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임상철씨는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파는 ‘빅판’이다. 스마트폰 지도 앱으로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찾아봤다. 자주 지나다니던 길목이었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라는 정보를 듣고, 거리에서 빅판을 마주치면 종종 〈빅이슈〉를 구입했는데 이곳에서는 빅판을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새삼 눈 밝게 저자를 알아보고 책을 출판해준 편집자가 고마웠다. 하마터면 그의 글을 영영 모른 채로 살아갈 뻔했지 뭔가.
서른 무렵이던 1998년, 외환위기로 직장을 잃은 임상철씨는 이후 약 18년간 노숙인 생활을 했다. 일용직 노동자로 PC방, 고시원, 쉼터, 공원 벤치를 전전하다가 〈빅이슈〉를 알게 됐다. 빅판이 된 저자는 잡지 뒷면에 자신의 삶을 담은 수필을 넣기 시작했다. 글 52편과 틈틈이 작업한 그림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됐다. ‘글 쓰는 홈리스’라는 콘셉트만 내세우는 책 아닐까 하는 기우는 “언제부터인가 겨울은 항상 절망을 던져주고 떠나간다. 다시 오겠다면서” 같은 문장 앞에서 곧 사라졌다.
저자는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없이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프리즘으로 노숙인의 삶을 비춘다. 빅판이 빨간색 모자와 조끼를 갖춰 입고 “홈리스 자립 잡지 〈빅이슈〉가 왔습니다”라는 말을 내뱉을 때까지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는지,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임씨는 이 정직한 태도로 보육원 원생, 조각가를 꿈꾸던 조형물 제작 공장 직원, 노숙인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을 풀어낸다.
고개를 끄덕일 때도 많았다. “저는 시간에 게으른 자로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내 일기장 어느 페이지에 쓰여 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말이다. 습관처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을 되뇌지만, 또 애써서 제 인생을 살아보려는 이들이라면 모두, 이 책에서 꼭 자신이 쓴 듯한 글귀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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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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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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