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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보수 본류’ 밀어낸 개헌파의 탄생

자민당 아베 총리 세력은 대한민국과 갈등을 빚어 ‘재무장론 득세→개헌 의석수 확보’를 노린다. ‘보수 방류’가 호헌·평화를 지향하는 ‘보수 본류’를 밀어낸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도쿄·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9년 02월 19일 화요일 제5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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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회의사당 중앙홀의 네 귀퉁이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근현대 정치사의 주요 인물을 기리는 의미다. 한국인에게 낯익은 얼굴도 보인다. 안중근 의사가 암살한 일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다. 다른 두 인물도 한국과 무관치 않다. 이타가키 다이스케는 1870년대 조선을 점령하자는 정한론을 주창했다. 오쿠마 시게노부는 중국에 ‘21개조 요구’를 들이밀며 아시아 침략 야욕을 드러낸 인물이다. 세 동상 옆에는 비어 있는 동상 받침대가 하나 있다. 제복을 입은 국회의사당 가이드가 그 의미를 들려줬다. “언젠가 다른 세 분처럼 훌륭한 정치인이 배출돼 여기에 서길 바란다는 의미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분명 합의가 불가능한 지점이 있다.

최근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다. 직접적 계기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다. 지난해 10월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 기업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었다.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1965년 한·일 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은 마무리됐다”라는 주장을 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경하다. 1월10일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본 NHK 기자가 이 사안에 대해 묻자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더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중략)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하고 일본도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20일부터 네 차례에 걸친 일본 초계기의 위협 비행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초계기 위협 비행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이다. 위는 지난해 5월9일 만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총리.

일본의 도발은 ‘개헌을 위한 아베 정권의 노림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일본 헌법 제9조는 군대 보유 금지와 전쟁 포기를 규정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2년 재집권 뒤 꾸준히 헌법 9조 개정 의사를 밝혀왔다. ‘재무장론’은 주변국과 긴장 관계가 조성될수록 힘을 받는다. 즉, 한국과 갈등을 빚을수록 개헌을 주장하는 세력은 정치적 이득을 본다.

헌법 9조 개정이 자민당의 전통적 기조는 아니다. 오히려 ‘보수 본류’라고 불리던 자민당 주류 파벌들은 호헌·평화와 경제 우선주의를 지향했다. 1951년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되고 주일 미군이 주둔하면서 일본은 군대를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국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국방비를 들이지 않고 온전히 경제성장에 집중한 결과 1960년대 일본은 고도성장에 접어들었다.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는 이 모델을 ‘특수국가’라고 불렀다. “헌법 9조를 지키고 군사 소국이라는 것을 무기로 삼아 경제협력과 기술협력을 통해 관련국들과의 외교관계를 두텁게 하고, 안전보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미야자와 전 총리는 1992년 일본 의회에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보수 본류로서는 주변국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고도 경제성장의 과실로 정권을 재창출하는 편이 안전한 선택이었다.

ⓒAP Photo
옛 일본 군복을 입은 일본인들이 욱일기를 들고 야스쿠니 신사에서 행진하고 있다.
국가주의가 ‘새 정치’로 둔갑


개헌을 추구하는 세력이 자민당 안에 없지는 않았다. 이들 ‘보수 방류’ 출신 가운데 총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 방류의 개헌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일본 특유의 파벌 정치가 견제장치 구실을 했다. 오랜 기간 거대 세력을 유지했던 자민당의 보수 본류 인사들은 신진 세력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권 창출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다. 헌법 개정을 시도하는 파벌이 힘을 얻으면 보수 본류에 속하는 여러 파벌이 뭉쳐 견제했다.

개헌파가 본격적으로 득세한 것은 자민당의 연이은 부패 스캔들이 터져 나오면서부터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록히드 사건, 리쿠르트 사건, 도쿄 사가와큐빈 사건 등 대형 부정부패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급기야 1993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자 자민당은 정치 개혁 요구에 휘말렸다. 부패 세력으로 내몰린 보수 본류 파벌은 퇴출되고 비주류였던 개헌 세력이 ‘보통국가론’을 들고 와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국가주의가 ‘새 정치’로 둔갑한 순간이었다.

야당은 자민당을 막지 못했다. 1990년대까지 존속한 일본사회당은 호헌·평화를 전면에 내걸었다. 자민당 보수 본류에게 그랬듯, 55년 체제(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지속된 보수 우위 체제를 이렇게 부른다) 아래에서 내건 호헌·평화는 사회당에도 이익이었다.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 시노다 도루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 전 일본 군대는 단순한 군부대가 아니었다. 내각을 간단히 부술 수 있는 조직이었다. 그래서 일본을 전쟁 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개헌 저지선 3분의 1을 지켰던 사회당은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사회당의 뒤를 이어 유력 야권 정당으로 부상한 민주당에는 개헌에 찬동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 등 현재 남아 있는 야당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호세이 대학 정치학과의 신카와 도시미쓰 교수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권이 밀어붙인 국철(국유철도) 민영화가 한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국철 노조는 사회당이 호헌·평화 기조를 유지하도록 압박해온 대표적 노조였다.

당내 견제 세력과 강성 여당이 사라진 뒤 보수 방류는 주류가 되어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2001년 취임 직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파벌 정치를 일소하겠다는 명분 아래 그가 감행한 ‘구조 개혁’은 보수 본류 세력과 이익단체들의 연계를 자르는 작업이었다. 2000년대 이후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북한 핵실험 등이 터지면서 일본 개헌 세력은 ‘국제 공헌’이라는 명분을 쌓았다. 아베 정권을 떠받치는 자민당 개헌 세력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 결과는 개헌 일정에 직접 영향을 준다.

사회당 해체 뒤 남아 있는 일본 야당 중에는 호헌·평화를 당론으로 걸지 않는 곳이 많다. 옛 민주당 계열 정당인 국민민주당의 고바야시 마사오 참의원에게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해 묻자 군사 문제부터 꺼냈다. “한·미·일은 방위상으로 연계하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도 체결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고 일본인 납북 피해자가 귀환하기 위해 3국이 토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현지에서 만난 야당 가운데 호헌·평화를 가장 강력히 내세운 곳은 일본공산당이었다. 공산당 관계자는 “보수 정당들과의 선거 연대를 두고 당 안팎에서 말이 많았지만 헌법 개정은 절대 이뤄져선 안 되기에 단결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공산당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서도 “당연하다”라고 답했다. 공산당원의 평균연령을 묻자 “60세는 넘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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