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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춘 지 5년, 몸과 마음이 달라졌어요

댄스스포츠를 5년 하고 나니 몸이 변했다. 무릎 걱정이 사라졌고, 등허리에 힘이 생겼다. 발도 건강해졌다. 예술적 경험을 통해 감수성도 넓어졌다.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3월 08일 금요일 제5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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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서’ 운동 삼아 시작한 댄스스포츠를 5년 하고 나니 몸이 변했다. 내가 5년이라고 하면 선생님은 250일이라고 우긴다. 햇수로 따질 게 아니라 레슨 횟수로 셈해야 한다는 거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계산법이다. 월 1회 레슨을 12회 하고 나서, 1년 배웠다고 하면 우스운 일 아닌가. 하지만 나는 5년이란 세월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몸이 250일 만에 이렇게 바뀌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무릎과 등허리였다. 40대 중반부터 툭하면 시큰거렸던 무릎관절염을 친구들은 꽤 걱정했다. 한 친구는 “너 이거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늙어죽을 때까지 고생할 거야”라며 진지하게 말했다. 나도 안다. 50대부터 무릎관절염으로 고생한 엄마의 딸이니, 나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제 무릎 걱정은 사라졌다. 춤을 춘 이후 한 번도 무릎관절염이 재발하지 않았다. 심지어 격하게 계속 뛰는 탭댄스와, 무릎을 구부린 채 걸어야 하는 탱고를 추면서도 무릎은 무사했다. 이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이렇게 잘 관리만 한다면, 적어도 나는 엄마처럼 팔십 고령에 인공관절 수술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이우일 그림
이보다 더 먼저 실감한 것은 등허리에 힘이 생겼다는 점이다. 나는 만성 요통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40대 이후 어딘가에 앉을 때에는 늘 등을 기댈 곳을 찾았다. 허리를 곧추세울 힘이 없었던 거다. 춤을 춘 지 반년이 채 못 되어 이 버릇이 고쳐졌다. 희한하게 허리를 구부리고 앉기보다는 빳빳이 세우는 게 더 편해졌다. 버스나 지하철 좌석에 앉아서도 허리를 곧추세우는 자세를 유지하게 됐다. 왈츠를 배우면서부터 허리의 힘은 더 강해졌다. 당연히 푹신한 소파에 앉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바닥에 앉는 음식점에서 회식을 할 때 으레 후배들이 벽 쪽의 좌석을 양보하는데, 이제는 사양한다. 가부좌 자세로 허리를 세우고 앉는 것이 가장 편하다.

폐활량도 꽤 늘고 허벅지 힘도 좋아졌다. 워낙 빠르게 잘 걷긴 했지만, 오십을 넘으면서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는데, 젊었을 때 수준으로 회복됐다. 계단이나 비탈길을 오를 때에도 예전보다 수월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놀라운 것은 발의 건강이다. 젊었을 때에는 길거리에서 몇천 원짜리 싸구려 신발을 사 신으면서도 까딱없었다. 오십이 되면서 그게 잘 안 됐다. 높은 굽은 물론 낮은 굽까지 구두란 구두는 다 불편했고, 심지어 바닥이 평평하고 딱딱한 캔버스화조차 신을 수가 없었다. 그즈음에 한의사가 내 발을 보더니 “평발이네요” 하는 게 아닌가. 평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처럼 빠르게 잘 걷는 사람이 무슨 평발이란 말인가? 이제 생각해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발의 아치가 무너져 점점 평발이 되어버렸던 거 같다. 언니도 그랬단다. 심각하게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나이 들어서 평발이 됐다는 걸 알았고, 환갑이 넘은 지금은 특수 깔창의 신발이 아니면 신을 수 없게 됐다. 나는 언니보다는 상태가 나았다. 그래도 워킹화, 러닝화 등은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펑퍼짐하게 편한 운동화를 신고 다닐 수 없는 자리도 많으니, 모종의 조치가 필요했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뒤져 아치를 받쳐주는 작은 깔창을 사서 온갖 신발의 바닥에 붙이니 어느 정도는 해결됐다. 하지만 여전히 신지 못하고 처박아두는 신발이 많았다. 춤을 몇 년 추면서 점점 신을 수 있는 신발이 많아졌다. 내 발이 덜 예민해진 것이다. 이제는 아치 부위만 잘 받쳐주면 딱딱한 바닥의 신발도 웬만큼 신을 수 있다.

댄스뮤직의 단순함을 이해하다


발이 확실히 건강해졌다는 징후는 또 있다. 30대 중반부터 발톱에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 무좀 증상이었다. 엄지발톱에서 시작했는데 20년쯤 지나니 전체 발톱이 다 그랬다. 바르는 약도 열심히 써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위장이 예민하여 복용하는 약은 쓰기 힘들었으니 오로지 바르는 약뿐이었다. 몇 년 후에는 치료를 포기했다. ‘그냥 살자. 여름에 앞이 개방된 샌들 안 신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다. 춤을 추면서, 어느 틈엔가 허옇고 딱딱하게 굳었던 발톱이 점점 정상의 색깔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이 되면서 엄지발톱 두 개가 모두 정상이 되었다. 희한한 일 아닌가. 흔히 무좀이란 진균류의 감염이 원인이라 그걸 죽이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그런데 20년이나 된 증상이 춤을 추면서 나아지다니! 발이 건강해지면서 스스로 진균류를 물리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발을 잘 다치지도 않았다.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삼우제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발을 삐끗했다. 편안한 운동화를 신었고 평지를 걷고 있었는데, 보도블록의 작은 요철도 견디지 못하고 그냥 발목이 픽 꺾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랬을 테다. 그렇게 한번 삐끗하고 나면 열흘은 불편하다.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물론 발을 잘못 디뎌서 삐끗하는 때는 종종 있다. 그 순간 시큰하고는 끝이다. 몇 발자국 걸으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정상화되었다. 심지어 재작년에는 강의실 교단에서 발을 헛디뎌 꽈당 넘어진 적도 있었다. 그 순간 ‘아, 큰일 났다’ 싶었다. 다리에 멍만 들었을 뿐 발목은 모두 멀쩡했다. 발과 다리의 건강을 되찾은 것, 5년 동안 레슨비를 생각해도 이건 정말 이득이다.

몸의 변화만 얻은 건 아니다. 새로운 예술의 경험은 감수성을 넓힌다. 나처럼 평생 예술 관련 직업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감수성의 확대란 아주 중요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는다. 한 분야에서 점점 깊이 들어가다 보면 폭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댄스뮤직에 대해서는 별로 취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단순하고 지루한 작품이 많았다. 춤을 배우다 보니, 왜 대개의 댄스뮤직이 그런지 이해하게 됐다. 홀에서 프리댄스를 추기 위해서는 음악이 변화무쌍하면 안 된다. 그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도 리듬에 몸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규칙성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음악이 변화무쌍하고 지나치게 심각하면 그 음악에만 집중하며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낯설고 어려운 음악에는 몸을 흔들며 춤을 출 여유가 없다. 생각해보라.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변화무쌍한 음악에 맞춰 프리댄스를 출 수 있겠는가 말이다. 춤을 배우다 보니, 조금 복잡하고 변화가 많은 음악이 나오면 바로 파트너와 발이 꼬이고 몸짓이 엉켰다. 음악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다음 동작을 어떻게 할지 생각할 수가 없게 된다. 춤음악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이것도 이득이다.

탱고가 다 끝나가니, 이제 뭘 배우게 되려나 궁금하다. 선생님 말로는 비엔나왈츠나 폭스트롯은 왈츠와 너무 비슷해서 지금 이걸 또 배우는 건 지겨울 수 있단다. 뒤로 미뤄도 된다는 뜻이다.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퀵스텝은 아직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남은 것은 라틴댄스 중에서 배우지 않은 파소도블레뿐이다. 스페인 춤에서 기원한 파소도블레는 또 어떤 신세계를 보여줄지 ‘기대 만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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