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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음악을 몸짓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룸바나 차차차는 앞이 아니라 뒤에 강세를 둔다. 맨 마지막 박자에서 튕기고 끌어올리는 힘으로 그다음 제1보가 내디뎌진다. 음악이란 이토록 민감하다.

이영미 (대중문화 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1월 07일 월요일 제5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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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작곡가 유희열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곡을 써놓고 제대로 됐는지 안 됐는지 검토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연주를 해본다고. 그런데 박진영이나 싸이는 춤을 춰본단다. 새로 작곡한 노래에 맞춰 춤을 춰봐서 괜찮으면 통과, 어색하면 고쳐 쓴다는 것이다. 유희열은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서양 근대음악을 기본으로 배웠다. 춤에 따라붙는 리듬이 아닌, 선율과 화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음악이다. 그에 비해 박진영과 싸이는 댄스뮤직이 그들의 본령이다. 그러니 작곡도 춤을 추면서, 춤에 맞춰서 하는 것이다. 음악을 춤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다. 춤은, 음악을 목소리가 아닌 몸짓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음악이 섬세하게만 달라져도 춤은 바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춤을 춰보니, 이것을 몸으로 실감한다.

나는 <한국대중가요사> 같은 책을 쓰는 연구자이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직업적으로 노래를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청소년 시절에 푹 빠졌던 노래는 포크송, 즉 서양의 백인음악 전통에 있는 노래였다. 재즈나 록 같은 흑인음악 계보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낯설다. 즉 박진영이나 싸이보다는 유희열 쪽이다. 그래서 백인의 음악 전통과는 거리가 있는 아프로쿠반 음악, 즉 라틴음악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리듬보다는 선율이나 화성의 맛과 구조의 탄탄함으로 승부하는 백인의 음악이 익숙한 반면, 맘보·삼바·룸바·차차차·보사노바 등 이름도 복잡한 갖가지 라틴음악들은 그냥 빠른 음악과 느린 음악 정도로만 느껴질 뿐 각 양식이 선명하게 구별되어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춤을 배우다 보니, 이제 몇 가지 리듬은 분명히 구별하게 되었다. 와우! 운동으로 시작했는데, 예상치 않은 소득이다.
ⓒ이우일

대개 춤을 처음 배울 때에는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연습한다. 그러다 그 동작이 익숙해지면 음악에 동작을 맞추게 되는데, 보통 다른 사람들은 이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아주 어려워한단다. 음악 들으랴, 오른발 왼발 생각하랴, 바로 ‘멘붕’이 되는 것이다. 짐작하다시피 난 이게 별로 어렵지 않다. 7박이나 11박 같은 아주 복잡한 박자도 아니고, 그냥 2박자나 4박자를 따박따박 꼽으며 나아가는 정도라면 그냥 ‘껌’이다.

오히려 나는 음악의 흐름과 춤의 흐름이 어긋나는 대목이 있을 때에 힘들어한다. 예컨대 보통 평범한 노래들은 4마디가 한 소절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4박자 노래라면 4-4-4-4로 16박이 한 소절이다. 그런데 자이브는 2-2-2의 6박자로 움직이는 대목이 많다. 나에게는 두 번째 마디를 절반을 잘라서 들어야 하니 아주 불편한 것이다. 4박자 음악의 선율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저 모두 2박자로 분절해서 들으며 넘어가야 하는데, 내 귀는 선율의 흐름에 따라 4마디, 8마디가 축적되며 만드는 구조를 자꾸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 음악과 춤이 엉킨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됐다. 그 정도는 여유 있게 넘길 수준이 되자, 본격적으로 음악을 타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콜라텍에서 춤추기는 다 틀렸구나

“투, 스리, 포, 원! 투, 스리, 포 앤드, 원!” 룸바나 차차차는 이런 카운트에 맞춰 춤을 춘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왜 1-2-3-4가 아니라 2-3-4-1(혹은 2-3-4&-1)이라고 카운트를 할까? 처음 듣는 사람은 꽤 불편해해서 어떤 선생님은 그냥 ‘1-2-3-4’로 카운트를 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어디서도 시원스러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는데, 계속 춤을 추며 생각을 하다 보니 대강 짐작은 된다.

내 생각으로는, 아프로쿠반, 아프로아메리칸 음악의 리듬에서 특징적인 ‘백 비트’가 그 이유인 것 같다. 서양 근대음악은 대개 박자의 맨 앞에 강세를 둔다. 즉 1-2-3-4에서 1에 강세가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4박자를 ‘강-약-중강-약’이라고 외운 게 바로 그거다.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에 흑인 문화가 들어와 형성시킨 음악에서는 앞이 아니라 뒤에 강세를 두는 리듬이 일반적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약-강-약-강’이 되는 셈이다. 즉 비트가 백(back)에 있다.

룸바를 추다 보면 그 카운트가 충분히 이해된다. 4박자인데도, 첫 박에 동작의 악센트가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맨 마지막 박자의 튕기고 끌어올리는 힘으로 그다음 제1보(步)가 내디뎌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세 번째 박자에서 끌어져온 흐름이 네 번째 박자, 그중에서도 마지막 반 박자에서 절정에 달한다. 바로 그 박자에 엉덩이를 살짝 튕기는 히프 무브먼트(hip movement)가 놓인다. 이렇게 네 번째 박자의 힘이 크니까, 거기에 가장 강한 1이란 수를 붙이는 것은 합당하다.

리듬과 흐름이 음악마다 이토록 다양하니, 나는 콜라텍에서 춤추기는 다 틀린 사람이다. 콜라텍의 손님 대부분은 지르박과 블루스를 추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음악도 한국 대중가요를 트로트 스타일로 편곡해놓은 음악을 틀어준다. 이런 환경에서 댄스스포츠를 추는 사람은, 남들 지르박 출 때 자이브를 추고, 블루스 출 때 룸바를 춰야 한다. 뭐, 박자의 수와 속도는 얼추 맞으니 못 출 것은 없다. 하지만 섬세한 리듬의 흐름이 전혀 다르다. 예컨대 블루스 추기에 적합한 음악은 ‘쿵 딱 쿵 딱’의 트로트 느낌으로 4박자를 치는 곡이다. 그런데 룸바는 ‘쿵따라락딱 쿵딱 쿵딱’ 식으로 잔가락까지 들어간 흐름이 느껴져야만 춤을 추기가 편하다. 느린 보사노바 음악에 룸바를 추는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잔가락이 약간 다르긴 해도 백 비트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라틴음악이 아닌 그냥 쿵짝거리는 4박자 음악에는 정말 춤추는 재미가 없다. 자이브도 마찬가지다. 스윙재즈가 아니라 트로트 메들리 곡이 흘러나오면 저절로 내 히프도 ‘관광버스 춤’처럼 움직여진다(이런 고충 때문에 아예 댄스스포츠만 추는 사람을 위한, 콜라텍이 아닌 댄스홀이 따로 있다).

음악이란 게 그토록 민감한 것이다. 내가 음악에 민감하다는 것을 안 선생님은, 트로트에 맞춰 사교댄스 배우는 사람과 뒤섞이지 않도록 내 레슨 시간을 배려해주신다. 까다로운 학생 때문에 우리 선생님, 정말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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