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징에는 예술이 빠질 수 없지요. 인간은 언제부터 예술 활동을 했을까요? 학계에서 오래도록 두루 동의한 예술의 기원은 유럽의 후기 구석기 문화입니다.

유럽의 후기 구석기 문화가 왜 특별한지 알려면 그 이전까지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인류가 석기를 만들어 쓴 자료가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은 대략 200만 년 전부터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도구를 만들어 썼을 가능성이 높고, 돌이 아닌 재료를 도구로 썼을 가능성도 높습니다만 자연이 아니라 인류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는 도구는 돌에서 시작합니다. 석기가 처음 나타나고부터 농경 도구 이전까지를 구석기 시대라고 부릅니다. 구석기 시대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전기 구석기에는 어른의 펼친 손보다 큰 크기의 몸돌을 석기로 사용했습니다. 그 뒤 중기 구석기 시대에는 주먹 크기의 몸돌을 예쁘게 다듬은 다음 떼어낸 돌날을 석기로 썼습니다.

 

ⓒEPA스페인 북부 리바데세야에 있는 티토 부스티요 동굴 벽화를 방문객이 지나가고 있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점점 작고 섬세하게 떼어낸 돌날로 만든 여러 도구가 나타나고 도구의 재료도 다양해졌습니다. 돌뿐 아니라 뼈로 만든 도구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후기 구석기 시대를 ‘인간의 혁명’ ‘창의의 혁명’이라 일컫게 된 계기는 도구의 종류와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스타일 요소의 등장입니다. 스타일은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요소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긴 칼의 모양은 기본적으로 똑같지만, 칼자루와 칼끝 등의 생김새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른 생김새는 가문이나 칼 만드는 장인 등 특정 집단을 표시합니다.
다양한 스타일은 정체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남과 구별되는 자신, ‘그들’과 구별되는 ‘우리’를 나타내기 위한 특징입니다. 자신과 우리를 인식하는 것은 추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추상적인 사고는 예술 활동에 꼭 필요한 인지 특징입니다.

 

올도완, 아슐리안, 무스테리안 등 전기 구석기 시대와 중기 구석기 시대의 문화 명칭은 도구의 모양이자 제작 기법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전역에서 나타났습니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오리나시앙, 막달레니앙, 솔루트리안 등 프랑스 한 지역에서만도 여러 문화가 나타납니다. 이들을 구분하는 것은 도구의 종류뿐 아니라 스타일 요소입니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 등장하는 장신구와 동굴벽화는 정체성과 추상적인 사고라는 인간만의 특징이 인류의 진화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나는 순간입니다. 동굴벽화에서 동물들과 사람들이 그려지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추상적으로 그려내는 과정,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Google 갈무리매머드 벽화를 그리는 크로마뇽인의 상상도.

스페인 벽화와 네안데르탈인

 

구석기 연구는 유럽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유럽 중심적인 시각도 강합니다. 유럽에서 중기 구석기는 네안데르탈인과, 후기 구석기는 현생인류와 연결이 됩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학설의 지지자들에게 현생인류의 우월성과 인간다움은 후기 구석기에서 나타나는 예술성을 설명하는 이유였습니다. 현생인류는 인간다운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우월성으로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고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동굴벽화는 벽화 이상의 의미를 암시합니다. 벽화가 그려진 동굴을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장소에 서 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전율을 느낀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이 그토록 유명한 동굴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감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유적 보존의 문제로 유명한 동굴벽화는 출입 제한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실로 특별한 사람들이긴 합니다. 그런데 동굴벽화 앞에 서 있을 때 드는 신비감은 과연 그냥 느낌일 뿐일까요? 동굴벽화가 남겨진 동굴은 특별하게 선택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동굴이나 들어가서 벽화를 그린 것일까요?

프랑스의 한 절벽에는 비슷비슷한 동굴이 43개 있습니다. 이 중 벽화가 그려진 동굴은 8개뿐입니다. 동굴의 음향 성질을 비교 분석한 결과 벽화가 그려져 있는 동굴은 특히 메아리 효과가 뛰어났습니다. 이는 동굴벽화가 음향효과를 이용한 의례의 한 부분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에 힘을 줍니다. 메아리 효과가 좋은 동굴에 들어가 돌로 벽과 바닥을 두들기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 노래 부르며 벽화를 그리는 모습은 매우 익숙한 인간의 모습,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인간다운 모습은 세계 어느 곳보다 먼저 유럽에서 3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정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후기 구석기 문화의 요소들이 유럽이 아닌 곳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 이전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큰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발견은 가끔 이루어졌습니다. 2018년 한 해 동안에도 굵직굵직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2월에 스페인에서 발견된 세 군데 벽화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그중 하나는 7만4000년 전까지도 올려볼 수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7만4000년 전 스페인이라면 어떤 학설에 따라도 현생인류가 아닌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시대와 지역입니다. 그동안 네안데르탈인이 동굴벽화를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는 간혹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은 네안데르탈인의 독자적 발명이 아니라 옆 동네에 들어온 현생인류가 그리던 것을 보고 따라 했다는 견해였습니다. 물론 독자적으로 창안했든, 보고 그렸든, 그렸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인지능력입니다. 현생인류의 문화를 따라 했다는 견해 밑바닥에는 네안데르탈인의 인지능력의 한계 때문에 독자적으로 창안해낼 수 없다는 생각, 네안데르탈인의 ‘부족함’에 대한 가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의 벽화가 7만4000년이라는 이야기는 네안데르탈인이 독자적으로 창안해낸 문화 요소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견입니다.

동굴벽화는 현생인류가 최초로 만들어낸 문화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낸 논문에 이어서 2018년 11월에는 동굴벽화가 네안데르탈인이든 현생인류든 유럽인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발견된 벽화는 5만 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5만 년 전에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살던 인류는 누구였을까요? 데니소바인이었을까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일 가능성을 개진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만약 두뇌 용량 400㏄ 정도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벽화를 그렸다면 추상적인 예술에도 큰 머리가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라는 충격적인 결론이 가능합니다. 이 문제는 후속 연구를 좀 더 기다려야겠지요.

인간다움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동굴벽화가 유럽의 현생인류가 독창적으로 처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현생인류가 아닌 인류도, 유럽인이 아닌 인류도 만들어낸 문화 요소라는 발견은 인간다움이 어느 특정 지역, 특정 시대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현생인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기원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벽화 그린 사람은 남성이었다고?

오늘은 또 다른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누가 벽화를 그렸는가에 대한 질문에 등장하는 ‘누구’는 고인류 화석종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인지, 유럽의 현생인류인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인지, 데니소바인인지, 혹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고인류 집단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어떤 고인류 화석종을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인물은 남성입니다.

이 글에 그림을 곁들이기 위해 이미지 검색을 해본 결과 알 수 있었습니다(위 그림). 우리가 상상하는 동굴벽화는 신체 건장한 성인 남성이 동굴 벽 앞에 서서 그리는 그림입니다. 그 옆에는 노인 남성이 쭈그리고 앉아서 물감을 갭니다. 다른 한쪽에는 소년이 장난처럼, 연습처럼 그림을 그립니다.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여성이 벽화를 그리는 장면에 등장하는 경우는 남성 화가 옆에서 잔소리하는 모습을 그린 풍자만화였습니다. 여성이 벽화를 그리는 이미지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안에는 동굴벽화를 그리는 주체가 어떤 사람인지 자리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벽화를 그리는 사람이 주로 남성이라는 증거자료는 없습니다. 벽화를 누가 그렸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빙하기에 눈 덮인 계곡을 누비면서 먹을 것을 찾아 사냥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흔하게 그려집니다. 동굴 안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먹일 사냥감을 가지고 돌아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면, 사냥 나간 사람들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동굴 안에서 벽화를 그렸다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유럽의 동굴벽화에는 스텐실로 손 모양을 그린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벽화를 그린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행위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화가가 그림 한구석에 자신의 서명을 하는 행위와 마찬가지입니다. 인류학자 딘 스노는 둘째손가락과 넷째손가락의 길이 차이가 성별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유럽의 동굴벽화에 나타난 손 스텐실 그림에서 둘째손가락과 넷째손가락의 길이를 쟀습니다. 그 결과 손 그림의 반 이상은 ‘여성적’ 비율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손이 여성적이라고 하여 반드시 여성은 아닙니다. 아마 성별을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게다가 벽화를 그린 사람의 성별이 중요한 질문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벽화를 그리는 사람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한, 벽화를 그리는 사람이 모두 남성으로 그려지는 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정이 과연 당연한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기자명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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