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라는 말보다 ‘치유자’로 불리길 원하는 정혜신은 ‘나’의 정의부터 내리고 책을 시작한다. ‘나’ 혹은 ‘너’의 실체는 그가 느끼는 ‘감정’ 즉 마음 상태라는 거다. 양심이나 거룩한 이념 혹은 세계관이 아니고 말이다. 심지어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래서 나 스스로도 그 가치를 폄하했던 ‘나의 감정’이 곧 ‘진짜 나’라는 거다.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고 나니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말들이 머리를 쪼개듯 이해됐다. 우리가 살면서 상처와 오해를 주고받거나 그토록 상대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내 가치관이나 이념 따위가 아닌 내 마음, 내 감정이었던 거다. 내가 지금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속상한지 행복한지를 정확히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안 되어서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고 스스로를 괴롭혔던 거다.

‘죽고 싶다’는 말을 툭 뱉을 때 그게 당연한 거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럴 때 상대방에게 “그런 말 하면 못 써. 너만 힘든 게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정답’을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먼저 온전히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가 어떤 지옥을 겪었는지 궁금해하고, 그 마음을 들어줄 준비가 됐음을 먼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이 약물치료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나를 야단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여주며 진심으로 “아,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겠네” 하고 내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 된다고, 정혜신은 꾹꾹 힘주어 말한다(그렇다고 이 말에 자살자 유가족들이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 들어준다고 모든 우울증이 다 치료되는 것은 물론 아니니까).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해냄 펴냄


친구를 때려서 선생님께 혼나고 들어온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겠다는 신념으로 “앞으로 그러지 마라. 친구를 때리는 건 나쁘다”라고 훈계한 엄마에게 아이는 울며 말한다. “엄마는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를 물어봤어야지.” 훈계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순서가 틀렸다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공감을 한다는 건 무조건 맞장구를 쳐주는 것인지 등등 상대의 존재 자체에 집중하는 매뉴얼을 마치 전문가의 비법을 공개하듯 알려준다. 곧 세상을 등질 것 같던 사람도 상담실만 들어갔다 나오면 얼굴에서 빛이 나는 기적(?)을 수없이 보여준 정혜신의 말이기에 신뢰가 간다. 몸에 사고가 나는 것도 골든타임이 중요하듯 마음에 사고가 나는 것도 빨리 알아채주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은 그녀의 표현대로 ‘심리적 CPR’을 숙지시키는 책이다. 가정상비약처럼 모든 이에게, 모든 관계에 필요한 책이다. 

기자명 오지혜 (배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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