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한 것은 지난해 12월 초순이라고 한다. 12월 중순 베이징에는 김 위원장이 조만간 방문할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1월1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는 바로 그런 정황을 깔고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신년사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 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 대목이 신년사에 등장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과정에 중국을 포함시키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1월7일 ‘4차 방중’에 앞서 중국에 선물을 준 셈이다.

중국을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로 포함시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이번 신년사에는 ‘북남 사이의 군사적 적대 관계를 근원적으로 청산하고 조선반도를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지대로 만들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부동한 의지다’라고 추상적으로 언급됐다. 하지만 이 대목의 숨은 뜻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1단계 주한 미군 철수, 2단계 주일 미군 철수를 내포하고 있다. 즉, 주한 미군·주일 미군이 철수해야 북한도 비핵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Xinhua1월8일 김정은 위원장(오른쪽)과 시진핑 주석(왼쪽)이 중국 인민해방군을 사열한 뒤 환영 나온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북한, 일단 주한 미군 철수 요구에 집중할 듯

지난해 12월20일자 〈조선중앙통신〉에 정현이라는 개인 필명으로 게재된 논평도 바로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논평은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북한)의 핵 억제력을 없애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라고 주장한다. 이는 ‘북과 남의 영역 안에서뿐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 위협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시사IN〉 제591호 ‘북한은 다시 한번 판을 키우려 하는가’ 기사 참조). 여기서 말하는 ‘북과 남의 영역 안에서’는 주한 미군을 뜻하고, ‘주변으로부터의 위협 요인’이란 ‘대북 선제공격이 가능한 주일 미군기지’를 의미한다.

북한 측의 이 같은 요구는 어떤 식으로 현실화될까?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들을 접촉해온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2단계로 나뉘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1단계는 미국이 그동안 요구해온 핵 리스트 제출과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주한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핵 리스트를 공개하고 사찰을 받는 것은 북한이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는 것과 같으므로, 주한 미군 철수 담보 없이 어렵다는 얘기다. 주일 미군의 철수는 조선반도 비핵화의 실행 단계에서 요구하게 된다. 즉 북한 핵을 실질적으로 폐기하는 비핵화 단계인데, 이는 한반도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에서 언제든 선제공격이 가능한 주일 미군 철수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다. 지금은 북한이 주한 미군 철수 요구에 집중할 것이다.
이는 지난해 9월 북한이 보여준 주한 미군에 대한 태도와 180° 다르다. 지난해 9월5일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 특사단과의 면담에서 “종전선언은 주한 미군 철수나 한·미 동맹 무력화와 무관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겨우 3개월 만에 왜 생각을 바꾼 것일까? 한 대북 소식통은 “주한 미군 철수를 포함한 북한의 최근 움직임은 중국이 제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AFP PHOTO미·중 무역전쟁은 휴전 국면에 들어갔지만, 미국은 물밑에서 압박 공세를 펴고 있다. 위는 중국과 차관급 무역협상을 하기 위해 베이징에 온 미국 협상팀.
지난해 5월 김정은 위원장의 다롄 방문(2차 방중)을 계기로 북·중 간에 제재 완화와 경제 지원 얘기가 오갔다. 당시 양측 실무자들 간에 매우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중국이 북한의 탄광지대에 석탄 채굴이 가능하도록 화력발전소 건설을 지원하고, 항만 개보수, 개발은행 개설, 농업 지원 및 상업시설의 건설 등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김 위원장의 3차 방중까지도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7~8월쯤부터 중국이 북한에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정전협정 체제 전환이 논의될 때 주한 미군 철수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선대 지도자는 주한 미군 문제에 대해 이중적이었다.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 모두 겉으로는 철수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중국 등 주변국 견제를 위해 주둔을 용인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해 3월 남측 특사단 면담에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용인한다고 밝히는 등 유연한 태도를 견지했다. 이를 보더라도 당시 북한은 중국의 요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자 중국이 행동에 나섰다. 지난해 9월12일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전체회의 좌담에서 “지금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은 북한과 한국, 미국”이라며 “(중국은) 그들이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과정을 진행하는 데 협조하겠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사실상 종전선언 참여를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 중국은 대신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고 한다. 중국 측의 지원 약속이 진행되지 않자 북한은 판을 흔들었다. 9월19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환대했고,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다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수 있다는 비핵화 방안까지 제시했다. 북한은 내심 한국이 나서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완화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것도 무위에 그치자 미국과의 실무 협상에 응하지 않고 버텨왔다.

“중국은 대북한 원유 공급량 70% 줄여라”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 처지에서 지금 또다시 중국의 제재가 강화되면 버티기가 힘들다. 제재를 막고 중국이 약속한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중국의 요구 사항을 들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직접 나서서 주한 미군이나 주일 미군 문제를 쟁점화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국내의 한 안보 전문가는 “북·중이 한목소리로 쟁점화하면 주한 미군의 존재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주한 미군 철수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주한 미군 역할을 한반도에 국한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에서 호응을 하면 미국은 주한 미군의 주요 기능을 일본으로 가져가 일본이 동북아를 책임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안보 전문가는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아베 총리의 일본 군사 대국화 흐름에 힘이 실린다. 동북아에서 한·일 관계의 균형도 깨진다. “북한 비핵화 이후 개발 바람이 불 텐데 한국이 지금 잘못 대응하면 그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주한 미군 문제를 한·미 관계 틀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관점에서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이후 북·중 관계 흐름과 이번 신년사를 보면 4차 방중 보따리에는 주한 미군 철수와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중국 처지에서는 지난해 11월 타이완 지방선거에서 친중국 세력인 국민당이 승리한 여세를 몰아, 한반도에서도 미국을 압박할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과연 그럴까? 상황은 중국에 그리 만만치 않다. 미국의 통상 공격 앞에 중국 경제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듯하다. 1월6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샹쑹쭤 중국 인민대학 교수의 제보를 보도했다. 중국 정부 산하 비밀연구그룹이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1.67%로 추산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그동안 중국 정부가 밝힌 GDP 증가율 6.6%의 4분의 1 수준이다. 서방 연구기관들은 중국 정부의 통계를 신뢰하지 않아 독자적인 조사로 3~4%대 성장률을 추산해왔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공식적으로 일단 휴전 국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국은 물밑에서 압박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생각이다. 북한의 생명줄을 중국이 쥐고 있으니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하도록 압박을 가해 끌고 나오라는 것이다. 이런 기조 위에서 지난해 12월 미국은 중국에 구체적인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중국 측에 파는 수산물 거래를 중단하고 임가공업, 단체관광도 허용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현금이 유입되는 경로를 모두 차단하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에 해당하는데, 그동안 북·중 국경지역에서 암암리에 거래가 이루어져왔다. 미국은 앞으로 이를 어기는 기업이나 은행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겠다고 중국에 통고했다고 한다.

미국은 중국에 대북 원유 공급과 관련한 요구도 했다. 2017년 12월22일 채택된 유엔안보리 제재 2397호는 북한으로 유입되는 원유 공급을 연 400만 배럴(56만t)로 제한하고 휘발유 등 정제유 공급 상한을 기존 200만 배럴에서 4분의 1로 축소한 50만 배럴(7만t)로 정했다. 지난해 5월 이후 북한이 공해상에서 불법 환적을 통해 유엔이 정한 50만 배럴의 정제유 수입 이상을 들여오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은 북한에 공급되는 원유의 양을 2016년 통계 기준으로 30%로 줄이라고 중국에 요구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2016년 한 해에 100만t이 북한에 공급되었다면 30만t으로 줄이라는 것이다. 북한에게 식량과 원유는 전략물자다. 기름이 없으면 군사훈련도, 식량 수송도 불가능하다. 당의 통제나 김정은 위원장의 유일지배체제도 유지될 수 없다.

물론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따를 이유는 없다. 중국 경제의 타격을 감수한다면 말이다. 이와 관련해 미·중 관계 소식통들은, 지난해 12월1일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 부회장이 미국 수사 당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전격 체포된 사건을 주목한다. 그의 체포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무역전쟁을 90일간 휴전하기로 합의한 직후 터졌다. 미·중 관계 소식통은 “멍완저우 구속은 미국의 대북 담당 라인이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통상 라인에서 합의를 해도 대북 라인에서 얼마든지 압박수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 체포에 숨은 뜻

멍완저우 부회장은 지난해 12월11일 1000만 캐나다 달러를 내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미국이 60일 내 송환을 요청하면 법적 공방을 벌여야 한다. 그가 미국으로 송환되고, 화웨이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멍 부회장 자신은 물론 회사에 미칠 부정적 충격이 만만치 않다(〈시사IN〉 제588호 ‘울고 싶은 미국 뺨 때린 화웨이’ 기사 참조). 중국의 최대 기업이자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의 대표 기업인 화웨이를 살리기 위해 중국 지도부는 전전긍긍한다. 이런 구도 위에서 대북 원유 공급량을 30%로 삭감하라는 미국의 메시지가 중국에 전달된 것이다.


그래서 4차 북·중 정상회담은 형식과 내용이 달랐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을 환대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 회담장에서는 김 위원장에게 상당히 껄끄러운 내용을 주문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미국과의 실무협상에 응하라는 등 미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과연 어느 정도의 강도로 북한에 압력을 가했느냐에 따라 미국의 다음 행보가 결정되리라 보인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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