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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교육 선생님이 비정규직인 세상

김혜인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직사업부장·전 하이디스 노동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2월 28일 금요일 제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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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점거 농성 36일, 청와대 앞 농성 38일, 집단 단식투쟁 10일 만이었다. 부당한 자회사 전환 강행에 맞선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 분회가 지난 11월30일 사용자 측과 잠정 합의했다. 조합원 전원이 결국 자회사로 전환 채용되었지만,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하여 2020년까지 처우 개선을 포함한 발전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한국잡월드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직업체험과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직 직원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강사들은 교육받는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막상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비상구를 열 수 있는 카드키는 정규직만이 가지고 있다. 비상훈련을 할 때는 정규직 직원이 비상구 옆에 서 있다가 문을 열어주곤 했다. 실제 비상상황이 발생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만, 그것이 한국잡월드의 일상이었다.
ⓒ윤현지

차별은 비상구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정규직 카드를 찍어야만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다. 정규직인 50여 명만 카드를 찍고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나머지 3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은 먼 길을 돌아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는 2배 이상이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직업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비정규직인 강사들은 최저임금에 시달리며 미래에 대해 아무런 꿈도 꿀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인천국제공항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며 “상시·지속적 업무,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강사들은 당연히 상시·지속적 업무를 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자율’이라는 핑계로 노사전문가협의체에 전환 결정 책임을 떠넘겼다. 협의체는 강사들을 배제한 채 이들의 자회사 고용을 결정했다. 강사들은 일방적인 자회사 전환에 항의하며 직접고용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잡월드 노동자 41명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던 11월21일, 한국에 여행하러 왔던 타이완 노동자를 인천공항으로 바래다줬다. 공항버스에서 내리자 인천공항공사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직접고용 쟁취하자!” “무늬만 정규직 자회사 전환 반대한다!” 그가 물었다. “아니, 여기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규직 전환시켜준 거 아냐? 무슨 일이야?”

잡월드 투쟁이 이어지던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는 매일 저녁 약식 집회가 열렸다. 어떤 노동자가 나와서 비슷한 발언을 시작했다. “자회사 전환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자회사 전환은 정규직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소속만 외주업체에서 자회사로 변경되고, 그 전의 노동조건이나 낮은 임금 등의 차별은 하나도 개선되는 것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SK브로드밴드다. SK브로드밴드는 ‘민간기업 최초’로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하겠다고 하며 자회사 홈앤서비스를 만들었다. 자회사에 소속되면서 기본급은 늘었지만, 각종 수당과 실적급 등이 다 없어지고 실제 받는 임금은 줄어들었다. 설치기사들은 절차가 더 복잡해져 작업 시간이 늘어났다. 전에 노동자들을 괴롭혔던 관리자들이 그대로 자회사로 고용되었고 현장 분위기도 변하지 않았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는 간접고용 형태, 낮은 임금, 높은 노동강도 등은 그대로인 채 그저 이름만 바뀐 하청업체나 다름없고 무늬만 정규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규직 전환’이라는 겉모습에 속아 비정규직들의 진짜 현실을 보지 못한다.

잡월드 투쟁에 관한 기사에서 “인간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정규직으로 써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댓글을 봤다. 세상에 비정규직으로 일해도 ‘되는’ 노동자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모품처럼 사용되고 버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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