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대도시. 유명한 변호사가 큼직한 여행 가방을 끌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소란을 피우다 공안에 체포된다. 그가 ‘살상무기’가 들어 있다며 공안을 협박하던 가방 안에서 나온 것은 중년 남자의 시신. 살인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던 그는 법정에서 돌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알리바이도 완벽하다. 이 엉뚱한 ‘시체 유기 및 진술 번복’ 사건은, 15년 전 농촌에서 의문의 사체로 발견되었던 젊은 법대생에게로 이어진다. 사건을 둘러싼 수수께끼가 풀려가면서 거대 정치·경제 권력에 맞서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싸운 한 검찰관의 처절한 일생과 죽음이 서서히 드러난다.

중국 추리소설계의 3대 작가 중 하나라는 쯔진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추리소설은 사회적 금기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범한(범죄) 다음 질서를 복원하는(사건 해결), 매우 보수적인 장르다. 다만 금기의 파괴가 얼마나 파격적인지에 작품의 재미가 달려 있다. 사상의 자유가 제한되고 문예 작품에 대한 검열까지 이뤄지는 중국의 추리소설이 흥미롭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의외로 재미있고 격정적이다.

대략 1990년대 말에서 2013년까지의 중국 사회를 무대로 삼은 이 소설에서 주목할 점은 법치주의를 둘러싼 갈등이다. 원리적으로 법률 위에 공산당이 존재하는 중국 사회주의 체제에서 ‘법치’란 좀 낯선 개념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1978년의 개혁·개방과 함께 비로소 법치란 개념이 조금씩 강조되기 시작했다. 형법이 제정된 것은 1979년이다. 위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이에 적합한 형량을 설정하는 작업이 건국 30주년 이후에야 이뤄졌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는 형사소송법(고문을 통한 증거 무효 등)이 제법 중요한 모티브인데, 법치주의를 둘러싼 중국 사회의 모순과 그 변화, 발전하는 양상을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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