하거나 면제, 나아가 해제를 할 수 있는 조항도 있다. 북한은 두 가지 이유로 미국 독자 제재의 유예나 면제가 바람직한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첫째, 유예나 면제는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조치이므로 언제든지 제재가 다시 복원될 수 있다. 둘째, 한시적 조치에 불과한 유예와 면제를 받기 위해 북한이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들이 까다롭다.

예를 들어 ‘대북제재 및 정책 강화법’은 대북제재를 유예하기 위해 미국 달러화 위조활동 중단, 돈세탁의 중단 및 재정투명성 강화, 유엔 안보리 결의안 준수의 검증 조치, 납치 억류 중인 외국인들의 송환, 인도적 지원의 배분과 감독에 관한 국제적 규약 준수, 정치범 수용소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검증 조치 등 6개 항목의 조건을 북한이 충족했다는 사실에 대해 행정부가 의회에 입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 처지에서는 가역적인 제재 완화 조치를 얻기 위해, 북한이 이행해야 할 조건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고 보았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의 상응조치로 불가역적인 제재 완화를 원했을 것이고, 이는 제재 조치의 해제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연합뉴스북한 리용호 외무상(오른쪽)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3월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렇다면 북한이 유엔 안보리 제재의 해제를 요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역시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미국 독자 제재의 해제는 유예와 면제보다 더 높은 수준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대북제재 및 정책 강화법’에 따르면 유예와 면제를 위한 6가지 조건의 충족에 더해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핵·생물화학·방사능 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대량살상무기 운반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 개발에 관한 모든 프로그램 폐기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전원 석방과 평화적 활동에 대한 검열을 중단하며, 억류된 미국인에 대한 해명과 송환 조치에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고 판단되어야 해제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둘째, 미국 독자 제재의 해제는 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다시 말해 연방의회의 승인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현재 미국 연방의회의 지형을 보면, 비록 지난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공화당이 연방 상원의 다수당 지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북한 문제에 관하여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모두 강경한 자세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목표로 삼았다면, 조건이 까다롭고 성사 가능성이 낮은 미국 독자 제재의 해제보다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통한 유엔 제재 해제라는 우회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절차·실효 양면에서 효과적

유엔 제재 해제는 북한에게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다. 유엔 안보리에 결정 권한이 부여되는 유엔 제재 완화는 사실상 미국 행정부의 재량권이 크게 발휘되므로 상대적으로 협상의 가능성이 크다. 또 유엔 결의안은 유엔 회원국들에게 강제적인 구속력을 지닌다. 유엔 결의안으로 대북한 제재가 해제될 경우 미국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들은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유엔 제재의 해제는 절차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쉬우면서 실효적인 면에서 미국 독자 제재의 해제와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북한은 해제를 요구하는 제재 항목 대상으로 미국 처지에서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라고 판단한 민수경제 분야를 선택했다. 북한은 일반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민수경제 분야에 대한 제재 해제 요구가 대내외적으로 명분이 있고, 미국 처지에서 양보 가능성이 높은 협상 카드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요구는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자립경제를 강화하고 인민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등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드러냈다. 북한이 빠른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출입과 해외 자본의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대북제재 체제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북한이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준비했던 것보다 높은 수준의 요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문제가 단시간에 해결될 수 없다면, 제재 문제도 한 번에 풀기 어렵다. 다행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종료 이후에도 양측은 재협상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북·미 양측이 이번 협상을 통해 서로의 구체적인 요구 수준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협상 카드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자명 김영준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