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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웃거나 바보처럼 착해지거나

2008년 하반기 충무로 영화의 분명한 한 경향은 ‘풍자’와 ‘엇박자 유머’다. 그 코믹한 쾌감은 이 암담한 시대에 우리가 살아갈 방법 중 하나다.

이지훈 (필름2.0 편집위원·영화평론가) 2008년 12월 09일 화요일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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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세간에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립스틱 색이 짙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혹자는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니 치마 길이라도 짧게 해야 지출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말하고, 혹자는 여성은 원래 경제에 관심이 없으니 그런 소리는 다 헛소리라 말하지만, 가장 유력한 분석은 시대가 암울할수록 좀더 자신을 드러내고픈 욕망이 짧은 치마 길이와 짙은 립스틱 색깔로 분출된다는 해석이다. 아무려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에게나 그들을 둘러싼 정치·경제 환경은 특정한 문화적 결과와 얼마간 연계되기 마련이니, 치마 길이와 립스틱 색깔처럼 영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1724 기방난동사건>과 <다찌마와 리> 그리고 <바보>


최근 개봉작 중 여균동 감독의 <1724 기방난동사건>이라는 영화가 있다. 1724년 조선, 당파 싸움이 한창이던 시기, 전국의 뒷골목 패권을 장악해 조선을 뒤집으려는 조폭 두목 만득(김석훈)이 천둥이란 이름의 핵주먹(이정재)과 대결을 벌이며 난동을 부린다는 스토리다. 명분으로만 치자면 아무리 조폭이라 한들 난세에 분연히 떨쳐 일어난 만득의 기세는 의기롭고 또한 정당하다. 더불어 만득을 향해 그 따위로 주먹 날리고 칼질하면서 무슨 놈의 조국을 구원하겠느냐는 천둥의 쓴소리 또한 호기롭다. 하지만 <1724 기방난동사건>에서 정작 난국의 조선에 호통을 치는 건 만득도 아니요 천둥도 아닐지니, 그것은 바로 그네들의 갖가지 우스꽝스러운 행태에 각종 풍자와 조롱을 날리는 여균동 감독의 희한한 연출에 있다.

그렇게 놓고 보니 올여름 개봉했던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떠오른다. 같은 감독이 2000년 연출했던 중편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의 장편 버전쯤으로 기획된 이 영화는, 정상 두뇌 상태로는 감상 자체가 다소 버거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라는 과거 한국 액션 영화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이 영화는 1960~1970년대 액션 장르의 갖가지 과장과 허풍의 문법을 통해 1940년대를 살아간 인간들을 전부 과대망상에 빠진 코미디언으로 만든다. 그 우스꽝스럽고도 단순명쾌한 풍자는 <1724 기방난동사건>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니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겠다.

   
ⓒ난 나 그림
여균동 감독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고, 류승완 감독 또한 <짝패>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영화 두 편이 이렇듯 유달리 엇박자 코미디로 완성된 데에는, 물론 제작비 등 충무로 제작 환경 변화도 작용했겠지만, 아무래도 시대와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자고로 암담한 기운이 만연한 시대에 각국의 영화는 제각각의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특히 2008년 하반기 충무로 영화의 한 경향은 분명히 ‘풍자’와 ‘엇박자 유머’다. 게다가 두 영화 모두 그 텍스트 내부에서 현대 사회와의 연관성을 몽땅 지워버린다 해도 이미 그 코믹한 쾌감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지금의 세상을 살아갈 몇 가지 길 중의 하나는 ‘마음껏 조롱하며 통쾌하게 웃어제끼는’ 길이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던 <바보>도 떠오른다. 이 영화야말로 그저 바보처럼 웃으면 세상이 순수해진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현세를 살아갈 해결책은 또 하나가 있다. 마음껏 웃어주거나, 바보처럼 착해지거나. 딱히 지금 시대의 무슨 무슨 정황들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해도, 또한 그렇게 하지 않고선 딱히 방법도 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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