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이 밝았다. 2018년에 좋은 음악을 많이 소개하려 했지만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내가 꼽은 2018년 최고 앨범 2장이다. 단, 조건이 있다. 실시간 차트 100위권에서 보기 어려운 음악을 먼저 고려했고, 장르는 ‘(모던) 록’으로 한정했다. 이 지면을 통해 다뤘던 뮤지션·밴드일 경우 공평성을 위해 제외했다. 앨범 2장을 소개한다.
먼저 세이수미의 〈Where we were together〉이다. 이 음반은 참 기묘하다. 달콤한 멜로디가 흐르는데 그 정서는 낙천과는 거리가 멀고, 록 밴드의 외양을 갖춰 리듬을 몰아붙이는데 분위기는 쓸쓸한 노스탤지어를 품고 있다. 세이수미는 부산 출신 밴드다. 비치보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서프 록(Surf Rock)의 서사를 갖추고 있지만 둘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비치보이스가 동경하던 해변이 젊음과 활력으로 꽉 차 있다면 세이수미가 노래하는 해변에는 인적이 영 드문드문하다는 것이다.
하긴, 해변의 낭만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여러 층위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마냥 행복한 기운으로 가득한 낭만이 있는가 하면 달콤쌉싸름한 추억이 그늘져 있는 낭만에도 우리는 귀를 기울이곤 한다. 수록곡 중에서는 ‘Old Town’이 이를 대표한다. 세이수미는 이 곡에서 빗발치는 기타 리프를 바탕으로 역동적인 리듬을 몰아치지만 곡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이거나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다. “모두가 이 오랜 동네를 떠났지. 나만 이 동네에서 나이를 먹네”라는 노랫말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기타 리프가 터져 나오자마자 “어어?”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보컬도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는 귀에 착착 감기는 맛이 상당한데 이 정도면 거의 백종원급 아닐까 싶다. 이 곡을 포함한 앨범의 장르를 보통 ‘기타 팝’이라 정의한다. 단언컨대, 언니네 이발관 이후 이 장르에서는 세이수미가 최고다.
라이프 앤 타임의 〈Age〉는 정교하면서도 창조적이다. 간단하게, 연주를 끝내주게 잘하는 동시에 작사·작곡 면에서도 탁월함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라이프 앤 타임은 이미 2015년 데뷔작 〈Land〉를 통해 자신들의 재능을 한껏 드러냈던 바 있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이 탁월한 밴드가 이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하루빨리 알고 싶었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연주
1집에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증명한 그들은 〈Age〉를 통해 한층 미세한 영역으로 진입해 듣는다는 행위의 즐거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잠수교’를 틀어보라. 심플하고 간명하게 구간을 반복하는 플롯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수놓는 연주는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로 따지자면 미장센이 완벽에 가까운 케이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뚜벅뚜벅’ ‘뉘엿뉘엿’ ‘꾸물꾸물’ 등의 의태어를 활용한 가사는 여기에 참신함이라는 왕관을 씌워준다. 후반에 수록된 ‘연속극’도 빼어나긴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1분 즈음의 변주 지점과 3분이 조금 못 되어 튀어나오는 트럼펫 연주에 주목하길 바란다. 그들의 향상된 작·편곡 능력을 여실히 증명하는 까닭이다. 이 외의 모든 곡에서 전에는 없었던 여유가 넘실거린다. 그러면서도 연주의 나사를 조여야 할 때는 능숙하게 쭉 조일 줄 안다. 수록곡 제목 그대로 한국 록의 ‘정점’이라 불릴 만한 앨범이다.
-
듣다 기절할 뻔했다, 이토록 매력적이라니 [음란서생]
듣다 기절할 뻔했다, 이토록 매력적이라니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날이 추워지면 이어폰으로 자주 손이 간다. 세찬 바람 때문일 수도, 왠지 모르게 허전해지는 마음 탓일 수도 있을 게다. 어쨌든, 나에게 10월과 11월은 속된 말로 음악이 무척 당...
-
[보헤미안 랩소디] 팩트체크 [음란서생]
[보헤미안 랩소디] 팩트체크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가히 열풍이다. 스트리밍 사이트를 쭉 훑어봤는데 팝 차트 상위권에 예외 없이 이 곡이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당신의 예상대로 주인공은 바로 그룹 퀸(...
-
‘오로라 피플’ 들고 온 허클베리핀 [음란서생]
‘오로라 피플’ 들고 온 허클베리핀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날이 매서웠다. 일찌감치 해는 떨어졌고, 거센 바람이 온몸을 때리듯 지나갔다. 확실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는다. 제주 김녕의 해변이었고,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이 바다였다. 춥고 어두...
-
눈발 휘날리면 ‘누드’의 볼륨 높여라 [음란서생]
눈발 휘날리면 ‘누드’의 볼륨 높여라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12월이 되었고, 대설이 지났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셈이다. 내 오랜 습관 중 하나, 겨울이 오고 눈이 쌓이면 집을 나설 때 반드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러고는 다음 3곡...
-
영화 [로마]가 미래에 던지는 4가지 질문
영화 [로마]가 미래에 던지는 4가지 질문
임지영 기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극장에 모인 기자들을 향해 물었다.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셨나요? 아니면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봤나요?” 누군가 답했다. “극장에서요!” 감독의 얼굴에 화...
-
무용해서 유용한 굿즈, 너는 누구냐
무용해서 유용한 굿즈, 너는 누구냐
고재열 기자
“그걸 왜 사, 그걸 누가 산다고, 그런 건 또 언제 샀냐,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샀어, 그런 걸 사서 무엇에 쓰는데, 그건 또 어떻게 쓰는 건데?” 기성세대가 ‘굿즈(Goods...
-
Queen망진창? 그래서 어쩌라고 [음란서생]
Queen망진창? 그래서 어쩌라고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지난한 1개월 반이었다. 이유는 별것 없다. 수많은 사람의 ‘퀸(Queen) 망진창’이 나에겐 조금 지겨웠을 뿐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관련해 수많은 사후 분석이 등장했다. 하...
-
이보다 더 행복한 ‘듣기’가 있을까 [음란서생]
이보다 더 행복한 ‘듣기’가 있을까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공연을 자주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최근에 강태환·박재천·미연이 함께한 재즈 공연을 봤는데,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60분 동안 세트 리스트는 딱 한 곡. 언어마저 가볍게 초월해...
-
이 책을 읽고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음란서생]
이 책을 읽고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20대 시절 ‘책’ 하면 왠지 ‘무겁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뭔가 인생에 대한 철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럴듯한 아포리즘 몇 개 정도는 있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