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여전히 2016년 탄핵 정국의 자장 안에서 움직인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자유한국당 입당도 이 맥락에서 읽어야 의미가 잡힌다. 박근혜 대통령 직무정지 시절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황 전 총리가 1월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그는 2월27일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대표 주자로 나설 전망이다. 몇몇 친박계 의원들이 일찌감치 ‘대세론’을 퍼뜨릴 정도로, 현재 보수 진영에서 중량감 있는 카드다.
묘한 역설은 여기서부터다. 황교안 전 총리는 탄핵으로 막을 내린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사였다. 그런데도 입당 즉시 제1 야당의 유력 당권 주자로 대접받는다. 탄핵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여론이 뒤집어진 징후는 없다. 다음 대표는 2020년 총선에서 당의 얼굴이다. 어쩌자는 걸까.

ⓒ시사IN 신선영1월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맨 오른쪽)는 2월27일 전당대회에서 ‘진성 친박계 당 대표’가 될 수도 있다.

2016년 탄핵 정국의 힘은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보수 정당을 쪼갤 만큼 강력했다. 2016년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이날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의원 128명 중에서 62명이 탄핵 찬성으로 돌아선다(탄핵 투표는 무기명이지만 새누리당이 아닌 모든 의원이 탄핵에 찬성했다고 가정하면 계산할 수 있는데, 당시 상황으로 이게 무리한 가정은 아니다). 탄핵 투표에서 기권·무효·불참은 탄핵 반대와 같은 효과를 내므로, 나머지 66명을 탄핵 반대표로 묶어도 된다. 이날 새누리당은 66명(탄핵 반대) 대 62명(탄핵 찬성)으로, 거의 절반으로 쪼개졌다. 탄핵 찬성표 62표는 주변부 친박근혜계도 제법 섞여 있어야 나오는 숫자다. 그러나 탄핵을 반대하는 단호한 친박근혜 표가 아주 약간 많았다.

탄핵이 가져온 중대한 정치 변동 두 가지

이 약간의 차이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보수 정당의 운명을 갈라놓는 결정적 차이였다. 탄핵소추안 표결 1주일 뒤인 2016년 12월16일, 친박계와 비박계가 원내대표 선거에서 정면충돌한다. 친박계 후보 정우택 의원이 62표를 얻어, 비박계 후보 나경원 의원(55표)을 제치고 원내대표가 된다. 정우택 의원의 62표는 탄핵 반대표 66표와 비슷하다. 탄핵 충격파 속에도 친박계가 다시 주도권을 잡으면서, 결국 비박계는 집단 탈당과 신당 창당을 선택한다. 이게 최대 33석까지 갔던 바른정당이었다. 보수에서는 보기 드문 사건인데, 그만큼 탄핵 정국의 구속력이 강했다.

탄핵은 두 가지 중대하고 구조적인 정치 변동을 만들어냈다. 첫째, 한국 정치의 보수 우위를 산산조각 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정당 득표로 1100만 표를 얻었다(광역비례의원 득표 전국 합산). 득표율 48.5%다.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18개월이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정당 득표 700만 표로 추락한다. 득표율 27.8%다. 이 숫자는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자유한국당)가 얻은 785만 표(24%)와 큰 차이가 없다. 탄핵의 직접 충격파가 사라진 후에도 유권자 지형이 과거로 복원되지 않고 있다.

정치학자들이 보수 우위 해체의 시작으로 보는 선거는 탄핵 이전인 2016년 총선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본격화하던 시기다. 이때 새누리당은 정당 득표 796만 표(33.5%)를 얻어, 2014년 지방선거 대비 불과 2년 만에 300만 표를 잃는다. 2016년 총선에서 흔들린 민심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고, 그렇게 취약해진 새누리당이 탄핵 핵폭발을 견디지 못하고 쪼개진다. 그 결과 자유한국당은 ‘700만 표대 박스권’ 탈출에 세 번 연속 실패했다.

둘째, 보수 세력이 분열됐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더 전통적인 보수와 바른정당 창당파를 중심으로 한 보수 쇄신 그룹이 구조적으로 쪼개졌다. 경계는 선명했다. 탄핵은 옳았나, 잘못이었나? 탄핵이 워낙 거대한 사건이었으므로, 이 질문도 거대한 질문이 됐다. 이 질문은 탄핵 투표 자체에 대한 전술적인 판단 이상의 문제다. 이 질문은 박근혜 정부의 통치가 위헌적이었나 아닌가를, 어떤 통치가 헌법에 충실한 것인가를 묻는다. 정치 세력으로서 원칙과 기준을 묻는 질문이니만큼 시간이 흐른다고 얼버무리거나 한편으로 제쳐놓기가 무척 어렵다.

보수 안에서는 아슬아슬하게 탄핵 반대파의 숫자가 많았다. 의원 숫자로는 66대 62였다. 여론 지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중도층이 보수당 지지를 이탈하면서, 전체 유권자의 15% 안팎으로 추산되는 탄핵 반대파가 보수 내에서는 다수파가 되었다. 탄핵과 분당 사태 이후 2년에 걸친 보수의 내부 경쟁은 탄핵 반대파의 우세로 기울고 있다. 지난해 12월11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 이번에는 친박계의 지원을 업은 나경원 의원이 원내대표가 된다. 68표였다. 2년의 시차가 있으나, ‘탄핵 반대 66표’부터 이어온 친박계의 마지노선은 건재하다.

이런 흐름에서 황교안 전 총리가 입당했다. 현재 흐름대로라면 2월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탄핵 정국의 이정현 대표 체제 이후 처음으로 진성 친박계 당 대표가 들어설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유권자들이 탄핵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탄핵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정치 세력이 다수파가 될 가능성은 아주 멀어 보인다. 그러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탄핵 찬반이라는 경계선을 지워야 한다. 1월15일 기자회견에서 황 전 총리는 “탄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건 국민통합이다. 자유한국당이 국민에게 신뢰받고 국민 통합을 앞장서서 이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 동문서답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2012년 안철수’ 떠올리게 한 얼버무리기

너무나 명확한 균열이 존재하지만, 이 균열을 뛰어넘지 않으면 답이 없는 상황. 이 딜레마를 안철수 전 의원이 2012년 대선(당시는 무소속)에서 먼저 맞닥뜨린 바 있다. 당시 그는 민주당 정통 지지층과 ‘새정치’에 환호하는 무당파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대선 레이스에서 조기 탈락했다. 지금 황교안 전 총리가 받아든 숙제는 그때 안철수 전 의원의 숙제보다 더 어렵다. 민주당 지지층과 ‘새정치’ 무당파는 그럭저럭 접점이라도 있었다. 탄핵 찬성과 반대는 그럴 여지조차 없는 양자택일의 문제이자, 정치 세력이 통치에 대해 갖는 원칙의 문제다.


황 전 총리가 입당 일성으로 보여준 답은 얼버무리기였다. 마치 그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비켜갔다. ‘2012년 안철수’를 떠올리게 하는 접근법이다. 이게 작동할까. 그러려면 유권자들이 탄핵에 대한 정치 세력의 태도를 부차적이거나 덜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가정은 지나치게 희망이 섞여 있다. 이 길이 안 된다면, 황 전 총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탄핵 찬반을 뛰어넘어 핵심 전선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갈등 자체를 정의하는 능력. 이것은 진정 탁월한 정치가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입당 첫 기자회견에서 그런 징후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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