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 냉전’의 본격 신호탄인가, 아니면 무역협상용인가?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이자 세계 제2위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 부회장이 지난 12월1일(현지 시각) 미국 수사 당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전격 체포되었다. 보석금 1000만 캐나다 달러(약 84억여 원)를 내고 풀려나긴 했지만, 가뜩이나 첨예한 미·중 무역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멍완저우 부회장은 화웨이 창업자의 맏딸이기도 하다.

멍완저우 부회장의 체포는 때마침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확전 일로의 양국 무역전쟁을 90일간 휴전하기로 합의한 직후 터진 것이라 파장이 만만치 않다. 미국 정부는 그의 체포가 이란 제재를 위반한 화웨이의 범법 사항에 관련된 것으로, 미·중 무역 갈등과는 관계없는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CBS 방송에 출연해 “멍 부회장 체포는 사법 문제이며 행정부의 무역정책 결정 과정과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미국이 화웨이를 상업 행위에 종사하는 기업이 아니라 국제정치 혹은 미국 국가안보의 맥락에서 주시하며 관련 조치를 취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화웨이가 만든 통신장비가 미국 정부기관에 보급될 경우 언제든 몰래 전산망에 침투할 수 있는 ‘백도어(뒷문)’ 장치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며 ‘잠재적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했고, 이에 따라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지 않겠다는 결정을 이미 내린 바 있다. 실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파들은, 통신업체들이 차세대 통신망인 5G로 본격 이동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이 부문 선두 업체 중 하나인 화웨이와 미국 기업들 간 거래를 차단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 시진핑 정부의 산업정책인 ‘중국 제조 2025’ 프로그램에서 선두 주자인 화웨이는 미·중 기술 냉전의 중심에 서 있는 셈이다. 중국 제조 2025는 핵심 부품과 자재의 국산화율을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 75%로 달성하면서 차세대 정보기술과 로봇·항공·우주 분야를 포함해 10대 핵심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가,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글로벌 패권국가로 올라서는 것이라는 관측이 미국 내에서 줄기차게 제기되었다.


ⓒAFP PHOTO체포됐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왼쪽)이 12월12일 캐나다의 집을 나서고 있다.


미국은 이번 사태가 정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실제 멍 부회장이 12월11일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면서 “미·중 간에 (현재 진행 중인) 최대의 무역협상이 타결된다면 국익에 좋은 일이다. 필요하다면 화웨이 사태에 개입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일 미국의 국익이나 미·중 무역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법무부에 지시를 내릴 생각이다”라고도 밝혔다. 미국이 이번 사태를 단순히 법적인 문제가 아닌 (중국과) 정치적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한 발언이다. 옥스퍼드 대학 중국센터의 경제학자 조지 매그너스는 블룸버그 통신에 “멍 부회장이 인민해방군 출신인 화웨이 창업주의 딸인 데다, 화웨이는 이란과 거래했다는 의혹에 싸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유력한 협상 지렛대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벌금 내고 불 끈 ZTE 전철 밟을까

이런 가운데 관심사는 직원 18만여 명에 지난해 매출이 92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세계 최강 통신업체로 떠오른 화웨이의 실세 멍완저우 부회장의 거취다. 그는 보석금 1000만 캐나다 달러를 내고 일단 석방됐지만 향후 60일 내 미국이 송환을 요청하면 법적 공방을 벌여야 한다. 그가 미국으로 송환되고, 화웨이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멍 부회장 자신은 물론 회사에 미칠 부정적 충격이 만만치 않다. 미국은 세계 제5위의 통신업체인 중국 IT 기업 ZTE에 대해서도 ‘북한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 기업들의 부품 공급을 차단한 바 있다. 미국산 반도체를 핵심 부품으로 사용하는 ZTE로서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ZTE 사태는, 시진핑 정부가 필사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대화에 나서면서 일단 진화되었다.


ⓒXinhua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1일 아르헨티나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ZTE와 달리 화웨이는 그룹 총수 격인 멍완저우 부회장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사태가 훨씬 심각하다.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게 되면 5G 사업 역시 중단할 수밖에 없다. 미국 기업과 거래가 금지되면 미국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공급받을 수 없음은 물론 미국에 제품을 판매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제프리 증권사의 분석가 티머시 차우는 “화웨이가 구글의 안드로이드, 퀄컴의 특허 라이선스를 얻지 못하면 4G와 5G에 기반한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라고 블룸버그 통신에서 말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현재 화웨이에 5G 설비를 공급하는 전 세계의 주요 92개사 가운데 무려 33개가 미국 회사다. 그 가운데는 인텔, 퀄컴, 마이크론,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굴지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줄줄이 포함돼 있다. 실제 화웨이가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로부터 공급받는 부품 규모는 연간 100억 달러에 이른다. IT 분석가인 에디슨 리는 “미국의 수출금지 조치가 이뤄지면 화웨이는 5G 장비 생산을 늦추거나 단기적으로 생산 규모를 줄일 것이다”라고 CNN에서 밝혔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전 세계의 5G 상용화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려던 화웨이의 꿈도 좌절될 수밖에 없다.

멍 부회장의 체포와 미국 송환이 향후 미·중 무역분쟁에 메가톤급 충격을 던질지, 아니면 ZTE 사례대로 벌금을 내는 선에서 끝날지 아직은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화웨이 사태가 기존 미·중 무역분쟁의 확전으로 이어진다면 양국 모두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에서 양측이 신중을 기하리라 본다. 트럼프 행정부는 당초 내년 1월1일부터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해 현행 10%에서 25%로 관세를 올릴 계획이었지만, 최근 중국과 90일 동안의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하면서 일단 보류한 상태다. ‘휴전 기간’에 양국은 무역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사실상 모든 중국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위협 중이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멍 부회장이 체포되자 바로 주중 미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어떠한 횡포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공식 매체와 소셜 미디어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 화웨이 사태로 인한 반미 감정의 차단에 주력하는 등 확산 방지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특히 중국은 현재 진행 중인 대미 무역협상과 관련해 미국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는 한편 미·중 무역 갈등의 진원지이자 중국의 핵심 국가 목표인 중국 제조 2025에 대한 일부 수정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양국의 무역 갈등은 언제든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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