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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이주민들은 왜 대림동으로 옮겼을까

글 김동인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astoria@sisain.co.kr 2019년 02월 08일 금요일 제5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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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벌집’ 주택.

1978년부터 시작된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은 상하이·칭다오 등 연해 지역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전통적 중공업 지역이던 동북3성(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은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 지역에 모여 살던 중국 조선족은 1990년대 중국 내 연해 지역이나 대도시 외에도 한국·일본·미국·영국 등으로 일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1990년대에는 이들이 한국에 장기 체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제한적이었다. 체류 기한을 넘긴 채 한국에 불법체류자로 남는 이들이 늘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1970~198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살던 ‘가리봉동 벌집’(1인용 방이 벌집처럼 배치되어 있고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는 구조)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한국 저임금 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그대로 중국 저임금 노동자의 초기 정착 터전이 되었다. 마침 가리봉동은 남구로역 근처의 인력시장과 가까웠고 영세 소기업과 각종 인력사무소가 모여 있었다.

음지에 있던 조선족 이주민들은 2004년 재외동포법 개정, 2007년 방문취업제도 시행을 통해 양지로 나올 수 있었다. 합법적이고 안정적인 거주가 가능하게 되면서 좀 더 나은 주거 환경에 대한 요구가 뒤따랐다. 마침 2003년 가리봉동 일대가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세입자였던 이주민들이 주거 안정을 위협받기 시작했다. 방문취업제도 시행 이후 한국을 찾는 조선족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신분 보장, 인구 증가, 상권 확대, 재개발 이슈가 결합하면서 재한 조선족 커뮤니티는 인근 대림동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은 ‘대림동 한 달 살기’ 웹페이지(daerim.sisain.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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