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 책이 출간되어 재미있게 읽고 있던 시기, 공교롭게도 검찰 고위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현직 검사가 이를 세상에 알렸고, 뒤이어 ‘미투 운동’이 전개됐다. 직접적 연관이 없었지만 어쩐지 책 소개를 하기도 조심스러웠다. 검찰 조직의 숱한 문제를 다룬 뉴스가 터지는 게 하루이틀 된 일도 아니고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정권 교체기마다 줄줄이 범죄 혐의자로 수사를 받고, 정치에 눈멀고 권력을 탐하는 검사의 모습이 드라마 단골손님인 현실에서, ‘검사’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이미 국민의 마음에, 나의 마음속에 또렷해진 지 오래니까.

반면 어느 한쪽에서는 매일같이 크고 작은 범죄자를 쫓는, 피해자의 작은 권익이라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검사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묵묵히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온 그들은 이름이 더럽혀질 때마다 얼마나 허탈할까 종종 생각도 했다. 그래도 선뜻 편들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쩌겠는가. 이 책을 읽고 결국 웃어버린 이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욕먹는 게 당연하니 변명도 하지 않고, 세간의 비난에도 일리가 있다며 자학하는 저자의 말투에는, 누구나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하는 의뭉스러운 힘이 있다.

저자는 ‘검사 동일체 원칙’에 따라 위에서 사고를 치면 아래서 같이 욕먹어야 하는 처지라는, 자칭 ‘생활형 검사’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검찰이 ‘뼈를 깎는 각오로 일신하겠다’는 발표를 하니까 이제는 뼈가 없는 연체동물이 된 것 같다는 비아냥 개그가 그의 특기. 취재기자들에게 레이저 눈빛을 날리는 누구와는 딴판으로, 피의자들에게 호구 취급 받아가며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는 ‘구걸 수사’의 달인. 조직에서조차 사내 정치는커녕 ‘당청꼴찌’ ‘또라이’ 등으로 불려왔다는 사실을 은근 자랑하는데, 일부러 자신을 낮춰 웃기려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저자가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검찰 내 성추행과 뒤이은 인사 불이익 등 사건 은폐 시도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인사 불만 때문에 벌인 일이라는 (검찰 측의) 말도 있는데, 본질을 흐리는 발언”이라고 명료한 답을 하기에, 그제야 맘 편히 책을 추천하고 다닌 것은 나의 비밀이다.

〈검사내전〉
김웅 지음
부키 펴냄


책 앞머리에는, 한때 ‘함께 욕먹는’ 검사의 처지에 억울함을 느끼던 시절 한 선배 검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썼다. 검사 한 명 한 명은 국가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일 뿐이며, 나사못은 배로 하여금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맡은 철판을 꽉 물고 있는 게 임무다. 선배의 말에 비로소 정신이 들면서 자신도 나사못 노릇이나마 제대로 해보겠다고 다짐했다는 한 검사의 이야기. 

기자명 김소영 (방송인·서점 ‘책발전소’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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