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수리에 함축된 고대인들의 우주적 질서와 법칙, 그리고 철학의 이치에 대해서 매우 쉽게 풀어놓았다. 고대 동양 역서인 〈주역〉도 우주의 이상수(理象數)를 논한 학문이라고 했다. 지구상의 모든 개체는 모두가 그에 마땅한 이치가 있고, 그 이치는 반드시 상(象)으로 나타나며, 그 상에다가 인간들이 수적 계산을 해놓았다는 것이 이상수 철학이다. 이것은 마이클 슈나이더의 책에서 말하는 고대 서양의 수리철학과 그대로 일치한다.
‘인간들이 약속으로 정해놓은 수적 나열 속에는 우주에 펼쳐지는 시공간의 무수한 작용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것을 다양한 예를 통해 쉽게 풀어서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동서양 고대사회 문화 문명의 코드는 분명 하나의 결이었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하나가 품고 있는 다른 극의 음양(-, +)이, 둘에서 서로 분열과 팽창하는 생장 과정을 거쳐, 셋에서 통일하여 새로운 경계로 진입하고 발전하는 만물의 생장성(生長成) 이치를 수리철학으로 풀어놓았다. 이것은 고대사회에서 동서양의 철학적 사유가 서로 같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서양의 수리철학은 우리 선조들이 바라보는 수리철학과 너무나 똑같다. 책 속의 문장을 통해 우리 음악의 수리를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항상 3에 노출되어 있다. 모든 전체 사건은 서로 대립적인 양자와 새로운 전체를 가져오는 외부의 제3의 요소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삼위일체를 ‘작용, 반작용, 합력’이라 부르고, 철학자들은 ‘정(正), 반(反), 합(合)’이라 부른다. 세 요소는 함께 더 큰 새로운 정을 이루고, 그것은 다시 그 반대를 낳아, 더 큰 합을 준비한다(52쪽).”
이 내용은 〈천부경〉의 내용과 그대로 일치한다. 판소리에서 중모리 장단은 1년 열두 달의 시공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장단이다. 나고 자라고 맺고 들어가는 1년의 생장수장(生長收藏) 과정을 중모리 12박이 그대로 본떠서 율동한다. 중모리 장단에서 1, 2, 3박은 4, 5, 6박을 낳아 더 큰 7, 8, 9의 합을 낳는다. 궁음과 같은 1(正)이 품고 있는 정이 그 반대되는 2를 낳아 길러서 3에서 더 큰 새로운 합(合)을 이루면서 석삼극(析三極) 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정반합의 이치요, 작용·반작용·합력의 삼위일체론이다. 1, 2, 3박의 생박이 체(體)가 되고 4, 5, 6박의 장박이 용(用)이 되어 7, 8, 9박의 성박에서 체와 용이 완결된다. 중모리 12박은 9박에서 대각(大角)을 내고 10, 11, 12박은 그냥 풀어버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9박에서 중모리 한 장단에서 한 배의 눈을 맺는다. 그래서 밀고 달고 맺고 푼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천문과 지문과 인문의 거대한 우주의 시공 속을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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