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1월3일 대림역 인근 스마트폰 매장에서 윤금애씨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철모르던 시절, 한국에 가기만 하면 돈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질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자신만만했다. 윤금애씨 조부모는 경북 상주에서, 외조부모는 경북 고령에서 일제강점기에 만주로 넘어왔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인근 상즈(상지)시. 부모는 이곳 조선인 마을에서 태어나고 결혼해 하얼빈에서 터전을 일궜다. 군인 출신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유리천장에 부딪혔다.

유년 시절은 상대적으로 유복했지만, 중학생 때 아버지가 임종하며 집안이 기울었다. 윤씨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1994년 한국으로 떠났고, 윤씨도 스물여섯이던 2000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001년에서 2004년까지 대림2동에 있는 친구의 반지하 방에 얹혀살면서 강남 신사동에 있는 식당으로 매일 출퇴근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돈 모아서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했어요. 옷도 한 벌 가지고 계속 돌려 입고.” 인생에서 가장 숨 가쁘고 치열하게 살던 때, 힘이 되어준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남편이 살던 안양에서 핸드폰 매장 일을 배웠고, 지금은 대림역 4번 출구 주변에서 스마트폰 매장을 운영한다.

“언젠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에 우리 이야기가 소재로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각자가 가진 사연과 역사가 많거든요.” 주말 밤 가게 문을 닫고 ‘자율방범대’ 옷을 챙겨 입던 윤씨가 이렇게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중국동포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으면…” 하는 생각으로 대림역 인근 자율방범대 활동을 이어나갔다. 20대는 너무 빨리, 힘들게 지나갔지만 그는 이제 정착민으로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시사IN 신선영윤씨는 주말 저녁마다 구로4동 자율방범대에서 활동한다.
재한 조선족 사회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길 바라며 시작한 일이다.

 

 

 

기자명 글 김동인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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