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99’는 2012년에 데뷔해 지금껏 정규 앨범 5장을 발표한 솔로 뮤지션이자 여행 음악가이다. 그는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성지로 향하는 순례자처럼 4년째 전국 곳곳을 기행하며 매달 음악을 발표해오고 있다. 그가 2015년 〈캘린더(Calendar)〉, 2016년 〈유럽(Europe)〉, 2018년 〈컴 백 홈(Come Back Home)〉 이렇게 세 차례 여행 프로젝트를 앨범으로 묶어 발표하면서 거쳐온 곳은 전남 담양·강원 태백·경남 밀양 등 국내 24곳, 크로아티아 자그레브·헝가리 부다페스트·체코 프라하·독일 베를린 등 유럽 4개국 9개 도시에 이른다.

특히 그가 2018년 한 해 동안 온라인으로 매달 발표한 음악은 여행지 현장에서 곡을 만들기 시작해 녹음까지 전 과정을 혼자서 하루 만에 완성한 결과물이다. 강추위가 몰아치던 겨울 호수에서도, 폭염이 쏟아지던 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그 음악 기록을 모아 그는 얼마 전 〈컴 백 홈〉이라는 앨범으로 발표했다. 이제 막 새 앨범을 발표한 ‘레인보우99’를 만나 무엇이 그를 전국을 유랑하는 방랑 음악가로 만들었는지 들어보았다.

 

ⓒ레인보우99 제공레인보우99(사진)는 ‘동두천에 관한 노래’를 5월쯤 발표할 예정이다.


2015년부터 전국을 다니며 라이브 녹음을 해왔다. 목적지는 어떤 기준으로 정했나?

사전에 어디를 갈지 미리 정하지 않았다. 여행 당일 상황에 맞춰 목적지를 정했는데, 촬영을 맡아준 왕민철 감독과 일정이 맞으면 제주나 경상도 등 좀 먼 곳으로 가고, 시간이 촉박하면 가까운 경기도로 가는 식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몇 년간 여행 프로젝트로 고른 장소는 모두 낡고 오래되고 인적 없는, 이를테면 ‘박살난’ 장소더라(웃음).
유명 관광지가 아닌 그런 곳들이 왠지 좋았다. 아마도 내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나 보다.

전기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라이브 녹음은 어떻게 했나?

이곳저곳 다니다 느낌이 오는 장소를 발견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전기선을 끌어 쓰기 위해 근처의 카페를 검색하는 것이다. 그렇게 전원을 연결하면 자리를 잡고 곡을 만들었다. 처음에 건반 등으로 시작하다 감정이 일어나면 드럼 비트를 만들고 그 위에 기타를 연주하는 식이다. 장소마다 주는 기운이 다 달라서 어떻게 연주할지 미리 정해놓는 게 의미가 없었다. 느낌이 왔을 때 한 번에 쭉 연주하는 식으로 했다. 모든 곡을 그 자리에서 만들고 완성했다.

가장 힘들었던 곳은 어디인가?

지난해 2월에 녹음한 청주 대청호가 가장 힘들었다. 그때 엄청 추워서 손이 얼어 펴지지도 않았다. 탁 트인 호수 앞이라 그런지 정말 비명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영상은 너무 고요하고 따뜻하게 나와서 황당했다(웃음). 경기도 청평에 있는 호명터널에서의 작업도 인상적이었다. 기차가 오가는 두 개 터널 사이에 뻥 뚫린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만 빛이 들어와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진짜 영감을 주는 곳이었다. 경상도 밀양은 초입에 새마을운동 발상지가 있었다. 새마을운동 깃발이 연이어 꽂혀 있는데 그 앞 공원에서 아주머니들이 모두 운동을 하더라. 바로 그 옆에는 기계들이 잔뜩 쌓여 있고(웃음).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뭔가 느낌이 와서 ‘새마을운동’이라는 곡을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 이 4년에 걸친 음악 여행을 시작하게 됐나?

이번 여행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려고 보니 내가 어떤 지점에서 도망쳤다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걸 알겠더라. 사실 몇 년 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너무 기뻤고 가족과도 행복했다. 그러나 얼마 뒤 그 아이가 다른 남자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와 아내와 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헤어졌다. 그 후 전국을 다니면서 여행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게 언제 일인가?

2014년이다. 사실 이 여행 프로젝트 중간 중간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작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지 나도 몰랐다. 얼마 전 앨범 발매를 위해 음원을 비롯한 각종 자료 등을 모두 회사에 넘기던 날이었다. 그날 밤 아이랑 아이 엄마가 꿈에 나왔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행 가서도 별로 힘든 줄 몰랐다. 이제는 모든 게 그 상처로부터 도망치려는 내 몸부림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음반은 어떤 형태로 나오나?

여행지 한 장소에서 거의 두 곡씩 만들었고, 마지막에 ‘홈(home)’이란 곡을 추가해 총 24곡이 모였다. 앨범은 온라인 음원과 CD 대신 QR 코드를 부착한 컵의 형태로 발표한다. QR 코드를 찍으면 핸드폰에 음원을 다운받을 수 있다.

2019년에도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나?

올해는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꽂혀 있던 ‘동두천’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볼 생각이다. 동두천에는 1960~1970년대 미군 기지 주변의 ‘옐로 하우스’ 등이 폐허가 된 채로 아직 남아 있다. 옐로 하우스는 일종의 성병 관리소이다. 기지촌 여성들을 검사해 성병 감염이 의심되면 강제로 약물치료를 하는데, 페니실린을 거의 치사량 수준으로 투여했다. 그 강제 치료가 고통스러워서 도망가다 죽는 사람도 있고, 치료 도중에 죽은 여성도 많았다. 내가 자주 가던 동두천은 그런 한 많은 여성들이 묻힌 무덤들 자락이었다. 그 무덤은 묘비에 이름도 없이 번호가 적힌 팻말 하나만 달랑 꽂혀 있었다. 나는 이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낙검자 수용소’(박정희 군사정권 때 달러 벌이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주한 미군을 상대하던 기지촌 주변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병 검사·치료를 병행하던 곳) 근처에서 텐트 치고 캠핑을 하며 여러 날을 보냈다. 묘지 옆에 노트북을 펴놓고 곡을 만들어갔다. 봄이 오기 전에 겨울의 동두천을 담아 5월쯤 발표할 예정이다.

음악을 참으로 치열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올해 계획은 어떤가?

긴 유랑을 끝내고 돌아온 탓인지 이제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이 아닌, 그리고 전문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전국을 다니며 무료로 공연을 할 계획이다.

개인적 아픔에도 불구하고 ‘레인보우99’는 자신이 느낀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서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을 추상화하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직접’ 대면한다. 그것이 그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다. 바로 그런 점이 그를 일반적인 뮤지션들과 다른 존재로 만드는 것이리라. 기회가 되면 그의 음악을 전국 각지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보아도 좋을 듯싶다. 한 고집스러운 아티스트가 어떻게 익숙한 풍경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뽑아 올리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귀향을 축하하며 그가 무사히 ‘동두천 프로젝트’를 끝마치길 기원한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