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트럼프가 꺼낸 클린턴 카드, ‘연락사무소’

클린턴 행정부는 4단계 로드맵을 통해 베트남과 수교했고, 이 같은 교섭 내용의 일부를 북한에 적용했다. 트럼프는 ‘수교까지 염두에 두고 전진’했던 클린턴 방식을 차용할 수 있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9년 02월 20일 수요일 제597호
댓글 0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이 준비 중인 ‘상응조치’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 핵심은, 평양에 ‘북·미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조치다. 지난 2월 초,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특별대표)의 평양 회동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한 외교 소식통은 “연락사무소 개설을 중심으로 북·미의 상호 조치를 연결하는 로드맵을 어떻게 짤 것인가가 (비건 평양 회동의) 핵심이었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 평양 연락사무소에 부여하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다. ‘북한 체제의 안전’과 ‘체제 보장’, 그리고 ‘제재 완화’. 그동안 북한은 비핵화의 대가로 체제의 안전과 보장,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한 미국 측 답변이 연락사무소 개설인 셈이다.

먼저 체제 안전보장 문제부터 살펴보자.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설치되면, 미국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평양에 상주한다. 미국 외교관이 평양에 상주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체제 보장이란 측면에서 볼 때 차원이 다르다. 영변의 핵 폐기와 맞바꾸기로 한 종전선언보다 한 단계 높은 체제 보장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연락사무소란 것이 단지 ‘연락 기능만 담당하는 사무소’가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연락사무소는 수교 관계가 없는 국가 간에 영사 업무나 연락 업무를 맡기기 위해 설치한다. 북·미 연락사무소는, 북한 비핵화의 진전에 따른 북·미 수교까지 염두에 두고 그 전 단계로서 설계될 것이다. 북·미 수교야말로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전과 보장의 핵심 방안이라는 점에서 그 전 단계인 연락사무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UPI
지난해 6월1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첫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


연락사무소는 제재 완화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그동안 북한 측은 유엔 안보리 제재를 먼저 풀고 그다음 단계로 미국의 독자 제재를 풀라고 요구해왔다. 미국 측이 이 방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는 거의 대부분 북·중 교역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독자 제재 일부 풀어준다?


북한 대외 교역의 90% 이상이 중국과 이루어져왔다. 유엔 안보리 제재로 중국과의 교역이 묶이자 북한 경제가 피폐해진 이유다. 중국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이긴 마찬가지다. 유엔 안보리 제재를 무시하고 북·중 국경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밀무역에 대해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은연중 북한을 앞세워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 여론을 만들려고 시도해왔다. 지난 1월7~10일 김정은 위원장 방중의 핵심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이 제시할 수 있는 제재 완화 방안은, 유엔 안보리 제재 완화는 아닐 듯하다. 그동안 힘겹게 북·중 교역을 안보리 제재로 묶어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해왔는데, 쉽게 풀어줄 리가 만무하다. 대신 미국 자신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단계적으로 풀어줄 수는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 다음에나 미국의 독자 제재가 풀릴 것이라는 일반적 예측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즉, 미국이 독자 제재의 일부를 풀어 자국 기업의 북한 진출을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게 미국 측 대북 상응조치의 핵심이다.

북한도 미국의 독자 제재 해제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설사 유엔 안보리 제재가 풀려서 북·중 교역이 가능해진다 해도, 북한이 세계경제와 연결되려면 미국 제재가 풀려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북한 주민에게 생필품 조달의 길을 열어주려면 북·중 교역 재개가 시급하다. 이에 대해서도 미국이 복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보리 제재의 틀은 그대로 두되 ‘인도적 범위’에 해당하는 북·중 거래를 풀어주는 방법이다. 이 맥락에서는 ‘범위’라는 용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단지 ‘인도적인 것’뿐 아니라 ‘그 범위에 해당하는’ 품목들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어줄 수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북한 측에 시급한 인민 생활필수품들은 대부분 ‘인도적 범위’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연합뉴스
2월9일 평양에서 실무협상을 한 비건 특별대표(오른쪽)가 방한해 협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남북 사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경우에도 미국이 이런 방식의 접근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해 ‘북·미 간의 2·29 합의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알려졌다. 2012년 2월29일 이루어진 북·미 합의에서 미국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 실험 및 우라늄 농축 활동을 포함한 영변에서의 핵 활동에 대한 모라토리엄 이행에 동의’하는 대가로, ‘24만t의 영양 지원’을 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남북 간의 경협에서도 당분간은 ‘벌크 캐시(대량 현금)’보다는 다른 방식의 인도적 지원 방안을 권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스티븐 비건 대표는 방북 전인 지난 1월3일 스탠퍼드 대학 연설에서 그동안 북한이 약속했던 것에 기초해 미국의 희망사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첫째, ‘동창리 핵실험장과 풍계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에 대한 외부 전문가 초청 검증’을 이행하라. 둘째,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 이외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까지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파괴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라.

세 번째로 비건 대표는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이 플루토늄과 우라늄 시설 외에 ‘추가로’ 더 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을 매우 중시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추가로’는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미사일 제조 시설과 ICBM 일부 폐기다. 넷째, 비핵화 과정이 최종 완료되기 전에 북한의 WMD(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포괄적 신고 및 핵심 시설에 대한 전문가의 방문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북한이 보유한 핵분열 물질, 미사일 발사대 등 기타 WMD의 제거와 파괴다.

영변 핵 폐기와 종전선언 맞교환이 1단계

그렇다면 미국의 상응조치라 할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제재 완화 등은 각각 어느 단계와 연결되는 것일까?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 새로운 북·미 협상의 기본 축은 ‘영변 핵 폐기와 종전선언의 맞교환’이다. 이는 비건 대표가 정리한 미국의 희망사항 중 첫 번째와 두 번째에 걸쳐 있다. 또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요구 항목인 ‘영변 이외 지역의 플루토늄과 우라늄 관련 시설, ICBM 일부 폐기’와 상응하는 조치가 연락사무소, 대북 엠바고 해제, 미국 기업 진출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번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진행될 조치들이다.

미국의 이 같은 접근 방식은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對)베트남 교섭, 이 내용을 북한에 일부 적용했던 1995년 및 2000년의 대북 제재 완화 조치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AP Photo
2000년 10월2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미국이 베트남을 ‘적대국’에서 ‘관여 정책의 대상’으로 바꿀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엠바고 해제를 통한 미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었다. 그 전진 기지가 연락사무소였다. 1995년과 2000년,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 과정에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은 연락사무소 및 제재 완화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 두 가지 사례를 복기해보면, 미국의 대북 협상 구도를 더욱 뚜렷이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이 전쟁까지 치렀던 베트남과 화해하게 된 배경에는 도이머이(개혁) 정책이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팽창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기도 했다. 미국 처지에서는 중국 경제발전에 따라 지정학적 요충지인 베트남이 중국 영향권 내로 포섭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미국의 프로젝트가 1991년 4월 부시 행정부에서 입안해 클린턴 행정부가 실천한 4단계 로드맵이다. 미국은 베트남 측에 ‘베트남군 캄보디아에서 철수’ ‘캄보디아 문제의 국제적 해결에 관한 협조’ ‘베트남전 당시의 미군 포로와 실종자 문제에 대한 협조’ 등을 요구했다. 이와 연계해서 미국은 다음과 같은 단계별 조처를 취했다.

첫 번째는, 뉴욕 주재 베트남 외교관의 25마일 여행 제한 철폐였다.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교섭에 필요한 조치다. 이와 함께 미국 단체여행객의 베트남 방문을 허가했다. 두 번째는, 관계 정상화를 위한 미국 고위 대표단의 하노이 방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통신망이 연결된다. 이때부터 미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허용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1995년 2월 미국 연락사무소가 베트남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연락사무소 진출과 더불어 무역 금수조치, 즉 엠바고가 전면 해제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락사무소 진출은 무역·금융·통상 부문의 엠바고 해제와 직결된다는 것이 베트남 사례에서 확인된다. 이 단계에서 미국은 국제 금융기관들이 베트남 국민의 기본 생필품 지원에 협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앞으로 북한과 관련해서도 주목할 부분이다. 북한은 지금 기본 생필품을 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미국이 마음먹으면 이 단계부터 국제 금융기관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시사IN 이명익
1995년 8월 미국과 베트남의 대사급 수교가 이뤄지면서 베트남 경제가 발전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위는 베트남 최대 도시 호찌민 모습.

네 번째 단계인 1995년 8월, 드디어 미국과 베트남 간에 대사급 수교가 이뤄진다. 생필품 이외 분야에 대한 국제 금융기관들의 지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산 상품의 본격적 대미 수출을 위해서는 별도의 무역협상을 거쳐 최혜국 대우를 부여받아야 했다. 2001년 12월에 가서야 비로소 양국 간 상호무역협정이 발효되었으니 수교 이후 7년이 걸린 셈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베트남에 대한 4단계 로드맵의 일부를 북한에 적용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다.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를 동결하는 대신 미국은 경수로 원자로를 지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경수로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대체에너지로 중유를 제공하기로 했다. 영변 핵 폐기가 쟁점인 현재의 북·미 협상에서도 에너지 지원 문제가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물밑에서 에너지 관련 얘기가 여러 방식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제재 완화·연락사무소 개설 함께 할 수도


제네바 합의 타결 3개월 뒤인 1995년 1월20일 대북 경제제재가 부분적으로 해제됐다. 베트남에 대한 초기 조치와 마찬가지로 통신선을 연결하고, 미국인 개인의 북한 여행 및 언론사의 지국 개설을 허용했다. 미국이 미수교국과 교섭할 때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통신과 정보 분야임을 알 수 있다. 그다음 단계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금융거래 일부·부분적 무역거래(마그네사이트 수입에 국한), 연락사무소 및 경수로 설치와 관련된 장비 및 인원의 이동을 허용한다.

연락사무소 개설 및 대북 제재와 관련된 본격적 완화 조치는 2000년 6월19일 이뤄졌다. 미국 상무부와 교통부, 재무부 명의의 대북 제재 완화 조치가 연방정부 관보에 실린 것이다. 양측이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전해(1999년)에 미사일 협상을 타결한 덕분이다. 이에 따라 1999년 9월17일,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표명하면서 제재 완화와 연락사무소 문제를 동시에 매듭짓기 위한 북·미 간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2000년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았다. 미사일 문제의 타결과 제재 완화 그리고 연락사무소 개설이 연동되어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북·미 협상에서도, 영변 핵 폐기가 종전선언과 연동되는 한편 ‘영변+α(영변 이외의 핵 관련 시설)’, 즉 북한 ICBM 문제가 등장하면서 연락사무소와 제재 완화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00년 당시 제재 완화의 핵심은, 미국 기업에 북한과의 수출입 및 이에 수반되는 금융거래와 물자 수송을 허용한 것이었다. 이로써 미국 기업들은 상품이나 원자재를 북한에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물론 선박과 항공기 운행도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보잉이나 엑슨모빌, 스탠튼그룹, AT&T, 골드만삭스, 카길 등이 대북 진출을 위해 활발히 움직인 바 있다(김규륜, <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 완화와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 방안>).

2월27~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영변 핵 폐기+α’의 비핵화 합의가 도출된다면, 북·미 관계는 2000년 당시 수교까지 염두에 두고 전진하다 중단됐던 클린턴 정부 말기에서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