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에 쫓기던 12월6일 목요일 오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단식을 한다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논의 없이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하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해온 손 대표가 결단했다고. 단식은 즉시 조롱거리가 되었다. 손 대표가 큰 결단을 했으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답방이 곧 발표될 것이라는, 농담인지 정보인지 알 수 없는 ‘지라시’도 떠돌았다. ‘만덕산의 저주’(그가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할 때마다 더 중요한 이벤트가 터지면서 묻혀버린다는 징크스)라는, 손 대표를 오래 따라다닌 별명이 다시 회자됐다. 어찌나 심했는지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내일 뭘 발표한다는 지라시 내용은 전혀 사실무근입니다”라고 확인해줄 정도였다.

ⓒ시사IN 양한모

나는 손 대표의 결단에 동의하는 구석이 거의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논의해볼 만한 제도라고는 생각하지만, 그게 정의이고 지금의 제도가 불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식으로 싸울 만큼 선악이 뚜렷한 문제라고도, 원내 3당 지도자가 지금 단식을 할 만큼 급박한 국면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이 모든 반대 의견을 잠시 제쳐놓고, 지금은 손학규 대표를 위한 변명을 할 시간이다.

손 대표는 2012년 대선이 끝난 후 독일로 가서 독일 민주주의 시스템을 공부했다. 비례대표제의 전도사인 최태욱 교수(정치학)는 이렇게 말했다. “귀국 후의 손 대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비례대표제와 합의제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마지막 목표로 삼고 그걸 ‘7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손 대표는 “내 나이가 70이 넘었다. 무슨 욕심을 갖겠나”라고 말했다. 이 노정객이 2013년부터 5년째 줄기차게 말해온 소신과 지금 행동은 분명 궤가 같다.

나는 제3당 대표가 벼랑 끝 전술을 택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노정객이 벼랑 끝 전술을 쓰지 않아도 그의 주장을 (동조는 아니더라도) 경청할 줄 아는 품위 있는 사회가 분명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있었던 몇몇 불운에 빗대어 조롱거리로 소비할 일도 아니라고 믿는다. 선거제도는 헌법에 준하는 결정적이고 중요한 기본 규칙이다. 그걸 다루는 논의라면, 결론이 어떻게 나든, 과정이 품위 있고 존중받을 만해야 한다. 그의 단식에 동의하지 않으나, 존중을 보낸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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