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읽은 〈쿠오바디스〉에는 로마 황제 네로에 관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로마가 불타오르는 광경을 내려다보며 시종에게 하프를 치게 하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이건 후세에 지어진 ‘가짜 뉴스’이고 실제로 네로는 화재 현장을 누비며 구호 활동을 했단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로마의 재건이다. 요즘으로 치면 도시 재개발이다. 로마에는 원래 목조로 7층까지 올린 임대주택이 많았다. 가난한 이들과 외지인이 머물며 건물주인 귀족에게 임차료를 냈다. 이 주택들이 홀랑 타버리자 네로는 땅을 헐값에 사들여 석조로 된 공공건물을 지었다. 물론 황제의 소유나 다름없었다. 도시 재개발은 언제나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시행되는 가장 오래된 사례일 뿐이다.
재개발은 수많은 것을 과거의 흔적으로 돌린다. 네로 이전의 로마 모습도 고고학과 첨단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얼마나 실제에 가까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샤를 마르빌(1816~1879)을 기억할 만하다. 사진 초창기 콜로디언 습판법을 배워 매우 선명한 사진을 제작했던 그는, 1858년부터 약 10년간 프랑스의 구도심을 기록했다.
당시 혁명을 두려워했던 나폴레옹 3세는 바리케이드를 쌓아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는 좁은 골목이 싫었다. 그는 파리 재개발 사업을 조르주 외젠 오스만에게 맡겼다. 오스만은 파리를 큰 대로가 쭉쭉 뻗은 오늘날의 형태로 설계했고, 그 대로가 지나는 곳은 모조리 부쉈다. 물론 이곳에 몰려 사는 이들은 주로 서민이었다. 새로 들어서게 될 주상복합 건물에 들어가 살 사람들은 귀족과 부르주아였다. 그런데 오스만이 사진가 마르빌을 불러 사라지게 될 파리의 구도심을 촬영하게 했다. 이렇게 오스만은 10년 동안 마르빌을 후원했고 고화질 사진 수천 장이 남게 되었다. 마르빌의 사진 아카이브는 인류 최초의 재개발 사진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9세기 중반 파리의 모습을 상상이 아닌 실제의 풍경으로 만날 수 있다.
삶과 노동, 낡은 거리의 공존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가장 많이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닌 지역이 청계-을지-충무로 일대 공구상가다. 이 지역은 허름하고 낡았다. 어쩌면 그래서 내 렌즈를 매혹하는지도 모른다. 이 작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지역은 총 8개 구역으로 나뉘어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물론 요즘은 재개발이라는 살벌한 말 대신 ‘도시 재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한 도시 재개발이나 재생은 그리 다르지 않다. 재개발이든 재생이든 그곳에 사는 가난한 이들과 그 공간의 문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본의 수익과 근대 문화 취향을 뽐내려는 무형의 지적 이익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카메라 들고 수많은 곳을 다녀봐도, 재개발은 공적인 합의와 정책적인 지원 없이는 가진 자들의 잔치로 끝날 뿐이었다. 삶과 노동, 그리고 낡은 거리가 공존하려면 그곳에서 살아온 이들을 타자화하지 않아야 한다.
난 그저 열심히 사진기록이나 해야겠다. “과거 이곳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던 공구거리였구나” 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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