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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북·미 담판’ 이렇게 엇나갔다

비건 특별대표팀은 사전 실무협상에서 북한 측에 완전히 밀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받을 수 없는 안을 들고 왔다. 판이 깨지면서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통한 부국의 길’을 거부한 셈이 되었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9년 03월 11일 월요일 제5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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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7~28일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부터 아슬아슬한 장면이 없지 않았다. 지난 2월6일 북한이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특별대표)를 평양으로 불러들인 게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당시 비건 특별대표는 실무회담 장소를 판문점으로 예상하고 서울을 찾았다. 북한이 평양으로 전격 변경해 통보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과의 회담 경험이 많은 국내 대북 전문가 일부는 북한의 이 같은 행태를 통해, 북·미 회담의 전도를 불길하게 보기 시작했다. 협상 상대와의 약속을 깨고 자신들의 ‘안방’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북한의 협상 수법 중 하나다. 상대의 접촉 요구를 의도적으로 피해 몸을 달게 한 뒤 제안을 하는 식이다. 비건 특별대표처럼 북과의 협상 경험이 없는 이들은 당하기 십상이다.
ⓒReuters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 두 번째)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세 번째)이 2월28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 같은 행태가 단순한 기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 복스(VOX)가 2월26일(현지 시각) 보도한 사전 실무합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복스는 ‘북·미 협상 상황을 잘 아는 2명의 소식통’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2월27~28일 실제 담판에서 합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제했지만, 이 내용은 비건 특별대표가 주도한 북·미 간 실무 협의에서 진짜 합의한 내용이고, 북한이 그 합의를 고집한다면 정상 간의 담판은 보나마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받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랬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서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미국은 남북 경협을 위한 일부 제재 완화, 연락사무소의 교환 진출, 한국전쟁 종결을 상징적으로 알리는 평화선언 체결에 합의한다.’ 복스는 “이렇게 되면 김 위원장에게는 대단한 승리이지만 미국에게는 꼭 그렇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얻는 것보다 내주는 것이 너무 많다”라고 지적했다. 


ⓒ시사IN 이명익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월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과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해 특별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부터 시작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출발점은 영변의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의 맞교환이었다. 이것을 북·미 협상의 기본 출발점으로 전제한다면, 폼페이오 4차 방북 이후 약 5개월간 양국은 ‘플러스알파(+α)’를 두고 밀당을 거듭했다. 북한은 항상 주장해온 대로 제재 완화를 요구했고, 미국은 영변 이외 지역 핵시설(예를 들면 태천의 200㎿ 원자로 같은 플루토늄 생산시설이나 강선 등에 숨겨진 것으로 알려진 우라늄 농축 시설)이나 본토의 직접적 위협으로 여기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관련한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스가 전한 ‘남북경협을 위한 일부 제재 완화’나 ‘연락사무소의 개설’은 북한이 영변 이외 지역의 핵시설이나 ICBM 관련 양보 조치를 플러스알파로 내놓을 경우 미국이 내려 했던 카드이다. 실제로 미국은 연락사무소의 평양 진출을 계기로 테러지원국이나 적성국교역법의 일부 내용을 동시에 해제해 미국 기업 진출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유엔 제재 내용 중 인도적 지원의 범위에 해당하는 조항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겠다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경협과 관련해서도 금강산 관광 제재를 풀어 북한의 현금에 대한 갈증을 일부 해소해주겠다는 안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한 것은 종전선언 이외 이 같은 안들은, 영변 핵시설 폐기 외의 플러스알파에 대한 미국의 대응조치라는 점이다. 단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맞교환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복스는 이런 조치가 플러스알파 없이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위해 미국이 제공할 조치들이라고 전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무엇을 얻었을까

실제 북한의 요구는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갔다. 양 정상 간 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조건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의 핵심적인 내용을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바로 이 점이 영변 핵시설 이외 고농축 우라늄 시설이나 ICBM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 측 요구와 맞물려 핵심 쟁점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이 밝힌 미국 측 입장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밝힌 북한 측 입장을 종합해보면, 일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 차이는 없었다. 즉 북한이 내놓은 것은 영변 핵시설 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에 국한됐다. 플러스알파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밖의 숨겨진 우라늄 농축시설을 거론하며 김정은 위원장을 압박했지만 북한의 양보는 더 이상 없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용 카드로 삼았던 ICBM과 관련해서도 북한의 추가 양보 조치가 없었다. 리용호 외무상은 한밤 긴급 기자회견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 입회하에 양국 공동작업으로 영구히 완전 폐기한다는 현실적 제안을 했으나 미국이 한 가지는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하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즉, 영변 지역 이외의 고농축 우라늄 시설이나 ICBM 중 한 가지라도 더 추가하자고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요구했지만, 김 위원장은 요지부동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영변 핵시설 폐기만 해도 결코 작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 폐기를 이미 확보한 상태에서 플러스알파를 두고 협상을 벌이는 트럼프 대통령 처지에서는 북한의 추가 양보 없이 공동성명에 서명할 수 없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1월8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인사하고 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제재의 해제까지 요구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부분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는데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과장했다고 보기도 한다. 3월1일 자정께 이뤄진 리용호 외무상의 긴급 기자회견도 바로 이 점을 부각했다. 북한은 “모두 11건의 유엔 제재 중 2016~2017년에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 주장은 내용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모두 11건의 유엔 안보리 제재 중 북한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한 것은 리용호 외무상이 언급한 2016~2017년의 5건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북한의 석탄, 철광석 등 주요 광물과 수산물 및 신규 노동력의 해외 송출을 금지한 유엔 대북제재 2371호(2017년 8월5일)와 원유 공급과 정유제품 수입에 통제를 가한 대북제재 2375호(2017년 9월11일), 대북제재 2397호(2017년 12월22일) 결의가 핵심이다. 리 외무상이 언급한, 북한의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결의안들이다. 이 세 개 대북제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실질적인 압박 효과가 별로 없다. 트럼프 대통령 처지에서는 대북제재의 전면 해제 요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사전 합의안이 양 정상의 담판 테이블 위에까지 올라갔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스티븐 비건 특별대표팀이 사전 실무협상에서 북한 측에 완전히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비건 특별대표팀의 협상 방식에 대해 이미 미국의 관료집단 내부에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2월26일자 <폭스뉴스>는 “백악관 국무·국방·재무·에너지부에서 비건 특별대표가 협상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우려하고 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협상 불가 항목이었던 비핵화가 이제는 협상 항목이 되었다”라는 얘기다. <뉴욕타임스>도 유사한 내용을 보도한 바 있는데, 이런 우려 때문에 대표적 강경파인 존 볼턴 안보보좌관이 막판 확대 정상회담에 투입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받을 수가 없는 협상안이었던 셈이다.

ⓒAP Photo
정상회담이 결렬된 2월2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실무 협상 능력으로만 보자면, 북한 외교의 승리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일까? 결과적으로는 판이 깨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협상을 깨버림으로써 미국 내 정치에서 반전을 꾀했다. 미국 언론이나 민주당에게 공격당할 만한 합의 자체를 거부했다. 또 핵심 측근이었던 마이클 코언의 폭로 뉴스를 일거에 덮어버렸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무엇을 얻었을까? 이 점에서 리용호 외무상의 긴급 기자회견에 배석했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발언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최 부상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이해가 잘 가지 않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며 “앞으로의 이런 조·미 거래에 대해 좀 의욕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뒷말을 보면 미국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미국식 계산법’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국무위원장 동지’를 헛걸음하게 하고 담판을 망친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 발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외무성의 노련한 전문가들을 제치고 전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였던 김혁철을 내세워 외교 담판의 기본인 이익의 균형을 무시함으로써 판을 그르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겨냥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북·미의 견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양 정상의 ‘세계관 충돌’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틈만 나면 강조했던 ‘베트남 모델을 통한 경제 부국의 길’을 김정은 위원장이 사실상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베트남 모델은 크게 두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북·미 관계를 미국과 베트남 관계와 같은 단계별 프로세스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즉 인적 교류-외교 접촉-연락사무소 진출-수교-무역협상을 통한 최혜국 대우의 5단계 프로세스를 밟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2단계 외교 접촉에서 3단계인 연락사무소 단계로의 진입 여부를 가늠하는 협상이었다. 연락사무소가 진출하면 많은 변화가 수반한다는 점에서 결코 작은 게 아니다.

미국의 희망과 반대로 움직인 북한
ⓒAP Photo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월1일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과거 베트남의 경우 중국과의 단절 위에서 미국과 교섭이 이루어졌다. 북한에 대해선 베트남처럼 ‘과격하게’ 중국과 관계를 단절하라고 못하지만 무게중심을 북·중 관계에서 남·북·미 관계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보내고 있는 일관된 메시지이다. 이번에도 북·중 교역을 의미하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해제하는 대신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을 예외조치로 풀어주겠다고 한 데에는 이런 미국의 숨은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김 위원장의 모습을 보면 숨은 의미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희망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미국이 극도로 싫어하는 중국의 이익 대변자 노릇을 한 것이다. 북한이 이번 정상 간 교섭에서 전면에 내세운 ‘2016~2017년의 5가지 대북제재 해제’ 요구는 지난 1월7일 김정은 위원장 방중 당시 시진핑 주석이 주문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2017년 북한의 대외교역과 수출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제재부터 풀어라”고 메시지를 줬다고 한다(<시사IN> 제596호 ‘두 번째 만남 관전 포인트’ 기사 참조). 이 2017년 유엔 안보리 제재의 대부분이 북·중 교역과 관련한 내용이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북한을 돕고 싶어도 이 제재 때문에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유엔 제재로 인해 중국 기업과 은행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올무’에 걸려들 수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시 주석 자신이 직접 거론하기 어려우니, 김 위원장을 내세운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주한 미군 철수 카드로 북·미 협상의 발목을 잡았다면, 올해는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 카드로 또다시 결정타를 날리는 데 성공한 셈이다. 2차 정상회담 종료 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대신 시진핑 주석을 압박하는 익숙한 장면이 또다시 반복되리라 예상된다. 최근 유화 국면이 조성돼가는 듯했던 미·중 통상 교섭 분위기나 미국 사법 당국의 조처를 앞둔 중국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지난 1월28일 미국 법무부는 화웨이 및 이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 부회장을 23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은 지난해 12월1일 이 같은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되어 사실상 가택 연금되어 있다. 미국 법무부는 캐나다에 멍 부회장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상태다). 북·미 간에도 미국이 비핵화 데드라인으로 내심 설정하고 있는 올해 4월 안에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어떤 사태가 전개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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