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 ‘더 페이버릿(The Favourite)’은 ‘특별히 귀염(사랑)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고, 영어사전이 가르쳐주었다. 중세와 근대 유럽에서는 ‘특별히 권력자의 귀염(사랑)을 받는 사람’을 부를 때 썼다고, 인터넷 백과사전이 귀띔해주었다. 정치적으로 ‘비선 실세’이면서 사적으로 ‘최고 존엄의 연인’이기도 했던 사람들. ‘The Favourite’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한국 배급사가 친절하게 부제를 붙였다. ‘여왕의 여자.’ 덕분에 제목만 듣고도 대략의 인물 관계도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영화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카데미상 9개 부문 10개 후보에

때는 1708년, 몰락한 귀족 가문의 딸 에비게일(에마 스톤)이 영국 왕궁에 들어선다. 궁에서 힘깨나 쓴다고 소문난 먼 친척 사라(레이철 바이스)에게 일자리나 청해볼 요량이다. 다행히 부엌데기로 눌러앉아 살아가던 어느 날, 우연히, 아니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여왕 앤(올리비아 콜먼)과 마주친다. 탁월한 민간요법을 써서 앤의 고질적인 통풍을 완화시킨 공을 인정받아, 사라의 시종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그러다 중요한 비밀 하나를 알게 된다. 사라가 왕궁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이 된 비결. 귀족 남편 덕분이 아니었다. ‘여왕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앤의 동성 연인이자 나랏일을 좌우하는 비선 실세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사이, 삶의 목표가 점점 뚜렷해진다. 사라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욕망이, 기필코 여왕의 여자가 되겠다는 야망이 뱀처럼 에비게일의 영혼을 휘감은 것이다.

사라가 정사(政事)를 돌보느라 바쁜 틈을 타, 앤과 정사(情事)를 벌이는 데 성공한 에비게일. 자, 왕의 마음을 얻었다. 판이 뒤집혔다. 사라의 반격. 에비게일의 재반격. 점점 과열되는 이들의 경쟁을 앤이 내심 즐기는 동안, 점점 막장으로 치닫는 이 왕실 치정극에 관객은 더욱 빠져든다.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는 올해 아카데미상 9개 부문에서 10개 후보에 올랐다. 레이철 바이스와 에마 스톤이 나란히 여우조연상 후보가 되었고, 앤을 연기한 올리비아 콜먼이 혼자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수상 가능성을 높이려는 영화사의 전략 때문에 서로 다른 카테고리로 분산되었을 뿐, 세 배우는 사실상 이 영화의 공동 주연이다. 단단한 연기로 이어붙인 삼각관계의 세 꼭짓점이며, 정교한 ‘티키타카’로 관객의 수비벽을 무너뜨린 삼각편대다. 두고두고 이야기해야 마땅한, 근래 가장 돋보이는 앙상블 캐스트(ensemble cast)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영화 〈더 랍스터〉 (2015)와 끝까지 나의 숨통을 조여오던 영화 〈킬링 디어〉(2017)를 연출한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훌륭하고 고약하게 재미있는 영화”(뉴욕 매거진 〈벌처(Vulture〉)를 만들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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