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누구인지 너 자신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물류기업은 이런 속내를 소비자들에게 털어놓고 싶을 것이다. 이 기사를 읽는 당신은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떤 제품을 지갑까지 과감하게 털어낼 정도로 좋아하는지, 그 내밀한 욕망을 일면식도 없는 물류기업이 어떻게 본인보다 더 잘 알 수 있단 말인가?

현실에서는 이런 마술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이틀’이나 ‘당일’ 심지어 ‘2시간’ 같은 단위로 이뤄지는 초고속 배송이 그 증거다. 첨단 물류기업은 당신이 데스크톱이나 스마트폰의 앱에 표시된 ‘구입’ 버튼을 클릭한 이후에야 상품을 준비하고 배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당신이 주문할 상품을 미리 예측해서 당신 거주지 주변의 창고에 해당 물품을 미리 보관해둔다. 즉 배송은, ‘클릭 이전’에 이미 진행 중인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소비 패턴)을 잘 알기 때문에 빨리 배송할 수 있다. 이런 첨단 물류의 기반에는 발전된 인공지능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AP Photo미국 볼티모어에서 택배업체 UPS 직원이 트럭에서 택배 물품을 나르고 있다.

물류에서 인공지능이 활용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주문에 대한 예측’이다. 과거의 판매 실적 등과 관련된 방대한 상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지역에서 어떤 주문이 얼마나 나올지 예측한다. 단지 ‘충북 청주에서 매일 바지 100벌을 주문한다’ 정도가 아니라 어떤 크기와 색깔, 디자인의 바지가 주문될지 미리 알아내야 한다. 이런 예측에 따라 해당 상품을 수요자의 거주지 주변에 미리 갖다 두는 것이다.

이 부문의 선구자인 아마존은 ‘예측 운송(anticipatory shipping)’이라는 개념을 2013년에 창안했다. 최근에는 유료 서비스인 프라임 회원을 대상으로 ‘주문 이후 1~2시간 내’에 배송해주는 ‘프라임 나우(Prime Now)’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아마존은 프라임 고객들에게 연회비 119달러를 받는다. 이전까지 초고속 배송에 건당 30~40달러 정도의 배송비가 들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공짜나 마찬가지다. 아마존은 2017년부터 미국 일부 도시에서 육류·해산물·채소류 등 신선식품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둘째, 창고는 물류기업들이 물품을 보관했다가 주문에 맞춰 꺼내 가는 시설이다. 비전문가들의 눈엔 상품이 거쳐가는 장소에 불과하지만, 물류기업 처지에서는 창고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아마존 물류 기지 중 일부의 넓이는 축구장의 10배에 가까운 약 9만2900㎡에 달한다. 이 정도의 공간에 가득 찬 상품들이 주문에 맞춰 순서대로 빨리 나갈 수 있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상품을 내보낸 공간에는 적절한 상품이 다시 입고되어야 한다. 이렇게 들어오는 상품과 나가는 상품의 흐름이 서로를 방해해서는 안 되며, 인간 직원들이 가급적 짧은 동선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창고관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런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통합적이고 매끄럽게 통제해야 하는 극도로 복잡한 작업이다.

아마존의 물류 기지에서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키바(Kiva)라는 로봇이 상품으로 진열된 선반을 인간 작업자에게 옮겨주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전통적 유통업체에서는 인간이 상품을 찾아다니지만, 아마존 물류 기지에서는 상품이 인간을 찾아온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2018년 9월17일)가 소개하는 리니지 로지스틱스(Lineage Logistics)는 식료품점이나 레스토랑 등에 식자재를 배송하는 업체다. 냉장 보관한 음식물인 만큼 빠른 배송이 절실하다.

이 회사의 인공지능은 각종 주문이 언제 도착하는지(‘어떤 상품이 먼저 나가는지’) 예측하고 그 순서에 따라 식품의 배치를 결정한다. 이른바 ‘스마트 배치(smart placement)’ 전문이다. 예컨대 주문 빈도가 높은 식자재는 창고 입구 주변에, 좀처럼 주문되지 않아 비교적 오래 보관해야 하는 식품은 입구에서 먼 곳에 놓도록 한다. 만약 주문 순서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당장 출고되어야 하지만 창고 깊숙이 배치된 식자재를 빼내기 위해 입구와 중앙 부분의 물품까지 빼냈다가 다시 집어넣어야 하는 과정에서 인력과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인공지능 도입으로 업무 효율성을 20%나 높였다. 적시에 식자재를 들여오고 내보낼 수 있게 되면서 비용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물류의 마지막 단계는, 창고에서 꺼낸 물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배송이다. 적절한 배송 경로를 찾아 상품을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시키는 작업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주행 기술이 이미 활용 중이다.

영국의 자동차 업체 롤스로이스는 구글과 협력해 자율항해 선박을 개발 중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사전에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바다 환경(파고·유속·풍향)에 적절히 대응하며 운항한다. 자율주행 차량은 운전자 한 명을 대체하지만, 자율항해 선박은 20명 이상의 선원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인건비 절감 효과가 크다. 빠르고 안전한 최적의 항로를 찾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화물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하는 기능까지 지녔다.

일반 시민과 차량을 배송에 활용

세계 최대 택배회사인 미국의 UPS는 인공지능 장착 GPS인 오리온(ORION)으로 최적 배송 경로를 찾는다. 여러 장소에 대한 복잡한 배송 순서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도로 상태에 따라 실시간으로 배송 경로를 바꾸기도 한다. UPS는 오리온 덕분에 배송 경로를 연간 1억 마일(약 1억6000만㎞)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복잡한 도심에서 식품이나 약품을 배달하는 업체도 있다. 미국 물류기업인 마블(Marble)은 소비자가 ‘옐프24’라는 앱으로 주문한 물품을 작은 사각형 상자처럼 생긴 로봇으로 배송한다. 원래 음식물만 배달했지만, 현재는 약품까지 포함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로봇은 도심의 인도를 통해 움직이는데, 관련 데이터를 끊임없이 수집해서 반영하는 방법으로 배송 경로를 개선해나간다.

ⓒMarble‘마블’의 배송 로봇은 배송 경로를 바꿔가며 도심 인도를 이동한다.

아마존은 혼잡한 도시의 초고속 배송을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발견해냈다. 택배 기사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차량을 배송에 활용하는 방법이다. 우버와 비슷한 발상이다. 사람들과 자동차는 항상 어디론가 움직인다. 그 흐름 속에서 아마존이 접수한 주문과 맞아떨어지는 움직임을 배송에 활용할 수 있다. 배송자에게는 시간당 18~25달러를 지급한다. 이른바 플렉스(Flex) 서비스. 플렉스에 장착된 인공지능은 일정한 시각에 얼마나 많은 운전자들이 필요한지, 특정 방향으로 가는 차량이 어디 있는지 등을 파악하고 주문에 적합한 운전자를 호출한다. 택배 물품의 수와 무게가 해당 운전자의 차량에 적합한지 계산하는 것도 플렉스 인공지능의 몫이다. 심지어 효율적 배달을 위해 택배 상자를 차량에 넣는 순서까지 추천한다고 한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물류 부문에서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물류기업이 지금보다 예측 능력을 더욱 개선한다면, 주문을 기다릴 필요도 없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냥 고객이 원할 것으로 예측되는 물품을 배송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고객은 배송된 물품 중 필요한 것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반송하면 된다. ‘주문 이후 배송’에서 ‘배송 이후 주문’으로 바뀌는 것이다. 반송의 편리성과 비용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지금은 농담처럼 들리는 ‘배송 이후 주문’의 시대가 닥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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