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이진희씨가 서울신문 사장으로 있었던 1986년 2월부터 1987년 6월 사이에 서울신문이 입주한 프레스센터 앞마당에서는 아침마다 기묘한 광경이 벌어졌다. 신문사의 전 간부가 길 양 켠에 도열해 출근하는 이진희 사장을 맞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 사장은 머리가 허연 편집국장이나 공무국장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가운데를 으스대며 통과하곤 했다. 이씨는 1980년 1월 서울신문 주필로 있으면서 언론계에서는 최초로 사설을 통해 신군부를 환영하는 나팔을 불었던 인물이다.
 
초년병 기자 시절 그 광경을 보노라면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곤 했다. 평생 동안 자기 일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어째서 저런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 걸까. 그리고 저런 것도 ‘업무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기자 밥그릇 수를 늘려가면서 존경받아 마땅한 많은 선배들이 다반사로 그런 ‘업무의 일부’에 시달리며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주들은 젊은 시절 자기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뛰며 훌륭한 기사를 양산했던 기자들을 간부로 발탁해 젊은 기자들을 억누르는 방패막이로 쓰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 버리곤 했다.

그래서 예전 회사에 있을 때는 그런 선배들이 나갈 때 기자들이 앞장서서 사주 측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성대하게 예의를 갖춰 보내드린 일도 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서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서 보냈던 7년 세월을 털어놓은 김용철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간부가 삼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건희 회장을 위해서 살아야 했다. 이건희교 신도이기를 원했다. 나는 괴로웠다.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노릇을 하게 만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삼성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고 세련됐지만 안타깝게도 회사로부터 존중받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대한민국이란 콧구멍만한 나라에서 삼성이란 기업을 글로벌 시대의 강자로 키워낸 호랑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그들에게 하이에나 같은 짓을 하라고 강요한다. 이건희 회장은 그들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들이 이 구멍가게 같은 잡지사의 편집국장에게 진땀을 빼며 전화를 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탁상에서 계속 전화가 울어댄다. 휴대전화가 연방 몸을 떤다. 액정 화면에는 잃고 싶지 않은 삼성의 지인들 이름이 번갈아 나타난다.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