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가련한 ‘희생자’로만 주로 묘사되던 소녀들이 ‘살아 있는 존재’로서 전면에 부각되는 미스터리의 수가 크게 늘었다. 오래전 레이먼드 챈들러가 에세이 〈심플 아트 오브 머더〉에서 “비열한 거리를 홀로 걸어가는 남자”를 하드보일드의 영웅으로 묘사했지만, 지금의 ‘비열한 거리’를 걸어가는 존재는 다름 아닌 10대 소녀들이다. 어른이 된 당신이 이미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예민한 약자로 살아가던 그 시절은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가득했다. 메건 애벗의 범죄소설 〈이제 나를 알게 될 거야〉 역시 소녀들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지만, 10대 주인공의 성장을 결론으로 정해놓은 ‘영 어덜트’ 분류에 속하지 않는 작품이다.

주인공 데번 녹스는 체조 선수다. “경이, 신동, 스타.” 세 살 나이에 트램펄린으로부터 ‘도화선’을 발견하고 자신의 운명을 발굴한 아이. 데번은 위대한 선수가 될 것이었다. 단, 열여섯 살이 지나고도 “키가 칠 센티미터 이상 자라거나 엉덩이가 퍼지지 않는다면”. 자연스러운 2차 성징은 체조 선수들에게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그들은 “가슴과 골반이 너무 커진 열아홉 살의 늙은이”가 되기 전에 업적을 이뤄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고가 발생한다. 체조 선수 커뮤니티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던 매력적인 청년 라이언이 뺑소니 자동차 사고로 죽는다. 마을이 술렁거리고, 재빠르게 은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데번의 엄마 케이티는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던 딸에게서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이제 나를 알게 될 거야〉
메건 애벗 지음
고정아 옮김
엘릭시르 펴냄


데번이라는 수수께끼, 데번을 둘러싼 수수께끼. 표면적으로는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죽었고, 사고인지 살인인지 확신할 수 없는 ‘증거 불충분’의 상황에서 온갖 잔인한 소문이 떠돌고, 미처 말해지지 못했던 진실의 단면들이 슬쩍 꼬리를 드러냈다가 곧 사라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마어마한 욕망이 휘몰아친다. 연인을 독점하겠다는 욕망, “이기려는 욕망, 최고가 되려는 욕망” “지난날의 부모보다 더 노력하고 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는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는 욕망, 노력한다 한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천재적인 타인을 닮고 싶은 욕망. 소녀 시절의 욕망은 거칠 것이 없고, 한 번의 패배를 죽어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어마어마한 정념은 예쁜 노스탤지어의 필터를 통해서 회고될 수 없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이 어떻게 비범한 아이와 그 아이 주변의 어른들까지 감염시키며 인생에서 뜻밖의 변곡점을 충격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가. 10대 소녀를 전면에 내세운 〈이제 나를 알게 될 거야〉는 범죄소설의 캐릭터와 지평을 모두 확장하며,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 이후 여성이 주도해 이끌어가는 범죄소설의 멋진 성취 지점을 만끽하게 한다. 

기자명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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