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23일 SK건설이 라오스에 건설하던 세피안·세남노이 댐의 보조댐 하나가 무너졌다. 올해 1월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 대응 한국 시민사회 TF’는 라오스를 찾아 피해 실태를 조사했다. 시민사회 TF 대표로 1월11일부터 24일까지 라오스에 다녀온 윤지영 피스모모 정책팀장이 글을 보내왔다. 〈시사IN〉은 지난해 9월 사고 댐과 수해 지역 등 라오스 현지를 취재한 바 있다(〈시사IN〉 제578호 ‘마을이 있던 자리’ 기사 참조). 라오스 정부가 꾸린 ‘진상조사위원회’는 2월 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 무리의 여성들이 한국산 인스턴트 라면 몇 봉지를 받아들고 줄지어 오고 있었다. 그중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사바이디(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미소 짓는 얼굴에 깊이 가라앉은 슬픔이 배어 나왔다. SK건설이 짓던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 이후 6개월이 지나 찾은 라오스 아타프 주 사남사이 군의 핫야오 임시 주거 캠프에서 마주한 첫 광경이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전부가 농사꾼이에요. 소 키워 쌀농사 짓고 밭에 야채 키우고 강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는 일이 일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요. 보시다시피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밥 지어 먹고, 가끔 누가 갖다주는 인스턴트 국수나 받아오고. 또 하염없이 앉아 있다 깜깜해지면 자고. 그게 다예요. 여기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반대편 평상에 앉아 있던 래 씨(가명·35)가 갑자기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다급히 내 손을 붙들었다. 한국에서 온 조사단이라고 소개를 해서일까. “그날 저녁 8시경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물이 점점 차오르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와다다다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밀어닥쳐 왔어요. 배를 타도 뒤집어지는 상황이었죠. 주변 나무들도 다 꺾여 뒤집어지고, 입은 옷이 다 벗겨져 속옷 차림이었어요. 모두가 휩쓸려 떠내려갔어요.”

ⓒ시사IN 이명익지난해 7월 댐 붕괴 사고로 라오스 주민 1만여 명이 피해를 입었다.

그날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 래 씨의 얼굴엔 공포와 슬픔이 번갈아가며 스쳐갔다. 당시 비가 많이 오긴 했지만 매년 반복되던 수준의 폭우였다. 아무도 이 정도 파괴력을 지닌 수마가 닥칠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댐이 무너질 것이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마을을 따라 흐르는 강 상류에 댐이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댐이 건설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을 것이라고 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래 씨가 살던 ‘마이’ 마을은 사고로 실종자 3명, 사망자 8명이 발생했다. 마이 마을 주민들이 임시로 살고 있는 핫야오 캠프에는 전체 주민 767명 중 523명이 거주한다. 나머지 244명은 1㎞ 떨어진 동박 캠프에서 살고 있다. 지난 6개월간 마이 마을에서 새 생명 10명이 태어났다. 주민들은 한창 잘 먹어야 할 산모와 갓난아기들의 영양 상태를 걱정했다.

만나는 주민들마다 ‘할 일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든 점이라고 토로했다. 해 뜨자마자 논으로 밭으로 강으로 나가 식구들 먹을거리를 챙겨오던 이들은, 정부에서 매월 지급하는 쌀 20㎏과 부식비 10만 키프(약 1만4000원), 하루 5000키프(약 700원)에 의존해 살며 때때로 외부에서 보내주는 인스턴트 국수를 배급받으러 간다. 그마저도 사고 직후에는 다양한 구호물품들이 쏟아지다가 지금은 거의 끊겼다고 한다. 직접 잡은 싱싱한 자연산 민물고기를 먹다가 시장에서 물고기를 사다 먹는 것도 이제는 힘들어진 형편이다. 앞으로 4~5년은 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탄식을 뱉는 이의 눈동자는 폐허가 된 그들의 보금자리만큼이나 황폐해 보였다.

ⓒ윤지영 피스모모 제공주민 부타봉 씨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7월 무너진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로 피해를 입은 이들은 1만여 명. 1월26일 라오스 정부는 사망자 49명, 실종자 22명, 총 71명의 피해자 가족에게 1인당 1만 달러(약 1122만원)를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피해 주민 대부분은 그동안 라오스 정부와 댐 건설 관계자들의 보상 절차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고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중순 마을 지도자들을 초대한 설명회가 있었지만 사고 원인에 대한 설명은 없었으며, 임시 주거시설 입주 계획 정도만 공유받았다.

플라스틱 통 50여 개에 담긴 유골   

이재민들이 거주하는 임시 주거 캠프 총 5곳(핫야오·동박·돈복·타모욧·삔동)은 원래대로 삶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여건과 거리가 멀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 없이 SK건설 등이 포함된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업자와 라오스 정부가 일방적으로 설치해 불만이 상당했다. 주민들 중 일부는 라오스 정부에서 금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임시 캠프에서 지내는 것이 힘들어 살던 집터로 돌아가곤 했다. 다 무너져 아무것도 없지만 친지와 이웃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 지내는 게 더 마음 편하다고 했다. 밤에는 여전히 악몽을 꾸지만 캠프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고 한다.

ⓒ윤지영 피스모모 제공사남사이 군 사원에 보관된 플라스틱 통 유골함
“매트리스 하나 깔고 모기장 치고 사는 거지. 밥 지을 공간도 제대로 없지만 여기가 나아. 캠프에서 무기력하게 있는 게 더 죽을 것 같더라고. 여기(마을)는 다 망가졌지만 우리 논에도 가볼 수 있고, 강에 나가 물고기도 잡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 캠프에선 아무 살맛이 안 나. 이것 좀 봐. 지금 막 잡은 물고기야. 이게 사는 거라고.” 타힌 마을의 부타봉 씨(가명·58)는 세피안 강에서 막 잡아온 물고기를 보여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만은 그에게서 어떠한 근심 걱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생에 대한 강렬한 애착, 살아남은 자의 존엄이었다.

피해 지역 조사 일정을 끝마칠 무렵 우연히 사망자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장소를 알게 됐다. 사남사이 군 사원의 한 귀퉁이에 있는 나무로 만든 작은 오두막이었다. 사고 원인 규명과 보상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반년 동안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덩그러니 안치되어 있는 광경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투명 플라스틱 통 50여 개에 담긴 유골이 포착된 순간, 조사 일정 내내 추슬러왔던 마음이 고스란히 무너져 내렸다. 황망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센 바람 속에서 가까스로 지핀 향의 불씨만 타들어갔다(필자가 라오스를 떠나고 이틀 뒤인 1월26일 합동 영결식이 치러졌다).

“어쩌겠어요? 가족도 잃고 살던 마을도, 집도 다 사라졌지만 이렇게라도 하루하루 연명해가야죠. 댐 짓는 회사도 이런 일을 예상이나 했겠어요? 그저 임시 캠프 지어준 걸로 끝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 있게 나서주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그게 도리 아니겠어요? 한국 정부와 기업에게도 꼭 이야기해주세요.”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간절한 목소리, 누군가는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외침을 품고 돌아서는 길, 무거워진 발걸음에 외면할 수 없는 이유를 힘주어 새겼다.

기자명 라오스 아타프 주·윤지영 (피스모모 정책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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