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새로 나온 책 -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시사IN 편집국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2월 21일 금요일 제588호
댓글 0
여우가 되어라
에리카 베너 지음, 이영기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신의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사상가였던 마키아벨리의 저서나 그의 정치학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출간되어 있다. 다만 하나같이 읽기 쉽지는 않다. 큰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독자들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및 유럽의 권력구조와 정치 환경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에리카 베너의 이 책은, 당대의 복잡다단하고 역동적인 정세를 구체적이고 흥미롭게 풀면서, 그 정세와 마키아벨리 정치학 간의 상관관계를 유기적으로 드러내준다. 체사레 보르지아 같은 ‘복잡’하지만 개성적인 당대 인물들에 대해서도 실감나게 묘사했다. 냉혹하고 음험한 ‘폭정의 옹호자’로서 마키아벨리의 이미지를 견결한 공화주의자로 뒤집는 논지 역시 설득력 있고 매혹적이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이창현 글, 유희 그림, 사계절 펴냄

“독서가로서 나 개인의 역사가 그만큼 깊어졌으니까요.”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책에 대한 책에는 도통 관심 없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책읽기 모임에서 만난 독서 중독자들은 서로 예명을 부른다. 독서 취향, 책 고르는 법 등 독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취향이 워낙 고고해서 베스트셀러는 목록에 끼지도 못한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는 바로 ‘처단’당한다.
지적 허세와 B급 개그가 책의 포인트다. ‘어떻게 대화 주제를 바꿔볼까’ 머리를 굴리지만 독서 중독자들은 친구도 없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끝판왕’ 같은 느낌에 가깝다.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강유원 작가)’는 말에 찔리는 건 기자뿐일까.
저자들은 이 책을 ‘왕도를 걷는 정통파 개그 만화’라고 소개했다.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지음, 신예경 옮김, 글항아리 펴냄

“나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자인 엘리자베스 워런은 미국 상원의원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맞설 민주당 유력 주자로 꼽힌다. 민주당 진보파를 대표하는 그녀는 2016년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난 직후 이 책을 썼다. 가장 아프고 당혹스러운 패배의 순간에 다음 싸움을 준비했다. 만만찮은 투사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중산층’이다. 미국은 중산층의 나라였고, 정부는 중산층을 두껍게 만드는 유능한 정책을 펴왔다. 공화당은 이 전통을 무너뜨렸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공화당 정부는 부자를 위한 정책을 거침없이 도입했다. 미국이 불만 가득한 나라가 된 것은, 중산층을 키우려는 세력이 부자를 위하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워런은 주장한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엄기호 지음, 나무연필 펴냄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


국제 인권운동을 하면서 늘 누군가의 고통과 마주해왔다. 피해자는 피해를 증언하다 클라이맥스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 말고는 자신이 겪은 것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의 절대성 앞에 모두 말을 삼갔다. 그 안에는 어떤 경건함이 있었다. 그런 자리를 마치고 오면 활동가들 대부분은 결기에 넘쳤지만 어느 날 저자는 의문에 빠졌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의 고통을 강조하는 것이 정당한가? 사회학자 엄기호의 신작이다. 그가 우리 사회 ‘고통의 지층’을 성찰해나간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 곁의 주변인들도 고통받는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절망에 자신들도 함몰되는 것. 우리 사회는 지금의 고통을 잘 견디고 있을까.



청년 흙밥 보고서
변진경 지음, 들녘 펴냄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들의 얼굴 표정이었다.”


취재의 단초를 얻은 건 미용실이었다. 숱 많고 억센 곱슬머리 탓에 파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사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고 머리를 만져주던 미용실 ‘선생님’도 밥을 걸렀다.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던 그는 대개 점심을 굶는다고 했다. 변진경 <시사IN> 기자는 핸드폰을 꺼내 취재 아이템을 기록했다. ‘젊은이의 밥.’
청년들은 자신이 먹는 밥을 ‘흙밥’이라 불렀다. 밥 한 숟가락에 굵은 소금 한 개, 카레 가루만 푼 카레물 등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소수의 과장된 사례라면 좋았겠지만 체념에 익숙한 청년들에게 포기하기 쉬운 1순위는 밥이었다. ‘식사권’을 빼앗긴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은 주거, 생활, 노동 등으로 이어졌다. 청년이라는 단어와 대비되는, ‘가슴 아픈 보고서’다.



문집탐독
조운찬 지음, 역사공간 펴냄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책의 대부분은 문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글에서 문장을 빼내 책으로 엮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빠져들게 된다. 참 집요하게 파고들었다고 감탄하게 만든다.
의천이 옛글을 뒤져 원효를 재발굴해 해동 불교의 시조로 삼았듯 여러 옛 문헌에서 잊힌 천재를 발굴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옛 문헌을 경(經)·사(史)·자(子)·집(集)으로 분류한다. 경은 유교 경전이고, 사는 역사책, 자는 유가 이외의 철학사상서, 집은 문집이다. 저자는 이 가운데 문집에 집중했다. 우리 전통 문헌의 절대다수가 문집이기 때문이다. ‘동방 문학의 비조’ 최치원부터 우국지사 황현의 문집까지 시간을 넘나들며 ‘돌에 부딪치면 흐느껴 울부짖고, 연못에 고이면 거울처럼 비치는’ 샘물과 같은 문장을 길어 올렸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