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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첫 살사의 추억이여

살사는 50대 이상 여성이 진입하기 쉽지 않다. 초겨울에 시작했지만, 나이의 한계를 절감하며 끝을 보았다. 내 몸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이영미 (대중문화 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1월 25일 금요일 제5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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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스포츠를 배운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단행본 집필도 끝이 보이자, 숨어 있던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근골격계 질환이 크게 완화되었다는 점에 고무되었다.
종종 재발하던 무릎관절 통증은 1년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무릎 때문에 한의원 갈 일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 심각하던 어깨통증 역시 많이 완화되었다. 룸바를 하며 어깨와 몸통, 골반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동작을 한 게 주효했다. 그런 동작은 차차차에까지 이어졌으니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여전히 팔을 올릴 때 한 부위가 뻐근하기는 하지만, 옷을 입고 벗을 때나 자동차 기어를 조작하면서 불편한 수준에서는 해방되었다.

차차차를 배우며 음악과 동영상 등을 검색하다 보니, 엇비슷한 리듬의 맘보 음악과 거기에 맞춰 추는 살사댄스가 눈에 띄었다. 아, 살사라는 춤이 있었지? 그제야 1987년 국내에 개봉된 영화 <더티 댄싱>이 불러온 살사 붐이 생각났다. 차차차와 맘보는 아주 비슷한 음악인데 맘보가 조금 더 빠르다. 어떤 사람은 맘보를 느리게 연주하면서 뒷부분에 ‘차차차’로 들리는 악기 소리를 배치한 것이 차차차의 시작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니 차차차 춤을 배운 김에 살사도 쉽게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우일 그림
가까운 곳에서 배울 만한 데가 있는지 검색했다. ‘살사’ ‘은평’ 등의 검색어를 넣으니 홍익대 부근의 한 곳이 찾아졌다. 살사 동호회와 학원이 결합된 형태이다. 검색하면서 알게 된 것은 전국에 살사 동호회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전성기에 비하면 열기가 줄어든 것이라는데도 그랬다. 댄스스포츠나 사교댄스에 비해서는 애호가의 연령대가 젊어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이 중심이다.

내가 찾아간 곳은 대표자와 강사가 모두 동호회 멤버로 채워져 있었고, 그중 몇몇은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이었다. 동호회 겸 학원은, 동호회의 중심 멤버들이 초심자에게 관심을 가져주며 이것저것 가르쳐준다는 장점이 있다. 모든 댄스 강습이 그렇듯 당연히 성비가 여초(女超)였는데, 선배들이 보조 강사가 되어 부족한 남자 파트너의 역할을 해주며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살사 동호회에서 춤을 배우며 처음으로 홀이란 곳에 가보았다. 홍대 앞에 살사만 출 수 있는 홀이 있는데 매일 밤 9시부터 열었다. 그 동호회의 낮은 레벨 반은 아예 그 홀에서 강습을 진행하고 강습이 끝난 뒤 홀에서 실전 연습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밤 9시에 홀이 오픈하면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고수들은 화려한 춤 솜씨를 뽐냈다. 나 같은 초심자들은 “아, 언제 나는 저런 걸 해보나!” 하는 마음으로 구경하다가, 그날 배운 동작 몇 가지를 반복해 연습했다.

한 달쯤 지나니, 이 동호회에서 왜 초심자를 무조건 홀에 집어넣는지는 파악되었다. 댄스스포츠와 달리, 길게 연결된 루틴을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틴은 기본 춤을 의미한다. 댄스스포츠에서는 춤의 종류별로 10~30분가량 계속 루틴을 출 수 있도록 동작들을 연결해놓고 그것을 가르친다. 예컨대 자이브는 60~80개 정도의 동작을 연결해놓았다.

“살사댄스는 홀에서 추어야 늘어요”

물론 실제 홀에서는 루틴의 순서대로 추지 않는다. 남자가 사인을 주면 여자는 그에 맞추어 움직이게 되어 있다. 동작을 선택하고 연결하는 것은 남자 마음대로다(물론 능숙하지 않은 남자는 학원에서 배운 루틴의 순서대로 춘다. 춤을 추면서 다음 동작을 선택하고 연결해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여자도 숙지된 순서로 진행되니 긴장감은 덜하지만 사인 받기는 편하다). 그런데 살사는 루틴을 연결해서 가르치지 않았고, 동작 하나, 패턴 하나를 각각 분리해서 가르쳤다. 즉 처음부터 프리댄스(free dance)를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프리댄스 방식에 익숙해지려면 자꾸 홀에 나가서 추어봐야 한다. 정해진 안무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임의로 선택된 동작을 사인으로 주고받으며 춤추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6개월 이상 배운 것 같다. 그런데 한계에 봉착했다.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지점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연습을 홀에 나가서만 해야 한다는 점이 나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틈나는 대로 운동 삼아 동작 연습을 해야 하는데, 프리댄스 방식의 춤에는 이런 ‘나 홀로 연습’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쁜 습관을 만든다. 혼자 연습하면 정해진 안무대로 춤추는 데에 익숙해져서, 남자의 사인을 받는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혼자 연습하지 마세요. 홀에서 추어야 춤이 늘어요’라고 누차 경고했다. 그런데 사교도 술자리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집순이’가 어찌 밤에 자꾸 홀에 드나들겠는가. 저질 체력이 이렇게 ‘밤드리 노니면’ 이튿날 집중력이 뚝 떨어진다.

문제는 또 있었다. 살사의 여자 춤은 회전이 매우 많다는 점이었다. 레벨 1에서 걸음마처럼 처음 배우는 동작도 360°를 도는 라이트턴, 레프트턴이고, 바로 다음에 배우는 아웃사이드턴과 인사이드턴으로 넘어가면 한 바퀴 반을 한꺼번에 돌게 된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회전량은 많아져서 6개월쯤 지나니 두 바퀴 넘는 동작이 계속 이어졌다. 으아, 어지럽다! 그런데 이 정도에서 어지러우면 안 된다. 고수들의 춤을 보면 남자가 여자를 거의 팽이 돌리듯 계속 돌린다.

회전이란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동작이다. 그래서 살사는 복작복작 좁은 홀에서도 충분히 춤을 즐길 수 있다. 나는 도저히 어지러워서 더 이상의 레벨로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나이의 한계였다. 30대 회원들은 거뜬히 도는데, 나는 두어 번 연습하면 휘청거려서 다음 동작을 연결할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 노안(老眼)이 오는 것처럼 귀도 늙는다. 귀는 청력만 관장하는 게 아니라 평형감도 관장하는 기관이다. 즉 귀가 늙으면 평형감각도 떨어지는 것이다. 쉰 살 즈음에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으로 걸음을 못 걷고 구토를 해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놀라서 뇌 사진을 찍고 난리를 치는데, 결국 귀에 문제가 있다고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증상을 심하게 겪지는 않았다. 그런데 살사를 춰보니 나도 평형감각이 크게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 휘청거리면 함께 배우는 젊은 회원들에게 민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로 이 때문에 살사에는 50대 이상 여자들이 쉽게 진입하지 못한단다. 1990년대에 살사를 추어온 20·30대들은 40·50대가 되어도 그럭저럭 춘다. 하지만 새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서울 강남에는 아예 ‘중년반’을 따로 운영하는 학원이 있다고 한다. 그냥 20·30대가 불편할까 봐 배려하는 게 아니라, 실제 진도 나가는 속도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초겨울에 시작한 살사는 이렇게 나이의 한계를 확인시키고 이듬해 봄에 끝을 보았다. 그래서 소득이 없었냐고? 왜 없었겠는가. 내 몸을 확인한 셈이니 그게 가장 큰 소득이다. 살사 덕분에 맘보 음악에 친근해진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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