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은) 논의를 다하라!” 12월7일 밤 일본 국회 정문 앞에서 시민 1500여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은 정부·여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항의했다. 낯익은 얼굴도 눈에 띄었다. 2015년 ‘실즈’(SEALDs: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s,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를 주도하며 아베 정권의 전쟁법 추진에 맞섰던 시민활동가 스와하라 다케시 씨(26)였다(〈시사IN〉 제421호 ‘아베산성 앞 일본 시민 분투기’ 기사 참조). 그는 격앙되어 있었다. “국민 다수가 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제대로 된 심의가 이루어져야죠. 멋대로 결정하지 말라고 말해줍시다!” 이런 저항도 연립 여당(자민당·공명당)에 일본유신회까지 더해진 범보수 진영의 수적 우세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연립 여당이 밀어붙인 법안 가운데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하 입관법 개정안)’이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한국 언론은 일본이 고질화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주 허가 자격을 확대한 ‘사실상의 이민국가 선언’이며, 야권은 단순히 이주노동자의 증가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AFP PHOTO12월7일 일본 국회 앞에서 외국인 노동자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출입국관리법(입관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국회를 통과한 입관법 개정안은 2019년 4월부터 시행된다. 주요 내용은 ‘특정기능 1호·2호’라는 2단계의 체류 자격을 신설한 것이다. 특정기능 1호는 기능 실습을 마치거나, 기능과 일본어 시험에 합격한 이주노동자가 대상이다. 농업·간병 등 14개 업종에서 일하고 최장 5년간 체류를 허용한다. 가족 동반은 허용되지 않는다. 특정기능 2호는 고도의 시험에 합격해 숙련된 기능을 가진 이주노동자에게 장기 체류와 가족 동반 입국을 허용한다.

민주 진보 진영은 ‘정부·여당의 자료 제출 거부, 심의 중단, 표결 강행은 헌정 질서 파괴’라며 반발했다. 정부·여당은 문제가 불거지자 법안을 서둘러 처리했다. 12월6일 참의원 법무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사이토 요시히사 고베대학 대학원 교수(노동법)는 “입관법 개정안이 가혹한 기능 실습을 견뎌낸 외국인을 선별해 더욱 강도 높게 일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정안은 1회용 노동력 양산”이라고 비판했다. 여론조사에서도 ‘법안 처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최대 80%에 달했다.

“외국인 실습생 노동 착취용 개정안”

아베 정권은 입관법 개정안이 노동력 확보 대책이며 현재보다 훨씬 넓은 업종으로 이주노동자의 취업 범위를 확대시켜줄 것이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정작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공생사회(共生社會) 만들기가 당론인 야당 연대의 주축, 즉 일본공산당은 반대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아베 정권이 국회에 낸 개정안은 골격조차 불분명한 알맹이 없는 법안이었다. 법안 개정 의의는 물론이고 이주노동자 취업 업종(특정기능 2호 업종은 정해지지 않았다)과 그 규모도 명기하지 않았다. 내각이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정성령(政省令)으로 구체적인 업종을 정하게 했다. ‘일단 틀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정권에 맡기라’는 식이었다. 아베 정권은 ‘노동력 부족’에 관한 이야기만 할 뿐 이주노동자의 인권이나 존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Kyodo News12월8일 새벽 일본 참의원 법무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입관법 개정안 표결을 놓고 실랑이를 하고 있다.

게다가 현행 외국인 기능실습생 제도는 이미 국제사회 일각에서 ‘인신매매’ ‘강제노동’ 따위 비판까지 받고 있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실습생 일부는 폭행·성희롱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실습생 실종’이 급증하는 현실을 은폐하며 사실과 다른 답변을 반복했다. 애초 ‘실종’이라는 표현부터가 문제다. 반인권적 처사에 고통받던 이주노동자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긴급피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이들의 열악한 상황은 언급하지 않은 채 마치 근무지에서 무단 이탈한 것처럼 표현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이유로 실종된 기능실습생이 2017년 기준 22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야당은 전체의 67%에 달하는 기능실습생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폭로했다. 야당 조사 결과 기능실습생의 10%는 과로사 위험이 있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안 심의 과정에서 일본공산당이 낸 자료에 따르면, 2010~2017년 일본에 왔던 외국인 연수생 및 기능실습생 가운데 총 174명이 죽었다. 사망자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연령대는 20대(118명)와 30대(48명) 청년층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10대 5명도 사망자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야당은 급성심부전, 막하출혈 등 사인에 주목했다. 사망 당시 기록을 보면 “기상하지 않고 의식이 없어서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심부전)” “심근경색으로 숙소에서 천장을 쳐다보는 상태로 사망해 있었다” 등 과로사로 의심되는 경우가 많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공장 해체 공사 현장에서 6m 높이의 발판 아래로 떨어져 사망하거나 출근길에 동료들과 함께 탄 미니버스가 전복해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어업 분야 기능실습생 중에는 로프가 다리에 엉키면서 어구와 함께 바다에 빠져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사망신고가 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조사나 검증은 일절 이뤄지지 않았다.

입관법 개정안에 나오는 ‘등록 지원단체’도 논란이 되었다. 이주노동자의 생활과 취업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영리단체에도 문호를 개방했다. 종전의 기능실습 제도보다 규제가 완화되어 브로커의 유입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야권은 경고했다. 등록하지 않은 사업자까지 ‘지원’ 업무에 끼어들어 보수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실종자는 전체의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라고 일축했다.

아베 정권의 이런 행보에 대해 자민당 내 온건파조차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자민당의 한 각료 경험자는 12월9일 일본 최대 진보 언론 〈신문 아카하타〉와 인터뷰하면서 “(이 모든 문제가) 결국 일본인 노동자의 고용, 임금 문제로 되돌아올 것이다. 최저임금법조차 지켜지지 않으면 (빈부) 격차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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