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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자선이 아니라 책임이다”

‘악플을 달 수 없는 배우’였던 정우성은 이제 가장 민감한 정치 행위를 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타고난 개인주의자였던 덕분에, 다른 이들의 권리에 눈을 떴다. 난민 문제는 ‘시민 정우성’을 성장시켰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9년 01월 07일 월요일 제5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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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25년차 배우. 커리어 내내 정상에 서 있는 톱스타.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한때 ‘악플을 달 수 없는 배우’로 불렸다. 이제는 아니다. 2018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의 난민 활동은 나무랄 데 없는 선행에서 돌연 가장 민감한 정치 행위로 뒤바뀌었다. “난민과 부대끼는 건 하층 노동자이고 성범죄를 당하는 건 여자들인데, 정우성은 CCTV 있는 좋은 데 살면서 난민 받으라 그런다. 무책임하다” 식의 댓글이 이제 수없이 달린다. 그리고 그는 그걸 꼼꼼히 읽는다.
2018년 12월17일, <시사IN> 편집국에서 100분 동안 그를 만났다. 난민 문제로 시작한 대화는, 시민 정우성의 경험과 고민의 궤적을 따라 종횡무진 폭이 넓어졌다.







친선대사 활동 이후 다녀온 현장이 어디어디인가요?

네팔, 남수단, 레바논, 이라크, 방글라데시. 제주도에도 있었고요. 2018년 11월에는 지부티와 말레이시아를 다녀왔습니다. 예멘 난민들이 거치는 루트죠. 레바논이나 말레이시아에는 난민 캠프가 없지만 도시 난민 형태로 원주민과 섞여 삽니다.

인상적인 만남이 있었나요?

열아홉 살 로자는 꿈이 치과의사예요. 웃을 때 치아가 예쁘면 세상에 더 아름다운 미소를 줄 수 있을 거래요. 이유가 너무 예쁘지 않아요? 예전에 남수단에서 만났던 로다라는 친구도 생각나네요. 그 친구 꿈은 변호사였어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서요. 아이들 꿈이 의사가 많고, 변호사나 기자도 많고 그래요.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해요.

난민을 종교나 인종으로 묶어서 보지 말고, 한 명 한 명 사람으로 보자고 자주 강조하지요?

일부 극우 개신교에서 만드는 가짜 뉴스처럼 ‘난민은 성폭행범’ ‘난민 허용은 이슬람화’ 이런 식으로 싸잡아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예멘 난민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무슬림 15만명 이상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었다고 하거든요. 그때 무슬림 성폭행 사건이 그렇게 많았나요? 500명으로도 나라가 뒤집힐 거라는 논리대로라면 지금 이미 ‘이슬람화’가 한창 진행돼 있어야 하지 않나요?

난민을 받으면 여성 안전이 침해될 것이라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진짜 약자는 한국 여성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약자는 보호해야 합니다. 그게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의 기본자세일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난민 대 여성’이라는 구도 자체가 허구이고 비약이라는 것이지요. 왜 난민이 거기에 붙지? 그런 난감함이 있어요. 만약 누군가가 여성을 성폭행한다면, 범인이 난민이든 아니든 당연히 법에 따라 강력한 처벌을 해야겠지요. 난민이면 처벌도 하지 말자는 게 아니잖아요. 난민이라는 어떤 특정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다 잠재적 성폭력범으로 규정짓는 것이 옳으냐는 겁니다. 일부 교회 목사들이 여성 신도를 성폭행한다고 해서, 우리가 개신교 전체를 낙인찍나요?

집단으로 낙인찍지 말고 개별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신념은 어디서 온 걸까요?

제가 제도권 안에 있던 애가 아니잖아요. 불우한 어린 시절도 있었고 빨리 학교에서 뛰쳐나왔고(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고, 고등학교를 마치지 않고 10대 시절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학교 밖으로 나온 남자애한테는 여러 차별이 많더라고요. 집에 돈이 없다거나, 학교를 마치지 않았다거나 이런 건 개인이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내 직업에 수입이 적다 해도 내가 감당할 몫이죠. 그런데 이런 차이 때문에 평등한 인격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 그건 달라요. 쟤 직업은 하찮은 거야, 이렇게 싸잡아 무시하면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것,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촬영 현장에는 학력과 직업과 목적이 다양한 친구들이 다 섞여 있어요. 이들 각자가 자기 일을 존중받는 느낌이 들면 현장이 행복하고 에너지가 좋아요. 그런데 나는 배우니까 대접받고 지낼 거야, 쟤들은 스태프니까 함부로 해도 돼, 이런 현장은 힘들어요. 재미가 없어요.


ⓒ시사IN 조남진
배우 정우성씨는 <시사IN>과 인터뷰에서 일부 극우 개신교가 예멘 난민을 비난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이미 15만명의 무슬림이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난민 문제를 오래 다루다 보면 다른 소수자에 대한 사고도 달라지나요? 소수자를 접하는 경험이 늘면 사람들의 생각도 바뀔까요?

그렇죠. 일단 제가 접한 난민 대부분이 아랍계거든요. 그들의 얘기를 들을 때는 피부색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를 듣는 거고. 인종이나 종교에 대해서도 더 열리게 되죠. 그리고 저는 어릴 적부터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땐 성소수자를 당연하게 차별하던 때잖아요.
그 사람이 그렇게 태어난 거니까요. 삶에서 자기가 선택했을 수도 있고.





정우성은 타고난 개인주의자다. 이 개인주의는 어린 시절 겪은 차별 경험과 만나 한 차원 도약한다. 누구든 ‘소속 집단과 상관없이 개인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중요하다. 그는 개인주의자였던 덕분에, 다른 이들이 개인으로 존재할 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난민은 그 권리가 가장 결핍된 이들이다. 2018년 11월, 그는 지부티와 말레이시아를 다녀왔다.






지부티는 어떤 나라입니까?

저도 생소한 나라였는데, 1977년에 프랑스령에서 독립했고 인구가 97만명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위치가 굉장히 중요한 길목,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있어서 열강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요. 마치 조선 말기 풍경을 보는 느낌도 받아요.


요즘 역사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주로 분쟁지역을 가게 되는데, 뭘 좀 알고 가야 하잖아요. 난민의 역사는 곧 피해자의 역사인데, 갈등, 내전, 분단… 이런 역사를 곳곳에서 만나게 되죠. 우리랑 너무 닮았어요. 그러다 보면 제국주의와 냉전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국제분쟁과 난민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느냐. 이 질문에 답을 찾다 보니 계속해서 시야를 넓힐 수밖에 없더라고요. 열강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가장 피해를 보는 약소국,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일반 시민에게 돌아가는 피해, 그 결과물이 난민이거든요.

난민 문제와 국제정치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 계기는요?

시리아죠. 이슬람 안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싸우는 분쟁이라고 하는데, 들여다보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정부군을 지원하는 국가는 어디어디, 반군을 지원하는 국가는 또 어디어디, 중동 안의 갈등과 밖의 갈등이 다 섞여 있으니까요.

역사와 국제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더 막막해지지 않나요?

아니에요(그는 100분간의 인터뷰 동안 단호한 부정 표현을 이 장면에서 딱 한 번 썼다). 가장 중요한 건 국제정치 문제를 어떻게 풀까가 아니라, 난민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죠. 지구상 어떤 나라도 국제정치의 갈등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어떤 국가라도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분쟁으로 말려들어갈 수 있고, 어떤 국가의 시민이라도 갑자기 희생양이 될 수 있어요. 이게 대전제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왜 이 희생된 시민을 도와야 하느냐. 여기서부터 인권 문제로 가는 거잖아요. 이 사람들은 박해를 받고 목숨까지 위협받죠. 인권에 치명적인 피해를 당할 수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도와야죠.

ⓒ유엔난민기구 제공
유엔 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인 정우성씨가
2018년 11월 지부티에 있는 예멘 난민 캠프를 방문해 치과의사가 꿈인 로자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우성에게 난민 활동이란 자선인가요, 책임인가요?

자선은 아니에요. 제가 가난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다면, 그건 자선이겠죠. 하면 좋은 일이지만 안 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선택의 문제죠. 난민 문제는 그런 걸 초월한 인권 문제라고 생각해요. 친선대사가 실제로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해보니 엄청난 책임을 지는 일이더라고요.

속아서 하셨군요(웃음)?

덕분에 빨리 깨달았다고 해야겠죠(웃음). 이게 왜 자선이 아니라 책임이냐. 남을 위한 어떤 행동이 아니라, 우리와 직접 결부돼 있는 문제니까요. 국제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그래서 박해를 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좋아요, 그럴 수 있어요. 이 희생자들의 인권을 지키는 건 그들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도 중요하죠. 인권이란 인간 존엄에 대한 기본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합의이고, 이 합의가 흔들리면 우리의 존엄도 흔들릴 수 있으니까요.




이 결정적인 대목에서, 정우성은 낭만적 온정주의와 결별한다. 그에게 난민 문제는 더 이상 선의와 온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차라리 20세기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뒤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우리는 두 세계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난민을 나 몰라라 하는 세계’와 ‘난민 책임을 각국이 나눠 지는 세계’다. 여기에 결정적 조건이 붙는다. 우리는 내가 어디서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로 이 선택을 한다. 즉, 우리는 내가 태어난 지역이 안전할지 분쟁 중일지 알 수 없다. 어떤 세계를 골라야 할까?

이 조건을 진지하게 따져본 사람들은 ‘난민 책임을 각국이 나눠 지는 세계’를 고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분쟁지역에 태어났을 때의 고통이 너무나 클 것이기 때문에, 그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책임을 나눠 지는 비용은 이 위험에 비하면 훨씬 사소해 보인다. 출생이라는 제비뽑기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면, 책임을 공유한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자연스럽다.

이 사고실험은 롤스의 ‘무지의 베일’ 논증을 변형한 것이다. 정우성은 난민 문제는 자선이 아니라 책임의 영역이며, 그것이 책임인 이유로 “어떤 국가의 시민이라도 갑자기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대전제”를 든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고, 개인의 노력으로 피할 수도 없다. 모두를 위협하는 문제니 책임도 모두 나눠 져야 한다. 현장에서 부딪쳐가며 치열하게 답을 찾아나간 정우성의 고민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자유주의자의 성취와 닮아 있었다.




ⓒ시사IN 이명익
2018년 6월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주관한 취업설명회에 예멘인이 참석하는 모습.

‘시민’이네요 정우성씨는. 개인을 중시하면서도, 개인이 모여 살아가는 데서 생기는 책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민이 되려면 뭐가 가장 중요할까요?

하하하핫(그가 가장 큰 웃음을 터뜨린 장면. 즐거워서인지 민망해서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인 것 같아요. 그걸 절대 놓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공감할 때 같이 사는 거잖아요. 그쪽은 내 일이 아니야. 내 일은 내 일, 쟤 일은 쟤 일. 그 순간부터 같이 사는 사회에서 멀어지고, 결국 집단이기주의가 형성되고, 그렇게 되면 가진 자들이 더 유리한 세상이 되고, 가진 자들은 본인들이 유리한 세상을 만드는 순간 절대 놓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흘러왔다고 생각해요. 결국 공감능력이 있어야, 내가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위기의식이 있나요?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물질주의가 만연한 세상이거든요. 공심이 없잖아요.

공심?

사심(私心) 반대말로 공심(公心). 이게 없는 것 같아요. 국회의원이 나라 걱정하나요? 백년대계를 고민하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있겠어요? 사법 농단 사건을 보면서 와, 정말 법도 무너졌구나, 법도 우리를 안 지켜주는구나 이런 생각 들잖아요. 가장 큰 피해자는 청춘들이에요. 어른들이 공심이 없으니 청춘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가야 하잖아요. 굉장히 외로울 거예요.

요즘 한 야당 정치인이 반(反)난민, 반(反)이민 발언을 계속 내고 있는데요.

애석하게도 그런 선동 구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죠. 약자의 상처를 마치 자기가 잘 안다는 양 말하는 그 정치인이 실제로 약자의 아픔을 얼마만큼 아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위기 때마다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했잖아요.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회사는 위기 때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고. 경제성장 우선주의로 일반 시민들은 기다리라고 해놓고 소득분배는 국가와 지도층이 외면하니까, 당연히 국민은 피해의식이 있죠. 우리도 힘든데 왜 자꾸 남을 돕자고 그래, 이런 질문도 당연해요. 적을 만들어서 그런 정서를 파고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풀어야 할 문제를 풀지 못하고, 엉뚱한 쪽에 책임을 돌린다고 생각하는군요.

나라에 어른이 없잖아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각자도생에 맡겨버리고. 부모도 자식 교육 그렇게 시키잖아요. 뭘 안다고 그렇게 나라 시끄럽게 나서느냐, 먹고사는 데나 신경 써라. 이런 분위기에서 남의 인권, 친구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아 보이죠.

개인, 책임, 공감, 공심.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에 일관성이 있네요. 난민 친선대사 이전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나요?

어린 시절 그런 성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30대 때는 가장 한심한 시간이었어요. 나 남자 됐어, 나 좀 알아. 정작 세상에 대한 관심은 점점 없어지고. 관심이 있다고 착각을 하고 살았죠, 제 개인 삶에만 목적을 두고. 물론 한 인간이 자기 삶에 목적을 두고 노력하는 건 아름다운 거죠. 그런데 그런 노력도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개인을 존중할 때 진짜로 빛날 수 있잖아요. 그런 사회가 아니다 보니 억울한 사람이 자꾸 나타나고. 30대 때는 그걸 몰랐어요. 그러다가 어떤 대통령의 죽음과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느꼈던 마음은 미안함이었거든요. 이렇게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는 사회가 되는 동안 난 뭐 했지? 나이 먹어가면서 뭐 했니? 친선대사도 그즈음 시작했어요.

ⓒ시사IN 신선영
2018년 6월30일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이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개인이 세상에 책임을 갖는다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는 좀 약하잖아요. 지치거나 좌절할 때도 많을 것 같은데요.


몇 마디 인터뷰나 대화로 내 생각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죠. 시간이 필요하고,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은 지속성을 쉽게 상실해요. 그러다 보니 늘 같은 문제를 겪죠.

공심이 필수인 직업에 기자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법조인도 있지만, 사실 배우에게 필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이상하게 <비트>를 찍고, 왜 그 나이에 그걸 먼저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영화가 사회에 끼칠 수 있는 파급력을 느꼈어요. 그 영화 나오고 나서, 형 제가 오토바이 훔쳐서 탔다, 다리가 부러졌다, 담배 형 때문에 배웠다, 그런 말들을 하는데 좋게 안 들리더라고요. 조심해야겠구나, 영화배우라는 게 이렇게 파급력이 있구나. 이후로는 나쁜 영향을 끼치겠다 싶은 배역은 아예 다 거절했어요. 그땐 조폭영화 참 많았던 시절인데.

다음 세대에서 더 많은 시민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제가 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장하라고 얘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에요. 그들에게 공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는 건 나이 먹은 세대가 해야 하는 거지. 지금 40대, 이 사회에서 허리인 우리 나이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실천할 책임이 있죠. 사회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데 청년에게만 공심을 가져라 하면 누가 그러겠어요. 지금 난민을 반대하는 20대들은 잘못이 없어요. 자신의 간절함을 호소하는 게 무슨 잘못이겠어요.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어놓은 기성세대의 문제죠. 

난민 활동 때문에 본업에 지장은 없습니까?

정치는 하지 말란 얘기는 가끔 듣습니다(웃음). 소수 기득권만이 잘 사는 나라는 결국 무너지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저 혼자 고기 먹는 것보다 다 같이 고기 먹는 게 더 행복한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활동을 자꾸 진보다 뭐다 정치 프레임으로 해석하는데, 그런 데 제가 위축되면 시민의 목소리를 누르려는 힘에 묶이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민으로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우리가 나눠야 할 것을 말하는데, 그걸 굳이 정치적이라고 부르고들 싶다면… 뭐 제가 정치적인 걸로 해야겠죠(웃음).





모든 현대 사회는 다음 세대를 좋은 시민으로 길러낼 과제를 짊어진다. 좋은 역할모델이 반드시 필요하다. 난민 문제는 ‘시민 정우성’을 분명 성장시켰던 것 같다. 덕분에 한국 사회는 역할모델이 될 만큼 유명한 동시에 좋은 시민을 갖게 되었다. 뜻있는 한국인들이 난민에게 보낸 도움의 손길이 중요한 선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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