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입안자들은 지나치게 국내총생산(GDP)에 의존한 탓에 경기침체가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내는지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지난달 말 인천 송도에서 열린 ‘제6차 OECD 세계포럼’ 기자회견에서 했다는 말이다(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72074.html).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GDP로 측정되는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공약 하나로 대통령이 되기도 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선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최근 문재인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GDP 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개혁 드라이브가 한풀 꺾이지 않았던가? ‘소득주도 성장론’이 나름대로 인기를 얻은 것도 결국 ‘GDP 성장’에의 약속 때문 아니었던가? GDP란 그야말로 온 국민이 숭앙해야 하는 ‘최고 존엄 숫자’ 아닌가?

그간 우리가 GDP라는 지표에 많은 의심을 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왜 경제는 성장하는데 고용은 늘지 않고 대신 청소년의 자살은 느는가? 왜 ‘선성장’이고 ‘후분배’인가? 혹시 우리 경제의 성장은 해마다 과로사하는 사람 숫자에 비례하는 건 아닐까? 그간 이런 정당한 의문들은 높은 학력과 지식으로 무장한 경제학자들의 권위에 눌려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쯤 되면 GDP의 정체가 진지하게 궁금해질 법도 하다. 그것은 어떻게 정책 입안자들과 경제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다이앤 코일의 〈GDP 사용설명서〉는 이런 의문을 풀어주기에 제격이다. 대공황의 혼란을 수습하고 2차 대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제의 총체적 역량을 파악할 목적으로 GDP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읽으며 우리는 저 ‘절대숫자’가 결코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임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 전후 호황기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융성과 더불어 GDP의 위력도 커졌으나 서비스 경제의 비중 증대, 특히 1990년대 이후 IT 분야의 혁신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하면서 결정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니, GDP의 역사는 곧 현대 세계경제와 경제학의 역사라고까지 할 만하다.

[GDP 사용설명서:번영과 몰락의 성적표]
다이앤 코일 지음
김홍식 옮김
부키 펴냄


스티글리츠는 GDP 대신 국민의 행복을 재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이번 OECD 포럼의 전편(前篇) 격인 2009년 포럼의 보고서인 〈GDP는 틀렸다〉(박형준 옮김, 동녘, 2011)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행복’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경제의 물질적 역량을 재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다. GDP란 바로 그런 목적에 봉사하는 지표였다. 문제는 오늘날의 경제가 더 이상 GDP로는 올바로 측정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GDP 사용설명서〉가 파고드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기자명 김공회 (경상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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