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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다섯에 탭댄스 대박이어라

탭댄스는 시종 뛰는 행위이다. 제대로 소리를 내려면 정확하고 힘 있게 움직여야 한다. 10분만 해도 온몸이 푹 젖는데 한 시간을 춘다.그래도 내 무릎은 무사하다. 놀라운 일이다.

이영미 (대중문화 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1월 31일 목요일 제5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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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댄스를 그만둔 후 몇 달쯤 지났을까? 다시 몸이 좀 근질거렸던 모양이다. 한 후배가 탭댄스를 배우러 다니는데 운동이 꽤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와우! 일반인들에게 탭댄스 가르치는 학원도 있어?’ 싶었다. 모든 것을 판매하는 이 사회에서 뭔들 없겠는가마는, 그래도 탭댄스는 뮤지컬 전공자들이나 배울 것이라 짐작했는데 의외였다. 구미가 확 당겼다. 

댄스스포츠는 계속 배우고 있었다.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되었는데 라틴댄스인 자이브·룸바·차차차·삼바를 끝내고, 바야흐로 모던댄스인 왈츠로 들어서고 있었다. 맞다! 몸이 근질거린 것은 왈츠 때문이었을 테다. 정작 가장 배우고 싶었던 춤이었건만, 막상 해보니 아주 어려웠다. 게다가 하도 우아하게 움직이는 춤이라 라틴댄스의 발랄하고 격렬한 움직임이 좀 그립기도 했다. 그 마음의 틈으로 ‘탭댄스’란 말이 훅 들어왔다.
후배를 따라 탭댄스 학원을 찾아갔다. 볼륨 높은 음악소리와 이를 압도하는 탭댄스 발소리에 학원 입구가 쩌렁쩌렁 울렸다. 기분과 긴장감이 함께 ‘업’됐다. 태퍼(tapper) 박용갑 선생님의 학원인데, 그는 올겨울 개봉한 영화 <스윙 키즈>의 안무자 중 한 분이다. 이 학원에서는 기본동작 훈련을 함께한 후, 안무된 춤 배우기는 개인마다 따로 진도를 나가는 방식으로 지도했다.

ⓒ이우일 그림

쉰다섯에 탭댄스? 과연 할 수 있을까? 오래 못 할 수도 있겠다고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당연히 무릎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몇 년 동안 잠잠했던 무릎관절 통증이 도지지나 않을까? 하지만 춤을 배우면서 재발한 적이 없으니 그래도 믿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더 강화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50대에 무릎관절염이 생긴 친정어머니는 결국 여든이 되어 두 무릎에 인공관절을 박았다.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면 운동을 더 해야 한다. 그런데 탭댄스는 괜찮을까 싶어 검색을 해보았다. 외국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운동 삼아 기초 탭댄스를 배운다고 하고 심지어 그 학원에도 환갑 된 여자 한 명이 있단다. 그래, 슬슬 해보는 거야. 무릎 아프면 그만두지, 뭐.

탭댄스에는 새 장비가 필요했다. 탭슈즈는 필수다. 2㎝ 납작 굽에 스니커즈처럼 발목도 낮아, 발목을 많이 움직이고 많이 뛰어도 아주 편한 신발이다. 앞부분과 뒷부분에는 마치 말굽에 박는 징처럼 납작한 쇠가 붙어 있어 바닥과 부딪칠 때마다 경쾌한 소리를 내도록 되어 있다. 초보용은 5만원 내외로 살 수 있다. 끈을 꽉 동여매어 슈즈를 신었다. 움직일 때마다 발에서 따그락따그락 소리가 나는 게 신기했다.

수강생 예닐곱의 면면은 아주 다양했다. 20대 대학생부터 50대까지 천차만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른바 ‘업계’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즉 뮤지컬이나 연극 전공자들이 몇 명 있었다. 내가 속한 반보다 높은 레벨의 반에서는 주로 전공자들이 배우고 있었다. 우리 반 수업은 종종 낄낄거리고 와르르 웃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전공자들의 수업은 긴장과 집중의 정도가 높고 탭 소리만 아주 빠르게 울린다. 우리 반에도 업계 사람들이 한두 명 있었는데 그들은 금방 알아볼 정도로 몸이 다르다. 특히 뮤지컬 전공자들은 재즈댄스나 현대무용의 초보 훈련을 했기 때문에 기본자세부터 달랐고, 특히 회전 동작을 할 때에는 ‘앗, 춤 배운 사람이구나!’ 싶게 확연히 티가 났다. 나처럼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초보자도 많았다.

탭댄스는 춤이면서 발로 하는 연주

탭댄스는 춤이면서 발로 하는 연주이다. 소리를 제대로 내는 게 중요하다. 기본동작 훈련도 모두 소리를 내는 다양한 방법으로 짜여 있다. 인간의 발로 소리를 내는 방법이 이렇게 다양하다니 놀라울 정도다. 발가락과 볼(발가락과 연결된, 발 앞쪽의 도톰한 부위)을 바닥에 대는 방식의 평범한 걸음인 ‘스텝’, 발뒤꿈치를 땅에 댄 채 앞쪽 볼을 탁 내려놓는 ‘볼’, 발을 세워 구두코를 바닥에 찍는 ‘토’, 앞으로 살짝 차면서 볼로 바닥을 긁어 소리를 내는 ‘브러시’, 브러시와 스텝을 연달아 하며 2사운드의 연결음을 내는 ‘플랩’ 등 정말 기기묘묘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데, 동작마다 다 다른 소리가 난다. 간단해 보이는 탭슈즈가 이토록 훌륭한 타악기인 줄 미처 몰랐다.

기본동작 훈련 중 가장 신기했던 것은 뒤로 뛰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발의 앞부분을 모두 들고 뒤꿈치로만 섰다가 폴짝 뒤로 뛰면서 볼로 바닥을 긁어 소리를 내는 동작, 이건 한 달이 넘어야 겨우 흉내라도 내본다. 발을 모아 뛰는 것은 고등학교 때 체력장을 해본 이후로는 한 번도 없는데 심지어 뒤로 뛰다니, 정말 상상도 안 해본 동작이었다. 더 어려운 것은 폴짝폴짝 뒤로 연달아 뛰면서 딸깍딸깍 소리를 내는 동작이다. 다리 힘이 많이 들고 요령도 터득해야 한다. 이걸 처음 본 날엔 너무 황당해서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라고 되물었는데,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자꾸 하다 보면 돼요”라며 웃는다. 너덧 달 정도 반복하니 ‘딸깍’까지는 아니고 ‘띡’ 소리가 조금 나기 시작했다. 이 소리를 처음 성공시킨 날, 모두들 손뼉을 치며 축하해주었다.

고양이가 피아노 건반을 밟아도 소리는 나듯, 탭슈즈를 신으면 어떻게 움직여도 소리는 난다. 악기 소리처럼 잘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정확하고 힘 있게 동작을 해야만 경쾌하고 명확한 소리가 난다. 내 소리와 선생님이 내는 소리는 고양이와 피아니스트 정도의 차이다. 다리 힘이 관건이므로 나이에 따라서도 소리 차이가 크다. 20~30대 젊은 회원들은 대충 움직이는 것 같은데도 ‘딱’ 하는 소리가 차지게 나는데, 나 같은 40~50대는 ‘띡’ 하고 소리가 나다가 만다. 힘과 정확도가 다른 것이다.

발로 타악기 소리를 내려니, 탭댄스 동작은 시종 뛰는 동작들이다. 한 시간 내내 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분 후부터는 셔츠와 바지가 땀에 폭 젖는다. 조깅 못지않은 운동이지만, 동작을 생각하며 움직여야 하니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과연 내 무릎은 안녕했을까? 놀랍게도 괜찮았다. 탭댄스를 하고 온 날은 밤에 잠을 자는 동안 무릎 부위의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결에도 ‘어, 이거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희한하게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아프지 않고 멀쩡했다. 잠자는 밤 시간 동안 그 정도의 피로는 회복된다는 의미로 읽혔다. 만약 이튿날까지 무릎의 뻐근함이 계속됐다면 나는 탭댄스를 포기했을 것이다. 몸이 ‘이건 무리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므로.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탭댄스는 무리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장 먼저 무릎이 고장 났고, 함께 여행을 가서도 내리막길에서 무릎 아프다는 소리를 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닥 딱딱한 탭슈즈를 신고 한 시간을 뛸 수 있다니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댄스스포츠를 해왔던 짧지 않은 시간에, 그리고 선생님과 나 자신에게, 마음 깊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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