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세계와는 너무 달라 많은 한국인이 읽을 것 같지는 않은 책. 미미하게 팔려나가다 결국 망각의 세계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책. 앙투안 볼로딘의 〈미미한 천사들〉에 대하여 쓴다.

앙투안 볼로딘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미한 천사들〉은 세상의 근본적 추잡함에 대한 연설이다. 세상이 추잡할 수는 있는데, 하필 이곳의 세상은 실제로 추잡했다는 증언이다. 세상은 개들과 함께 살면서 개를 잡아먹는 지하실이며, 잡아먹기 위해 죽은 자들을 소생시키는 주술사의 고장이며, 통성명도 하지 않고 짝짓기를 하는 거리이며, 연봉 2달러를 주며 청소와 빨래를 시키는 졸부들의 저택이며, 임무를 수행하는 대신 예언이나 일삼고 있는 권력자들의 난파선이다. 그러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쾌적하게 무(無)를 연장하고 있던 잠재 상태를 떠나 죽음이 올 때까지 평생토록 끔찍하고 따분하게 계속되는 격동의 상태”에 빠지는 일일 뿐. 그렇게 비존재를 박탈당하고 본의 아니게 이 세상에 태어나고 만 이들은, 자신이 마주한 세상을 개조하는 기쁨마저 없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전락(轉落)이다. 〈미미한 천사들〉은 그 전락에 대해서 기록한다. 어떤 천사들은 너무도 미미한 나머지 전락을 드러내는 것 말고는 존중받지 못한다.

〈미미한 천사들〉
앙투안 볼로딘 지음
이충민 옮김
워크룸프레스 펴냄


볼로딘은 그리하여 쓴다. 호피 무늬 팬티스타킹에 대해서 쓴다. 처음 봤을 때는 피부병 같고 다시 봐야 장식임을 알 수 있다고. 그렇게 이 세상의 조악한 호피 무늬들은 전락한다. 간수들에 대해서 쓴다. 타자 친 자술서와 짧은 텍스트들밖에 읽어보지 않은 새끼들이라고. 그렇게 자신의 조악한 문해력에 맞춰 세상에 진부한 규범을 강요하던 사람들은 전락한다. 까마귀에 대해서 쓴다. “7일간 높은 나뭇가지를 떠나지 않았으며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는 날개도 펼치지 않고 땅으로 돌진해 박살난 까마귀 ‘고르가’가 잠들다”라고. 그렇게 안전을 위해 낮게 날고 있는 모든 비행체들은 까마귀보다 더 검게 전락한다. 친구에 대해서 쓴다. “농담을 자주 했어. 끔찍한 일을 같이 겪는 동무로는 훌륭했지.”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지루한 친구들은 진부한 진담처럼 전락한다.

볼로딘이 하는 이야기들은 다 이상하다. 그러나 “이상함은 아름다움이 가망이 없을 때 취하는 형태”이다. 따라서 또 한 해가 밝으면, 익숙한 언어의 “밀실에 틀어박힌 겁 많은 쥐새끼”이기를 멈추고, 시간의 철로 위에 누워 볼로딘이 몰고 오는 〈미미한 천사들〉이라는 기관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것이다. 미미하기는 해도 아직 진부함의 아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을 힘 정도는 가진 천사들이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이곳이라니? 손가락은 당신의 전두엽을 가리킨다. 


기자명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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