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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함을 놀이로 바꾼 스티커 사진의 운명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 관장)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2월 15일 금요일 제5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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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술에도 유행과 운명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제 길거리에서 잘 눈에 띄지 않는 스티커 사진기이다. 일본에서 발명되었다는 이 즉석 사진기는 20여 년 전에 등장했다. 스티커 사진기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마다 있었고 모임 도중 이동할 때 심심풀이로 사진을 찍어 나눠 가지며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스티커 사진은 사진이 완전한 놀이, 이미지 게임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유행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고,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의 득세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럼에도 스티커 사진은 사진 찍기의 태도를 바꿨고 의미와 소통 방식도 변화시켰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일종의 의무감과 엄숙함 속에 사진을 찍었다. 백일, 돌, 생일잔치, 입학식, 졸업식, 소풍, 결혼식 등 인생의 작은 한 매듭을 지어야 할 때,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인화를 해서 앨범에 넣었다. 스티커 사진은 그 엄숙함, 심각함을 놀이로 바꾸었다. 사람들은 회식 후에, 데이트를 하다가, 그냥 길을 걷다가도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이미지를 만드는 게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물론 그 사진은 색깔과 재현 능력이 다소 조악했고 내구성도 약했지만 그걸 상관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어차피 스티커 사진은 기록되고 보존되는 게 아니라 소비되어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강흥구 제공
스티커 사진(아래)은 사진 찍기의 태도와 소통 방식을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스티커 사진을, 보관하고 감상하고 읽기 위해 찍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혹은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찍지도 않는다. 스티커 사진은 이미지 게임의 일종이다. 그 이미지 게임은 대상을 닮았으면서도 대상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사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진 찍는 사람에게 변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에선 소멸 위기, 일본에선 큰 인기


스티커 사진은 환상이 현실적인 이미지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초기의 스티커 사진이 즉각성, 접착 가능한 기능을 내세웠다면 다음 세대의 스티커 사진은 가상적인 이미지가 가능함을 전면에 내세웠다. 가발이 제공되었고, <보그>나 <하퍼스 바자> 같은 유명한 패션잡지의 모델이 되거나, 영화 포스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스타처럼 카드로 만들어지며 달력과 배지에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진 매체가 가지는 정확한 재현성은 관심 밖이었다. 대신 전형적인 결혼식 사진처럼 부드러운 연초점과 파스텔톤 색채가 강했다. 꼼꼼히 수정된 화장품 광고 사진처럼 피부는 맑고 깨끗하고 포즈들도 가볍고 명랑했다.

이런 이미지에는 의미가 없다. 의미가 있다고 해도 거의 해독될 필요가 없는 즉각적인 것이다. 그래서 스티커 사진은 순수한 기표이며 스티커 사진기는 환상을 제조하는 연금술이다. 그 연금술의 도가니 속에서 이미지는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라 공기 중에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제 스티커 사진을 찍는 곳은 유명 관광지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장소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일본에서는 아직도 성업 중이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고 업체들은 주장하지만 소멸의 길에 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이미지 생산기술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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