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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추적기,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찾기까지

우여곡절 끝에 스텔라데이지호를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국 외교부가 취재 불허 결정을 내렸지만, 나는 남아공으로 떠났다. 현장에서 수색 총괄자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케이프타운·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2월 21일 목요일 제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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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7년 9월부터 스텔라데이지호를 찾고 있다. 이 배는 그해 3월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광석 운반선이다. 당시 배에는 선원 24명이 타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필리핀 선원 2명만 구조되었다. 한국인 선원 8명을 포함해 나머지 선원 22명은 실종 상태다. 2년 전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는 지금 남대서양 한가운데 가라앉아 있다.

그동안 난 이 배를 찾기 위해 육지에서 취재할 수 있는 곳은 모두 다녔다. 우루과이·아르헨티나·브라질·프랑스·미국 등을 현지 취재했다(<시사IN> 제536호 ‘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서’ 기사 참조). 이제 남은 곳은 침몰 사고 현장, 바로 스텔라데이지호가 있는 심해이다. 지난 1월26일 나는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취재를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영미 제공
스텔라데이지호를 찾는 데 투입될 탐사선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항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 침몰 사고 초기, 정부의 공식 입장은 세계 어디에도 심해 3000m에서 수색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실종자 가족들은 그 말을 믿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난 취재 도중 에어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를 알게 되었다. 2009년 5월31일 승객과 승무원 228명을 태우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프랑스 파리를 향해 출발한 에어프랑스 447편이 사라졌다. 프랑스 정부는 ‘레모라 6000’이라는 로봇 잠수정을 투입해 2011년 7월 심해 3900m 지점에서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40×20×20㎝인 블랙박스를 찾아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해 있는, 남대서양 심해 3000m 지점도 수색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2017년 가을부터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수거를 요구했다. 2018년 2월부터 10차례에 걸쳐 실종자 가족들과 정부가 머리를 맞댔다. 지난해 4월19일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박완주 의원 등이 주최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장비 투입 검토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에어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를 직접 조사한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윌리엄 랭 박사와 데이비드 갈로 박사가 공청회에 참여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이들을 초청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였다.

랭 박사는 공청회에서 “스텔라데이지호는 침몰 과정에서 배가 두 조각으로 부러졌다고 들었다. 배가 빨리 침몰할수록 깊이 들어가는데, 스텔라데이지호 잔해가 (심해에서) 다방면에 퍼져 있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래도 상부 구조가 어딘가에 있다면 수색 뒤 블랙박스를 회수하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 윤미자씨는 “외국 전문가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심해 수색에 대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청회 이후에도 정부는 국내에서 심해 수색을 한 전례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2017년 가족들이 국회에서 뛰어다니며 호소한, 심해 수색을 위한 예산 편성 요구가 무산된 것도 ‘(심해 수색) 전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는 심해에서 선체를 절단할 수 있는 기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 내가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에 직접 가서 취재한 내용과 달랐다(<시사IN> 제561호 ‘스텔라데이지호 찾아 미국 우즈홀을 가다’ 기사 참조). 그곳에는 선체 절단용 기계가 존재했다. 심해 6000m에서도 무인 잠수정을 이용해 선체 절단이 가능하다고 우즈홀 해양연구소 연구원들은 말했다. 내 취재를 전해들은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허영주 대표는 “우리가 어디까지 정부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14일 국무회의에서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한 심해 수색이 결정되고 예산이 편성되었다. 산 너머 산이었다. 심해 수색 자체가 워낙 특수한 분야여서 전 세계에 이를 진행할 수 있는 업체가 몇 안 되었다. 정부는 긴급 입찰 형태로 지난해 10월1~22일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을 위한 용역 공개입찰을 진행했다. 어느 한 업체도 입찰에 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편성된 예산 53억원이 적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해수부)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을 통해 해외 4개 업체에 수색 작업 비용을 문의했고, 그 결과 2개 업체가 제시한 단가 평균값이 약 53억원이다”라고 가족들에게 공식 설명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가 산정한 것이므로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믿었다. 첫 공개 입찰에 단 한 군데 업체도 응하지 않자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다.


ⓒ시사IN 신선영
2018년 4월 국회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장비 투입 공청회’가 열렸다.


실종자 가족들은 당시 <오마이뉴스> 보도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네덜란드 2개 업체에서 회신을 보내왔는데, 공식 견적서가 아닌 비공식 이메일 답변이었다. 해수부는 2개 업체가 제시한 단가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추계액을 포함해 평균값 53억원을 산정한 것이다. 해수부 실무자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견적서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알아본 (비공식) 단가로 한다는 생각 이외에 다른 단가는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추가 입찰 종료 마지막 날 극적인 소식


정부는 지난해 10월23일~11월5일 추가 입찰을 진행했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이런 낮은 가격에 다시 입찰에 응할 업체가 과연 나오겠는가?”라며 낙담했다. 1년간 국회와 주무 부처인 외교부와 해수부를 쫓아다닌 보람도 없이 입찰 자체가 무산될 위기였다. 추가 입찰 종료 마지막 날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날 오후에 날아든 소식. 미국 휴스턴에 본사를 둔 심해 수색업체 오션인피니티가 입찰에 응했다. 가족들 처지에서는 기적 같은 소식이었다. 정부는 유일한 입찰 업체인 오션인피니티와 계약을 맺었다.

나는 말레이시아 항공 MH 370편 실종 사건을 통해 오션인피니티를 알고 있었다. 2014년 3월8일 승객과 승무원 등 239명을 태우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 MH 370편이 사라졌다. 사고가 난 지 4년 만인 2018년 1월, ‘파격적인 조건’으로 수색을 다시 하겠다고 나선 업체가 있었다. 이 업체가 바로 오션인피니티였다. 이 업체는 말레이시아 정부와 블랙박스 등 잔해를 찾지 못하면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무성과·무보수’ 계약을 맺었다. 물론 MH 370편의 동체나 블랙박스(기내기록장치) 등 잔해를 발견하면, 5000만 달러(약 562억원)를 받는 일종의 성공보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5개월간 진행된 오션인피니티의 수색 작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은 오션인피니티가 신생 업체라는 점을 걱정했다. 허영주 대표는 “우리는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다. 2차, 3차 수색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번 기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우리 선원들의 사고 원인과 생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잘하는 업체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걱정을 씻을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션인피니티는 지난해 9월7일부터 아르헨티나 인근 해역에서 실종된 아르헨티나 해군 잠수함 ‘ARA 산후안’호 수색을 진행 중이었다. 이 잠수함은 2017년 11월15일 아메리카 대륙 최남단 우수아이아에서 마르델플라타 기지로 향하던 도중 환풍구 침수에 따른 전기 시스템 고장을 보고한 뒤 실종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사고 뒤 한 달 동안 집중 수색을 벌였지만 흔적을 찾지 못했다. 선체 인양을 위한 수색 작업으로 전환하며 오션인피니티와 계약했다. 지난해 11월17일 오션인피니티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발데스반도 연안 수심 800m 지점에서 잠수함을 발견했다. 수색 종료 하루 전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스텔라데이지 실종자 가족들은 오션인피니티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대책위 제공
스텔라데이지호 수색 업체인 오션인피니티가 아르헨티나 해군 잠수함을 수색할 때 투입했던 자율주행 무인 잠수정.

이 잠수함 수색 때 오션인피니티는 자체 최신 자율주행 무인 잠수정(AUV)과 노르웨이 선적 탐사선 ‘시베드 컨스트럭터’호를 임차해 투입했다. 시베드 컨스트럭터호는 심해 수색에 필요한 각종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번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에도 오션인피니티는 시베드 컨스트럭터호를 투입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심해 수색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가족들은 그 희망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시베드 컨스트럭터호에 가족 대표 2명 승선을 정부에 요청했다. 아르헨티나 잠수함 수색 때도 실종자 가족과 언론인이 승선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수색 과정을 모두 공개했다. 아르헨티나 잠수정 수색 과정을 알게 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에 수색 과정 공개를 요청했다. 침몰 사고 초기부터 이어진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컸기에 가족들은 심해 수색 과정이 공개되기를 바랐다. 정부는 실종자 가족 1명만 승선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지난해 12월28일, 한국 정부와 오션인피니티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나는 곧바로 외교부에 시베드 컨스트럭터호에 승선해 취재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2주 뒤 답변이 돌아왔다. “언론인 취재 불허.” 안전을 이유로 들었다. 사실 나는 취재 협조를 요청했지, 취재 허가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취재 불허 통보를 받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외교부의 취재 불허 조치는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나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나 언론에 가지는 불신은 올바른 보도를 통해 해소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나도 가족들도 실망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출발하는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이미 외교부는 취재 불허 통보.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결론은 ‘그래도 취재’였다. 승선을 하지 못하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취재를 위해 남아공까지 가기로 했다. 적어도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떠나는 부둣가까지는 한국 취재진이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 순간만이라도 취재하고 보도를 해야, 국민의 알권리와 실종자 가족들의 불신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남아공 현지에 도착해보니 출항일은 1월23일에서 1월30일로 미뤄졌다. 내가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다음 날 실종자 가족을 대표해 수색선에 오를 김재복씨(가명·2등 항해사 허재용의 가족. 그는 지난해 5월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 현지 취재 때 동행했다)가 도착했다. 또 수색 작업을 모니터링할 한국 연구진 2명도 도착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박요섭 박사는 자율주행 무인 잠수정(AUV) 전문가이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의 백혁 박사는 원격조종 무인 잠수정(ROV) 전문가이다. 이들은 시베드 컨스트럭터호에 올라 수색 작업을 참관한다. 출항 날짜는 또다시 2월3일, 2월5일로 계속 변동되었다. 왜 출항 날짜가 바뀌는지 직접 확인 취재에 들어갔다. 당시 시베드 컨스트럭터호는 드라이 도크에 올라와 있었다. 5년마다 받아야 하는 정기 검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 검사 때문에 출항 날짜가 계속 변경되고 있었다. 2월1일 나는 드라이 도크에 올라가 있는 시베드 컨스트럭터호를 보기 위해 부두로 향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배를 이제야 실물로 볼 수 있었다. 실종자 가족 김재복씨도 연신 휴대전화로 배를 촬영하고 있었다.

2월5일로 예정되었던 출항 날짜는 다시 2월7일로 연기되었다.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사이 이번 스텔라데이지호 수색 작업을 총괄 지휘하는, 오션인피니티의 패트릭 벨과 앤드루 셰렐 씨를 만났다. 특히 앤드루 셰렐 씨는 아르헨티나 잠수정을 발견한 주역이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아르헨티나 잠수정을 찾았는지 물었다. 그는 “마지막 장소를 남겨놓고 걱정을 많이 했다. 수심이 깊지는 않지만 이미 광범위한 예상 수색 범위를 거의 뒤진 상황에서 확신은 없었다. 마지막 장소에서 극적으로 잠수함을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 무척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44명의 승조원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스텔라데이지호 수색 방향과 블랙박스 수거 가능성을 물었다. 그는 “스텔라데이지호는 배가 엄청나게 크고 한국 정부로부터 침몰 위치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넘겨받았다. 작업을 시작하면 3일 안에 침몰한 배의 위치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김영미 제공
한국 연구진 두 명과 실종자 가족 대표도 탐사선에 동승했다. 아래 왼쪽부터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백혁 박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박요섭 박사, 가족 대표 김재복씨. 김씨는 신변 보호를 위해 얼굴을 가렸다.

“침몰 위치에 대한 충분한 자료 받았다”

이번 스텔라데이지호 수색 작업의 총괄 책임자인 패트릭 벨도 “오션인피니티는 다른 업체보다 더 많은 심해 수색 전문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러 번 수색 작업을 같이한 시베드 컨스트럭터호와 공동 작업은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높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부터 사고 해역까지 가는 데만 6일이 걸린다. 거기서 10일 정도 수색 작업을 하고 중간 기착지까지 다시 돌아갈 것이다. 중간 기착지는 우루과이나 세인트헬레나섬이 될 것 같다. 그곳에서 승조원을 교체하고 필요한 물품을 실은 뒤 2차 수색 작전을 할 것이다. 최장 두 달 걸리는 작업이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의 가장 큰 목표는 배의 상태 확인과 블랙박스라 불리는 VDR(Voyage Data Recorder·선박항해 기록장치) 수거, 그리고 구명벌 확인이다. 현재 심해에 가라앉아 있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VDR을 어떻게 회수할지 결정할 수 있다. VDR에는 사고 직전의 배 상태와 침몰 당시 선원들의 대처 상황이 12시간가량 음성 기록으로 남아 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VDR은 선교와 선교 옥상(컴퍼스 데크)에 각각 하나씩 있다. 이 두 개를 회수하면 침몰 원인과 선원들의 탈출 여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시사IN> 제554호 ‘침몰 원인 밝혀줄 3000m 아래 블랙박스’ 기사 참조).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허영주 대표는 VDR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브라이언 영에게 편지를 보냈다. 브라이언 영은 2015년 침몰한 미국 화물선 엘파로호의 수석 조사관이었다. 2015년 10월, 엘파로호는 미국 플로리다를 출발해 푸에르토리코로 향하다 허리케인 호아킨을 만나 침몰했다. 사고 규명을 위해 미국 정부는 엘파로호 VDR 수거 작업에 나섰다. 사고 10개월 만인 2016년 8월 심해 4570m 지점에서 VDR을 찾았다. 선장의 최후 육성이 담긴 이 VDR은 엘파로호의 사고 원인을 분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심해 4000m 이상 VDR도 복구 가능”


엘파로호 VDR을 조사한 브라이언 영은 답장에서 “심해 4000m 이상 되는 곳에 1년 이상 잠겨 있던 VDR도 데이터 복구가 가능하며, 방수에 실패해 젖어 있어도 분석할 기술이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복구 작업은 데이터를 손상하지 않을 숙련된 기술자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VDR 수거는 오션인피니티가 맡겠지만, 분석에는 또 다른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VDR이 제대로 회수되어 전문 분석 기관을 통해 분석된다면 향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의 원인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부산지검 해양·환경범죄전담부는 2월11일 스텔라데이지호 선사인 폴라리스쉬핑 김완중 회장 등 12명을 선박안전법 위반 등으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과 해경 수사에 따르면 스텔라데이지호는 2009년 유조선에서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될 때 복원성 유지를 위해 각 화물창에 철광석 등 화물을 균등하게 적재한 상태(균등 적재)에서 운항해야 하는 조건으로 설계 승인되었다. 하지만 선사 측은 균등 적재가 아닌 화물창을 하나씩 건너가며 철광석을 적재하는 격창 적재 상태로 운항했다. 이 같은 불법 운항과 용도 전용 등으로 스텔라데이지호 격벽이 변형되는 등 침몰의 전조 증상이 나타났지만 선사 측은 이를 무시하고 운항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번 수색 업체의 VDR 회수로 분석이 완료되면 그 결과를 토대로 침몰의 직접적 원인을 규명하는 한편 김 회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와 과실 선박 매몰 혐의 기소 여부도 결정할 방침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대책위 제공
사고 해역에서 배를 발견하면 원격조종 무인 잠수정이 배의 상태를 확인한다.
ⓒhttp://gacetamarinera.com.ar/
아래는 원격조종 무인 잠수정 조종실 모습.


드디어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정기 검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항구에 대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월8일 오전 6시30분 나는 시베드 컨스트럭터호로 향했다. 멀리서 배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니 생각보다 아주 큰 선박이었다. 오션인피니티는 나를 위해 미디어 투어를 준비해주었다. 내가 처음 들어가서 둘러본 곳은 브리지였다. 이 배에는 승조원 60여 명이 승선해 앞으로 수색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배 안은 출항을 준비하는 승조원들로 부산했고 각종 모니터들이 보였다.

총책임자인 패트릭 벨은 “사고 해역에 도착하면 자율주행 무인 잠수정(AUV)을 통해 배의 위치를 먼저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배를 발견하면 바로 원격조종 무인 잠수정(ROV)을 넣어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나는 고글과 안전모, 안전화, 작업복을 착용하고 AUV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들은 ROV 조정실도 내게 공개했다. 영상으로만 보던 조종실을 직접 보니 마치 미래의 우주선 내부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인 잠수정 책임자인 노르웨이 국적의 트론 안드레 씨는 나에게 직접 조종석에 앉아 기계를 작동해보라고 했다. 조종간에 손을 대자마자 ROV가 예민하게 움직였다. 심해에서는 수압이 상당하기 때문에 정교한 움직임이 생명이라고 했다. 그 밖에 배에는 심해에서 선체를 절단할 수 있는 기계와 물건을 잡아 옮길 수 있는 기계, 또 뭔가 부수고 작업할 때 쓰이는 기계 등 다양한 기계가 있었다. 내가 이 배를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은 정오까지였다. 서너 시간 남짓만 취재할 수 있고 출항 준비를 위해 나는 배에서 내려야 했다. 총책임자 패트릭 벨은 “오션인피니티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수색 작업이 투명하게 공개되길 바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인 김재복씨와 두 과학자는 배에 짐을 풀고 있었다. 그때 승조원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언뜻 보니 필리핀 사람이었다. 그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운데는 필리핀 선원 14명도 있어요. 우리 국민들도 이 배에서 진행되는 수색 작업을 알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제가 취재할 수 있는 것은 여기 부둣가까지입니다. 그래도 내가 스텔라데이지호 한국 선원 가족들 옆에서 취재하고 있으니 필리핀 선원 가족들도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필리핀 사람들을 대표해 감사해요. 포기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배 안으로 들어갔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는 국적이 따로 없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대책위 제공
2월8일 오후 3시20분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사고 해역으로 출발했다. 위는 실종자 가족 대표 김재복씨가 출발 후 촬영한 사진.


배 출항 직전까지도 승조원들은 준비 작업으로 부산했다. 정오가 되자 남아공 출입국관리소에서 나온 관리들이 탐색견을 데리고 배에 들어갔다. 마지막 출항 서류 작업을 위한 과정이었다. 나는 부둣가에서 출항까지 3시간을 기다렸다. 햇살 따가운 날씨에 부둣가에서 대기하며 배가 어느 쪽으로 나가는지 항해 동선을 확인했다. 드디어 2월8일 현지 시각 오후 3시20분, 배가 조금씩 움직였다. 갑판 위에 김재복씨와 두 명의 과학자가 나와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시베드 컨스트럭터호는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다. 나는 촬영을 위해 그 넒은 부두를 계속 달려야 했다. 배가 점점 멀어져갔다. 이제 심해 3000m에서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실’을 건져 올릴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나는 부두에서 멀어져가는 배를 향해 말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여러분, 이 배 타고 꼭 돌아오세요. 국민들이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월14일 오전 11시(현지 시각) 시베드 컨스트럭터호는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사고 해역에 도착하자마자 AUV를 투입해 심해 수색을 시작했다. 작업 개시 사흘 만인 지난 2월17일 스텔라데이지호 선체 일부인 선교를 발견했다. 그 근처에 있던 VDR를 회수했다. 회수된 VDR은 현재 특수용액에 담겨 보관중이다. 이후 오션인피니티는 선체 본체, 미확인 구명벌, 수중촬영을 통한 선체 상태확인, 3D 모자이크 영상재현 등의 작업을 위해 심해수색을 계속할 예정이다.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허영주 공동대표는 “회수된 VDR외에 선체 안에 있는 다른 VDR 한 개를 더 찾아야 하므로 향후 수색작업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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