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도 제법 글로벌 캠퍼스 느낌이 나는걸!’ 한국 학생들과 어울려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을 볼 때면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한국 학생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 친구들과 막힘없이 대화하는 모습도 이젠 낯설지 않다. 외국인 학생들이 많아져 학내 다양성이 커진다면 부작용도 일부 있겠지만 장점이 더 많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다. 한국 학생들이 외국인 친구를 만들기 위해 캠퍼스 밖에서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외국 문화를 간접적이나마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지 싶었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속마음을 엿보게 된 건 한 설문조사의 외국인 학생 관련 문항을 통해서였다. 답변 요지는 이렇다. “외국인 학생 선발을 너무 대충 한다. 낮은 문턱 탓에 실력 없는 외국인이 입학하고, 성적에 비해 많은 혜택을 가져간다. 입학 조건을 높일 필요가 있다.” 입시 지옥문을 통과한 뒤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며 학점과 스펙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 학생들에게, 외국인 학생은 마냥 좋은 친구만은 아니었다.

학생들 상당수가 공유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경험에서 나오는 듯했다. “한국어 평가 기준이 낮다” “통·번역 도와주다 공부 시간 빼앗긴다” “국민 세금으로 공부하면서 놀다 돌아간다” 따위 의견도 있었다. 심지어 갑자기 잠적해 수소문해보니 아무 말 없이 본국으로 돌아가버린 학생도 있다고 한다.

ⓒ박해성


외국인 교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더 복잡하다. 행정의 관점에서 그들은 불편한 존재다. 학과장처럼 돌아가며 맡는 보직을 수행하기 어렵고, 통·번역이 필요해 업무를 더 번거롭게 만든다.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는 “뛰어난 교수가 한국에 왜 오겠느냐”라는 자조가 퍼져 있다. 고액 연봉을 주고 초빙한 외국인 교수를 향해선, 가뜩이나 부족한 학내 자원이 특정인에게 쏠리는 데 대한 불만이 더해진다. 이런 분위기를 알고도 한국계이거나, 배우자가 한국인이거나, 한국 관련 전공자가 아닌 이상 전도유망한 실력파 외국인 교수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할까.

그럼에도 외국인 구성원을 늘리고 있는 대학의 노력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 포장돼 있다. 지한파 배출, 대학의 국제적 위상 제고, 해외 우수 대학과의 교류 및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끼리끼리 문화와 관습에 젖은 국내 학계 쇄신…. 하지만 대학 구성원들은 알고 있다. 정부와 언론이 들이미는 국제화 평가지표가 대학을 초조하게 만들고, 신입생 수 감소와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압박이 무분별한 유학생 유치를 초래한 것을. 국내 학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교수 사회의 냉소는 전략과 진정성 없는 대학 국제화 정책의 결과인 셈이다.

“대학 수준이 높으면 외국인이 알아서 찾아온다”

국제화 또는 외국인 관련 행정부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캠퍼스 내 외국인을 위한 지원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일은 필요하다. 소수자로서 그들을 배려하고 꼭 필요한 혜택은 늘려야 한다. 다만 설문조사에서 여러 학생들이 지적한, 단순하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대학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해외의 우수 인재가 선택할 만큼 한국의 대학이 매력적이지 못하다. 대학의 수준이 높고 교수진이 훌륭하며, 교육·연구 환경이 잘 갖춰져 있으면 실력 있는 외국인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외국인 학생과 교수가 대학 본연의 역할인 교육·연구에 기여하고, 그 성과로 인해 우수한 외국인이 국내 대학에 제 발로 모여드는 선순환 구조는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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