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살 수 있다고 치자. 그때 그 비극을 피해 갈 수 있을까? 글쎄, 두 번 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닐까. 인생의 길은 웨딩 로드가 아니다. 나만을 위해 깔려져 있지 않은 그 길 위에는 통제할 수 없는 방해물이 곳곳에 숨어 있다가 불시에 튀어나온다. 벌어질 일은 기어이 벌어지고 만다. 한 번 더 산다 해도 반복된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눈앞에서 비극의 파고가 몰려올 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택지가 청기 아니면 백기, 예스 아니면 노밖에 없을 가능성. 이를테면 막다른 길에서 백기 들기. 생존을 위한 선택은 선택이 아니다. 선택지가 적은 사회만이 어떤 걸 선택할지 묻는다. 그 사회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택지가 있는 질문이 가능할 리 없다. 〈비바, 제인〉은 ‘선택지’의 기만을 재치 있게 비튼다. 그야말로 탁월하다. 올해의 소설로 〈비바, 제인〉을 꼽는 이유다. 

정치 지망생인 20대 여성 아비바는 하원의원 에런 레빈의 인턴으로 일하던 중 그와 불륜 관계를 맺는다. 의도치 않게 그 사실이 공개되며 그녀의 인생은 180° 바뀐다. 세상의 시선은 아비바를 낙인찍기에 여념 없고 비난과 조롱, 멸시와 편견은 유독 그녀에게만 집중된다. 아비바의 인생은 괜찮아질 수 있을까? 소설은 서로 다른 화자에 의한 다층적인 목소리로 진행되는데, 그중 하나인 아비바의 일기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들을 경험할 때 아비바의 마음은 어땠는지를 기록한다. 이 일기 말미에는 체크 박스와 함께 선택지 두어 개씩이 붙어 있다. 결정을 앞두고 우리가 흔히 그러듯이 아비바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생각해봤던 것이다.

〈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엄일녀 옮김
루페 펴냄


선택지는 그 모든 일이 아비바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녀를 비난·조롱·멸시하고 낙인찍는 사람들에게 ‘선택’은 아비바를 비난해도 되는 근거가 된다. 그런데 선택지는 반대의 것도 보여준다.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고작해야 이것 아니면 저것, 말하자면 죽기 아니면 죽은 것처럼 살기가 고작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순간 질문의 화살이 내 쪽을 향했다. 나라면 얼마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단출한 선택지는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사회의 한계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사람을 두고 왜 다른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는지, 왜 더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는지 따위 폭력적인 의심을 찰나만큼도 품지 말았어야 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선 같은 건 없다. 현실에는 각자의 최선이 있을 뿐이다. 만들어진 최선이야말로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기준이다. 

기자명 박혜진 (문학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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