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폭력 행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잔혹하다. 수천 년 전 칼을 들고 싸우던 시절부터 첨단 무기가 동원되는 현대전에 이르기까지 규모와 양상은 끊임없이 변화했지만, 여성은 거의 언제나 피해자였다. 적극적으로 싸움터에 나선 여성들도 있다.

미국은 1943년 WASP(Women Airforce Service Pilots)를 창설했다. 공군을 지원하는 여성 파일럿을 양성했다. 지원자만 2만5000명이 넘었다. 이 중 1830명이 선발되었고, 총 1074명이 실전에 배치되었다. 그들은 사격 훈련은 받지 않았기에 주로 수송기를 몰며 보조 임무에 투입되었다.

 

〈엔젤 윙스-버마 밴시〉 얀·로맹 위고 지음, 박홍진 옮김, 길찾기 펴냄

 

 

 


〈엔젤 윙스-버마 밴시〉는 그들의 이야기다. 앤절라 매클라우드는 WASP 파일럿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버마(미얀마) 전선으로 향한다. 그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버마와 중국을 오간다. 수송 임무라고 해서 결코 안전한 것은 아니다. 언제 일본 전투기가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없다. 파일럿은 전투기를 조종하든, 수송기를 조종하든, 죽음의 위험 앞에서는 평등했다.

로맹 위고가 재현한 공중전 ‘천의무봉’

앤절라는 일본군이라는 외부의 적은 물론, 여성 파일럿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라는 내부의 적과도 맞서야 했다. WASP는 남자들과 똑같이 전투에 나섰지만 군인 신분을 인정받지 못해 연금은커녕 장례 비용도 지원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앤절라가 머물던 기지에 수송선이 착륙한다. 거기엔 놀랍게도 징크스 팔켄버그라는 유명 핀업 걸이 타고 있었다. 전선을 돌며 위문 공연을 하던 중 비행기 고장으로 예정에 없던 기지에 착륙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앤절라는 능력보다 외모로 인기를 얻는 핀업 걸이 마뜩잖았고, 징크스는 남성들 사이에서 기름때 묻혀가며 싸우는 앤절라가 낯설었다.

징크스가 위문 공연을 마치고 다른 기지로 이동하던 중 격추를 당해 비상 탈출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해 일본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버마 정글을 뚫고 나가야 한다. 짧은 치마와 하이힐만 신던 징크스는 앤절라의 도움으로 몸에 붙은 거머리를 뜯어 먹으며 정글에서 사투를 벌인다.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를 인정하게 된다.

저자 로맹 위고는 항공 밀리터리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파일럿이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 얀과 함께 전 세계 하늘을 무대로 시대와 공간을 옮겨가며 다양한 공중전을 그래픽노블로 그렸다. 그들은 비행기는 물론 파일럿의 복장, 부대 휘장, 별명 등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고증한다. 특히 효과음 하나 그려넣지 않고 압도적인 퀄리티로 재현한 공중전은 로맹 위고의 전매특허다.

두 작가는 2차 세계대전 독일과 러시아의 공중전을 다룬 명작 〈수리부엉이〉에서 ‘밤의 마녀들’이라는 러시아 여성 파일럿을 다룬 바 있다. 〈엔젤 윙스-버마 밴시〉에서는 여성 파일럿을 전면에 내세워 작품의 폭을 한 차원 넓혔다. 비행기를 좋아한다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이다.

 

 

 

 

기자명 박성표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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