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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만에 찾을 걸 2년을 허비하다니

예상을 깨고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가 수색 작업 사흘 만에 발견됐다. 일부 유해 및 방수복도 발견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남은 수색 작업과 블랙박스 분석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3월 04일 월요일 제5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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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찾았어요. 그리고 블랙박스도 같이요.” 2월17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허영주 공동대표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에 나서는 시베드 컨스트럭터호 취재를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장에서 돌아온 날이었다(<시사IN> 제597호 ‘심해 3000m 블랙박스 찾아라’ 기사 참조). 나는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사고 해역에 도착하고, 자율주행 무인 잠수정(AUV)이 첫 수색을 나선 것까지 현지에서 확인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블랙박스라 불리는 VDR(Voyage Data Recorder·선박항해 기록장치) 수거 소식을 들은 것이다. 외교부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해역에서 심해 수색을 하던 오션인피니티의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선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선교(조타실)를 발견하고 인근 해저면에 이탈해 있는 VDR을 회수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스텔라데이지호는 수색 시작 사흘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색 업체인 오션인피니티는 선교 측면에 표시된 선박 식별번호(IMO Number 90387 25)를 통해 스텔라데이지호라고 확인했다. 선체에서 선교가 떨어져 나온 상태로 발견되었고, 선박의 상태는 많이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IN 신선영
스텔라데이지호에서 유해 및 방수복이 발견된 2월21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와 시민대책위원회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스텔라데이지호를 취재했지만 이렇게 빨리 VDR을 찾아 수거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에 수거한 VDR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원인을 밝혀낼 핵심 장치이다. 국제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상 3000t급 이상 화물선과 국제 항해 여객선에는 반드시 VDR을 달게 되어 있다. 이 장치에는 항해기록과 선교 근무자의 음성기록 등 여러 가지가 담겨 있다. 이 VDR을 분석해보면 한국인 선원 8명을 포함해 22명이 실종된 침몰 원인을 알 수 있다.

원래 스텔라데이지호 VDR은 선체 갑판과 선교 두 군데에 장착되어 있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선교에 설치된 것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을 대표해 시베드 컨스트럭터호에 승선해 있는 김재복씨(가명·2등 항해사 허재용의 가족)는 “AUV가 내려가서 무언가 감지하고 원격조종 무인 잠수정(ROV)이 심해로 내려갔어요. 스텔라데이지호인지 아닌지 확인만 하고 올라오려다 운 좋게 떨어져 나가 있는 VDR을 찾은 겁니다”라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해주었다.

“배 확인하려 내려갔다 VDR 찾아”


오션인피니티는 현재 ROV를 투입해 선교 안팎을 자세히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회수된 VDR은 특수 용액에 담겨 보관되었다. 선체 일부 발견과 VDR 회수 소식을 들은 실종자 가족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이들은 2년 동안 광화문에서 대국민 서명을 받고 국회를 찾아다니며 심해 수색과 VDR 수거를 요구해왔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이렇게 빨리 찾을 수 있었는데 정부는 2년간 ‘선례가 없어서 심해 수색을 할 수 없다’고만 했다. 나중에는 ‘기술적으로 가능할 경우에만 블랙박스를 수거하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게 남은 수색 작업과 블랙박스 분석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외교부 제공
발견된 스텔라데이지호 선교 사진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제공
실종자 가족 김재복씨가 촬영한 스텔라데이지호의 VDR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원인을 밝혀줄 VDR의 분석 과정에서 데이터가 손실되지 않을지 걱정한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는 VDR 분석 경험이 풍부한 오스트레일리아 교통안전국(ATSB)이나 프랑스 항공사고조사국(BEA)에서 분석을 맡아주기 원한다. 정부는 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들 기관에서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모색 중이다.

2월21일 오전 또다시 허영주 공동대표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뼛조각이 나왔대요.” 역시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었다. 외교부에 따르면 수색을 하던 수색팀이 선체 파편 주변 해저에서 사람 뼈로 보이는 유해 일부와 선원들이 탈출할 때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입는 방수복으로 보이는 오렌지색 물체를 발견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시민대책위원회 황필규 변호사는 “신원 확인을 위해서라도 일부 유해의 보존, 운반 등 전반적인 준비가 긴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허경주 공동대표는 “믿기 힘들다. 유해가 나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라며 울먹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뼛조각이 나온 이상 수습하기를 바란다. 또한 뼛조각이 발견된 인근에 또 다른 유해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 추가 수색을 바라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재 스텔라데이지호 선원의 유해일 가능성이 큰 만큼 가족들과 긴밀하게 협의하겠다”라고 밝혔다. 심해 3000m에서 진실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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