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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독감’은 왜 치료하지 않나요

마음의 병이 있으면 진료를 받고 전문가 의견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자녀의 회복과 성장에 필수적인 조치를 거부하고 교사에게 억하심정을 품는 부모도 적지 않다.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1월 18일 금요일 제5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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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철에 22명이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교실은 기침 소리로 가득하다. 감기에 걸린 아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는다. 아침에 병원 들르느라 조금 늦을 수 있다는 문자와 전화를 받는 일도 잦아진다. 만일 몸 상태가 평소보다 유난히 나빠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보건 교사에게 체온 측정을 부탁하고, 필요하면 부모에게 연락해서 전문의 진찰을 권한다.
몸이 아픈 문제는 학부모와 이야기하기가 쉽다. 초등 교사가 의사는 아니지만 등교부터 하교할 때까지 한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며 수시로 관찰하기에 아이 몸의 이상을 발견하기 쉽다. 그러나 정작 교사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이나 심리, 생활지도 문제는 학부모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 힘들다.

ⓒ박해성

“우리 애를 정신병자로 보느냐”

한 아이는 친구를 사귀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자기 세계에 빠져 있었다. 학업 성적은 중간이었고, 딱히 말썽을 피우지는 않았으나 사회성이 매우 부족했다. 3월부터 10월까지 상담 기록지에 아이의 행동을 기록했다. 부모를 직접 만나 말하고 싶었지만 부모는 1학기, 2학기 상담주간에 오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먼저 전화했다. 부모는 “헉!” 소리를 내며 놀라더니 집에서는 애가 참 괜찮은데 선생님이 잘못 본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드물게 얻은 기회였기에 아이의 장점을 먼저 열거하고, 다시 한 번 상황의 심각성을 조심스럽되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한숨 소리와 더불어 무기력한 목소리로 애가 너무 심하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정의 양육 환경이나 다른 구성원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많았으나, 부모는 더 이상 대화를 원치 않았다.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차라리 이 아이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또 다른 한 아이는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하루에도 여러 번 우울과 분노에 휩싸였다. 가슴속이 평온할 때는 수업이 가능했으나, 조금이라도 심사가 뒤틀리면 괴상한 소리를 내고 책상을 달그락거리며 정신 사납게 굴었다. 아이는 교사의 생활지도 범위를 넘어선 단계였기에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치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아이 아버지께 병원 얘기를 꺼내자 “우리 애를 정신병자로 보느냐”라고 격분했다. 경위를 차근차근 말했다. 하지만 이성적인 대화로 이끌 수 없었다. 결국 이 아이는 그 상태로 다음 학년에 올라갔다.
정서가 불안정한 아이는 매우 높은 확률로 가정에 결함이 있다. 집에서 학업으로 닦달하는 탓에 심리가 불안한 아이도 있지만, 자녀를 방치하고 학대에 가까운 언사와 체벌을 지속적으로 가해서 생기는 문제도 흔하다. 심지어 친권자라는 이유로, 자녀의 회복과 성장에 필수적인 조치를 거부하고 교사에게 억하심정을 품는다.

또 어떤 때는 엄마를 설득하는 데 성공해도 아빠나 이모 같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반대가 심하다.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줄 사안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고 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교사는 진이 빠지고 의욕이 꺾인다. 차라리 덕담 몇 마디 하고 모른 채 넘어가는 게 속 편하다. 그래서 힘든 애는 계속 힘들고, 괴물로 변해버린 애는 더 큰 괴물이 된다.


마음에 병이 있으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전문가 의견에 따라야 한다. 일상에서 겪는 대부분의 감정 문제는 이미 표준적인 처방이 나와 있다. 임상 연구 결과도 풍부하고 치료도 체계적이다. 부모와 협조가 잘되어 가족 상담을 받은 후 약을 복용한 아이가 상당히 개선되는 모습을 여럿 봐왔다. 감기를 제때에 잡지 않으면 폐렴으로 악화된다. 지금 학교에는 마음의 독감으로 치료가 시급한 아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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