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지음, 폴 불 각색 | 마이크 코노패키 그림 | 송민경 옮김, 도서출판 다른 펴냄

2009년 대한민국 국방부 지정 불온도서 ‘최우선 후보작’이다. 국방부 관계자가 불온도서 지정 이유를 이렇게 댈 수 있겠다. 장병에게 동맹국 미국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한·미 연합 전력을 손상시킬 수 있는 불온한 책. 더구나 이 책에는 제국주의 미국의 군대가 저지른 만행이 자주 나온다. 필리핀의 모로족(말레이족)이 1903년부터 미군에 강하게 저항했다. 1906년 레오나르드 우드 장군은 창칼과 벽돌로 무장(?)한 모로족을 공격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900여 명 대부분을 죽였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펜싱 파트너이기도 한 우드 장군을 이렇게 극찬했다. “장군과 장병의 빛나는 승리를 축하합니다. 당신들은 성조기의 명예를 훌륭하게 드높였습니다.” 이후 미주리 주의 한 요새에 우드 장군의 이름이 붙여졌다. 2004년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한 혐의로 기소된 미군 병사들은 바로 레오나르드 우드 요새에서 감옥 간수 교육을 받았다는 게 밝혀졌다.

미국 본토에서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1913년 록펠러 가문이 소유한 콜로라도의 한 회사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회사 소유 주거지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러들로에 텐트를 세웠지만, 방위군 병사들이 텐트마다 기름을 붓고 기관총을 발사했다. 1914년 4월20일이었다. 이후 노동자들은 방위군을 철수시킬 것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감자를 팔아 구한 총으로 무장해 방위군을 물리쳤다.

우리의 국가보안법을 연상케 하는 방첩법은 또 어떤가. 스파이법을 뜻하는 방첩법은 1917년 6월, 당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통과시킨 징병법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미국 사법부는 미국수호연맹을 비롯한 사적 단체에게 ‘불충한’ 미국인을 몰래 감시하는 권한을 주었고, 징병 방해로 해석될 만한 모든 반전적인 대화를 범죄로 규정했다. 개인의 편지를 뜯어보고 불온한 출판물을 찾아내기 위해 주거침입까지 했다. 방첩법은 현재 진행형이다. 9·11 이후 제정된 애국자법은 FBI에게 시민을 감시하고 도서관과 의료기록을 점검하며 비밀리에 가정과 직장을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 내용이 주를 이루고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의 일부 내용을 추가해 만화로 재구성한 이 책은 물론 미국사를 ‘균형 있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실을 왜곡·은폐하는 것이 ‘균형’이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고 볼 때, 이 책의 편파성(?)은 아름답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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