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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에서 난민의 인권과 미래를 생각하다

인구 950만명인 요르단은 난민 76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미래 박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난민 심사를 진행한다. 난민은 그 덕에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암만·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9년 01월 08일 화요일 제5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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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사는 일곱 살이다. 핑크색 원피스와 까만 타이즈를 입고 머리를 땋은 이나사는 왼손에 깁스를 했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이 차에서 내리자, 축구를 하던 이나사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겨우 걸음마를 하는 꼬마부터 열다섯은 되어 보이는 청소년까지 나이대도 들쭉날쭉하다. 이나사는 언니 오빠들보다 영어를 잘했다. 영어를 어디서 배웠느냐는 질문에는 “마드라사(‘학교’라는 뜻의 아랍어)”라고 했다가 곧바로 “스쿨”로 바꿔 말했다. 거의 아랍인만 보고 자랐을 이나사지만, 낯선 이방인이 아랍어를 못할 거라고 금방 알아챈다. 영리한 아이다.

이들이 기자를 향해 축구공을 찼다. 공기가 이미 다 빠져 있어, 축구공이었던 가죽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낫다. 골대고 뭐고 없는 모래땅에서 발가락이 다 드러나는 샌들을 신고 잘 구르지도 않는 공을 찬다. 이걸로 놀 수 있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남자아이들은 기자를 돌파하려 하고, 여자아이들은 기자와 패스를 주고받으려 한다. 여자애들이 패스하며 노는 꼴을 남자애들은 절대 두고 보지 않고 훼방 놓는다. 여자애와 남자애와 공의 조합이라면 세계 어느 골목을 가도 이 풍경이겠다 싶은 익숙함이, 이곳에도 어김없이 있다. 2018년 11월14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1시간 남짓 차를 달리면 나오는 아즈락 난민 캠프. 내전을 겪는 이웃 나라 시리아의 난민들이 머무는 곳이다.

ⓒ시사IN 천관률
요르단 아즈락 난민 캠프에 시리아 난민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에 시작됐다. 일곱 살 이나사는 어쩌면 시리아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어린, 아예 난민 캠프가 고향인 아이들도 많다. 최대 6만명까지 수용하는 아즈락 난민 캠프의 현재 인구는 4만명쯤 된다. 5세 이하 아이들이 전체 인구의 22%에 달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한 번도 모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아즈락 난민 캠프에서는 1주일에 35명꼴로 신생아가 태어난다. 일상도 계속되고, 새 생명도 계속 태어난다. 

요르단은 시리아의 남쪽 국경과 맞닿은 나라다. 인구는 950만명, 1인당 GDP는 4900달러다. 중동에서는 보기 드물게, 산유국도 아니다. 이 나라가 수용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은 67만명이다(유엔난민기구 집계 기준). 12만명이 이나사처럼 난민 캠프에 산다. 그보다 훨씬 많은, 55만명이 요르단 주민들과 섞여 산다. 유엔난민기구는 난민들을 캠프에 수용하기보다는 도시에 정착시키도록 권고한다. 그래야 난민들이 자생력도 기르고 현지인과 공존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시리아와 같은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때는 캠프도 운영한다.

요르단에는 시리아 난민 외에도 이라크에서 6만7000명, 예멘에서 1만3000명이 들어와 있다. 인구 950만명인 나라가 난민 76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인구의 8% 규모다. 인종과 종교와 언어가 같아서 부담이 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한국이 이 비율로 난민을 수용한다면, 400만명을 받아들인 것과 같다.

자국 인구 8% 규모의 난민 수용

시리아 난민들은 농업, 건설업, 요식업(호텔 제외), 수공업에서 취업허가증을 받을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요르단 원주민과의 경쟁은 제한적으로만 이뤄진다. 시리아 난민들은 대부분 농업 노동자로 일하는데, 농업은 주로 이집트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하던 일이다. 
변창기씨는 유엔난민기구 요르단 대표부에서 기구 간 조정 담당관으로 일한다. 요르단은 해외 파견 기업들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선호 지역은 아니다. 그런데 유엔난민기구에서는 ‘좋은 근무지’에 속한단다. 기자는 난민 업무를 많이 하고 경력을 빨리 쌓을 수 있어서 좋다는 뜻이라고 잘못 알아들었다. “그게 아니고, 난민 업무가 있는 국가들은 워낙 열악한 곳이 많다. 요르단은 적어도 가족과 함께 올 수 있을 만큼 치안이 유지되어 있고 아이들을 보낼 영어 학교도 있어서, 말 그대로 좋은 근무지다.” 이 일이 요구하는 헌신과 희생이 실감나는 한마디였다.

변창기 담당관은 2017년까지는 난민 심사 업무를 직접 했다. 요르단은 난민협약 가입 국가가 아니다. 난민 심사 기능을 국제기구인 유엔난민기구에 위탁한다. 난민 심사의 원리 자체는 세계 공통이다. 난민협약에 난민의 개념이 정의되어 있다. 크게 두 가지 조건이 중요하다. 

ⓒ시사IN 천관률
유엔난민기구 요르단 대표부 변창기 기구 간 조정 담당관은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면 난민으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첫째, 난민 신청자가 다섯 가지 사유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정치적 견해를 말한다. 예를 들어 내전 국가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이 다섯 가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내전의 양상이 내가 믿는 종교나 내가 속한 사회집단을 박해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때는 난민 신청 사유가 성립한다. 난민 인정의 대상은 개인이다. ‘시리아는 내전 중이므로 시리아인은 난민 인정’ 이렇게 집단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둘째, 박해를 우려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난민 신청자가 느껴야 한다. 그가 박해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난민으로 인정받는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다. 

그런데 같은 규칙을 적용해도 난민 인정률은 천차만별이다. 2000~2017년 한국 정부의 난민 인정률은 3.5%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24.8%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대근 연구위원은 “정치범이 급히 탈출하면서 자기 전과기록을 챙겨 나올 수 있을까? 그래서 난민 심사에는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신청인에게 유리하게’ 원칙이 있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난민 인정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난민 신청자에게 박해의 증거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까다로운 문제다. 난민 심사가 최소한의 자료조차 검토하지 않는다면 심사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난민 신청자들은 박해를 입증할 증거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시리아처럼 대규모 피란민이 한 번에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특히 증거가 존재하기 어렵다. 변창기 담당관이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난민 심사를 했다.

“심사에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미래 박해 가능성’이다.” 변 담당관이 강조했다. “과거에 박해를 받았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에 초점을 두는 심사법이다. 과거에 박해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돌아갔을 때 처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 난민으로 인정된다.” 

전 세계가 공유하는 ‘미래 박해 가능성’

증거가 아니라 미래의 박해 가능성에 주목하면, 증거의 딜레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난민법 전문가인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 박해 가능성은 유엔난민기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공유하는 원칙이다. 한국에서는 이게 잘 안 통한다. 과거 박해 이력을 기준으로 본 듯한 법원 판례가 있다. 국제법 원칙과 맞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받았던 판례인데, 이게 족쇄로 작동하고 있다.” 

ⓒ시사IN 천관률
요르단 자타리 난민 캠프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미래 박해 가능성 개념은 어떻게 작동할까. 변 담당관이 들려준 사례다. 한 예멘 청년이 난민 심사를 신청했다. 가족은 고국에 두고 혼자 피신했고, 과거에 박해를 받은 경험은 없었다. 한국에서 심사를 받았으면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예멘의 현실과 신청자의 처지 등을 검토했을 때,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경우 정부군이나 반군에 강제징집될 가능성이 있다. 이 징집이 자신의 종교나 정치적 견해에 반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난민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해 이력이 없는 피란민이라 해도, 사람들에게는 복잡한 사연들이 많다. 그걸 섬세하게 파악하면 미래 박해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요르단에 들어와 있는 난민들은 그 덕분에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나사에게 영어가 재미있냐고 물었다. 이나사는 웃으면서 다치지 않은 오른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 해맑고 영리한 아이에게 선진국 어린이들만큼의 기본적 인권이 주어진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지 상상했다.

난민에게는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진정으로 절실한 것은 인권이다. 이것은 난민 문제로 고민을 시작한 우리에게도 희소식인데, 인권은 나눈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나 자원과는 다르다. 인권은 더 보편적으로 작동할수록 더 크고 탄탄해진다.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인 난민마저 인권을 보장받는 사회라면, 다른 구성원들의 인권은 반석 위에 올라가게 된다. 반대로 난민의 인권이 취약한 사회는 인권을 사람 따라 골라 적용할 수도 있다고 합의한 사회다. 이 경우 인권에서 배제될 다음 후보는 내국인 취약계층이다. 인권은 나눠야 커진다. 이 즐거운 역설을 믿는 사람들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 6800만 난민을 위해 뛰고 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KPF 디플로마-중동 전문가 교육과정’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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