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는데….”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선배 교사가 이런 말을 할 때 힘이 쭉 빠진다. 저 말을 하는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동일하다. 특히 저런 말을 하고 나서 “그냥 옛날처럼 하면 되는데…”라고 하는 선배와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진다.
시험지 유출 사건과 드라마 〈SKY 캐슬〉의 엄청난 흥행 때문에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고 공정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한다. 맞다. 부자에게 유리한 전형이라는 말은 꽤 타당한 지적이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수학능력시험(수능)은 공정하다’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증거인가?
내신 강화했더니 비밀리에 고교등급제 시행
본고사나 학력고사로 회귀하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마치 조선 왕실을 복원하자는 말처럼 들리니 아예 논외로 하자. 한때 수능이 대입의 핵심인 적이 있었다. 그때 문제는 수능이 4개 영역으로만 이뤄진 탓에 발생했다. 학교보다 학원에서 국영수, 수능 교과에만 몰입하여 공부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수능 교과가 아닌 학교 수업은 시간 낭비였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교육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렸다. 과목당 100만원 하는 과외가 성행했다. 부자들을 위한 전형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래서 확대된 것이 내신 성적을 중심으로 한 수시 학생부 전형이었다. 학생부 전형의 장점은 학생들의 학교 수업 참여도가 높아지고 각 고교 단위에서 우수한 학생이라면 대학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울 학생이 아니어도 강남 학생이 아니어도 자신의 지역 고교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강남 학생들과 특목고 학생에겐 큰 문제가 되었다. 그들은 ‘역차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수능이 아닌 내신도 사교육시장의 먹잇감이 되었다. 동네마다 내신 족집게 학원이 생겼다. 대학은 고교에서 한 평가를 불신했다. 결국 고려대학교는 2009학년도에 비밀스럽게 고교등급제를 시행했다. 고려대는 특목고 학생을 더 뽑고 싶었던 것이다. 잘못은 인정했지만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즈음 시작된 학종과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전형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고교등급제를 하는 건 아닌지 의심되어도 입학사정관의 평가였다거나 비교과 영역이 우수했다는 말 한마디면 그만인 전형이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인간을 수치로만 평가하던 것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노력과 열정조차 숫자로만 증명해야 했던 시기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보니 결국 학종도 부자를 위한 전형이 되었다.
결국 어떤 전형에서든 늘 부자가 유리한 방식으로 작동했다. 지금이 문제이니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봐야 또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부자들은 자기들이 유리한 방식을 찾아냈고 가난한 자의 편이었던 전형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정책을 내놓아야 공정하고 평등한 입시 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봐야 몇 년 뒤엔 또 금수저 전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수능도 내신도 학종도 꽤 좋은 방법이었다. 그것을 금수저를 위한 전형으로 바꿔낸 것은 제도가 아니라 우리였다. 한국인은 그 어떤 입시 정책도 부자를 위한 전형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 힘을 포기하는 것이 첫 시작이어야 한다. 그런데 연말 연초에 나간 각종 모임에서 집값과 자녀 교육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그 시작조차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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