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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과의 사투 125년 맥주를 캔에 담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2019년 03월 14일 목요일 제5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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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순간 인류가 사라진다면 도시는 어떻게 변할까? 전문가들은 인간의 돌봄 없이는 문명 구조물이 금세 허물어질 것이라 전망한다. 다리는 무너지고 동상은 바스러지며 자동차나 배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금속 때문이다. 단단하고 영원할 것 같은 금속은 사실 매우 연약하고 유한한 물질이다. 부식, 그러니까 ‘녹’을 관리하지 않으면 금속으로 쌓아 올린 인류 문명은 의외로 쉽게 무너져 내린다.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어느 날 중고 요트를 구입했다가 녹의 위력을 실감했다. 겉보기에 멀쩡했던 요트의 속은 이미 골병(녹)이 퍼져 있었다. 그러다 생긴 궁금증. “대체 녹은 인류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일까?” 단순해 보였던 질문은 취재와 분석을 거쳐 충격적인 결말로 이어진다. 인간은 현대문명을 이룩한 이래 단 한 번도 녹의 위협에서 안전했던 적이 없다. 공학자들은 끊임없이 녹과 싸워야 했다. 덜 부식하는 금속을 개발하고, 좀 더 안전한 코팅 방법과 부식 예방책을 세웠다. 이미 부식하기 시작한 금속을 관리하는 방식도 시간이 지나며 발전했다.

챕터마다 녹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여기에 현장 취재, 기술사(史)가 어우러진다. 음료 판매용 알루미늄 캔이 탄생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공학자들은 맥주를 캔에 담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무려 125년 동안 녹과 사투를 벌였다.” 녹이 얼마나 일상 가까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도 명암이 있다.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캔을 코팅하는 과정에서 환경호르몬 위협이 발생한다.

저자의 탐구는 현대 문명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녹이 그토록 위협적이라면 정부·산업·교육은 녹을 다루는 일에 진지하게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쓰다 버리고(허물고) 다시 사면(지으면)’ 된다고 여기는 문화가 미국 사회에 여전히 팽배해 있다(한국이라고 다를까). 읽고 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재미와 지식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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