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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가 두려워할 역사를 들추다

김두식 교수(사진)가 해방 전후부터 1960년대까지 법조계 인물과 사건을 풀어낸 <법률가들>을 펴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불멸의 신성가족’의 뿌리를 드러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제5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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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강중인·조평재·윤학기·백석황·이홍규·이정남. 이 가운데 한 명이라도 이름이 익숙하면 당신은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주눅들 것 없다. 1945년 해방부터 1961년 5·16 쿠데타까지 판사·검사·변호사 3005명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분석한 법학자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조차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독자라 하더라도 태반이 금시초문일 이름이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해방 전후 한반도 법조계의 최고 엘리트였지만, 잊히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친일은 숨겨야 할 이력이었다. 중도와 좌파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대개 사라졌고, 남은 이들은 과거를 함구했다. 굴곡진 근현대사를 살아가야 했던 사람 대부분이 겪은 숙명이었다. 법조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록이 없다고 흔적까지 사라지진 않았다. 그들의 꿈과 고민 그리고 좌절이 오늘날 한국 법조계의 유산으로 남았다. 혼란기에 형성된 초기 법조계의 틀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다. 중도·좌파의 빈 공간, 사상 검사의 탄생, 공안과 특수의 경쟁까지. 당시로 돌아가 연원을 들여다보면 새롭게 보이는 오늘날 법조계의 장면이 여럿이다. 김두식 교수가 지난 3년 동안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초창기 법조계 인물과 사건을 ‘발굴’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사IN 이명익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가 펴낸 <법률가들>의 부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이다.

파편화된 기록을 꿰었고, 꼼꼼하게 정리한 다음 대조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는 ‘어제와 단절된 오늘은 없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장면을 계속 마주했다. 방대하고 낯선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내 <법률가들>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부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이다. 2004년 ‘헌법의 풍경’을 그려내고 2009년 법조계 ‘불멸의 신성가족’을 밝혔던 그는 <법률가들>에서 ‘불멸의 신성가족’의 뿌리를 드러냈다.

저자는 해방 전후 법조인의 탄생을 제1 법률가군부터 제3 법률가군으로 나눠 인물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제1 법률가군, 조선 변호사시험 출신인 제2 법률가군, 일제강점기에 서기 겸 통역생을 하다 해방 후 판검사가 된 제3 법률가군의 구분은 하나이지 않은 법조 직역의 시작을 알려준다. 특히 시험 응시만으로 합격증을 받은 1945년 조선 변호사시험 응시생 모임 ‘이법회’ 이야기는 법조계 바깥에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위한 정당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례다. 각주·미주만 1000개가 넘는 600여 쪽 역사책을 쓴 성실한 글쟁이이자 법학자인 김두식 교수를 11월29일 만났다.



3개월 예상하고 시작한 저술 작업이 3년이나 걸렸다던데?

2015년 팟캐스트 <창비 라디오 책다방>을 그만두던 시점에 김홍섭(1915~ 1965년) 평전 프로젝트를 접했다. 김홍섭 판사는 우리 세대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김병로 대법원장·최대교 검사와 함께 ‘법조 3성(聖)’으로 꼽힌다. 청소년이던 1984년 <동아일보> ‘법에 사는 사람들’ 시리즈가 있었다. 훌륭한 법률가를 연속해서 싣는 기획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홍섭 편을 읽으며 법률가 꿈을 키웠다. 그만큼 김홍섭 판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고 여겼다. 김홍섭 판사의 궤적을 따라 초창기 법조계를 조망하는 책을 구상했다. 3개월 정도 투자하면 가볍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공부할수록 질문이 늘었다. 끝도 없는 이야기가 펼쳐졌고 잘 모르는 시기인데 또 재미있고 그랬다.

어떤 질문이었나?

‘과연 그 시대에 훌륭한 판검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당시는 경찰·헌병·정보기관의 고문·조작·불법체포가 일상이던 시기였다. 한국전쟁 초기 학살이 진행됐고 서울 수복 이후 부역자를 처벌했다. 이러한 해방공간 자료를 읽을수록 ‘법에 사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라진 사람들, 잊힌 사람들이 있었다.
ⓒ연합뉴스
11월1일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 모습.

특히 어떤 인물이 그랬나?

발굴이라는 차원에서 김영재·강중인 검사를 꼽을 수 있다. 제 3법률가군에 속하는 이홍규 검사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회창 전 대법관이자 대선 후보의 아버지다. 김영재·강중인 둘 다 1937년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이들은 한국 근현대사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성제대 출신 김영재는 손꼽히는 독립운동가 가문의 아들인데, 일제강점기에 검사로 임용돼 친일 경력이 있다. 해방 후에는 좌우를 왔다 갔다 하다 결국 공산당으로 몰린다. 전쟁이 나자 월북한다. 그나마 김영재는 워낙 유명한 독립운동가 가문이라 기록이 좀 있는 편인데, 강중인은 거의 없었다. 계성고등학교 80년사까지 뒤졌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끝자락에 있었고, 반제동맹 사건으로 붙잡혀가기도 한 이력의 사람이 나중에 친일 검사가 된다. 해방 이후 첫 번째 사법 파동의 중요한 인물이면서 나중에 역시 공산당으로 몰린다. 친일 경력을 너무 많이 반성하다가 그렇게 됐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칼로 가르듯 나눌 수 있는 단순한 시대가 아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이 부분에 대해 “거칠게 평가하자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보았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기대한 것 이상의 영광을 누렸다”라고 책에 남겼다.

과거의 부정적 이야기를 왜 자꾸 하느냐는 이들이 있는데, 긍정적 역사는 안 캐도 된다. 부정적 역사를 자꾸 얘기하는 건 나쁜 일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 책은 법조계에서 중도와 좌파가 사라진 것의 나쁜 영향도 다룬다.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공간, 한국전쟁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게 ‘우리가 승기를 잡은 순간에 상대를 다 죽여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한국전쟁 당시 사라진 사람과 남은 사람에 대한 김성칠 교수의 평가는 책에 따로 적어놨는데 되새겨볼 부분이다. ‘북으로 간 그들이 모두 다 볼셰비키였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던 사람들 또는 양심적인 이상주의자들이 죄다 가버렸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깊이 반성하는 바 있어야 할 것이다’이다. 같은 맥락인데, 다른 편을 좀 인정하고 그래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부제처럼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정당성이 늘 문제가 된다. 이때 작동하는 권위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기 시험 응시만으로 법조인 자격을 딴 그룹 ‘이법회(以法會)’가 있다.

이법회의 존재는 신문 칼럼 같은 데서 두세 번 언급된 적이 있다. 1945년 8월15일 해방 당일 조선 변호사시험이 있었다. 나흘 동안 치는 시험 둘째 날 정오에 일본의 항복 방송이 나왔다. 일본인 시험관이 도망갔고 시험은 중단됐다. 응시자들이 이법회를 만들어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했다. 합격증을 받았고 해방 이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았다. 이법회는 초기 법조계의 중요 인력풀이 됐다. 들어보면 정말 재미있고 황당한 이야기다. 원로 법조인이라면 절대 모를 리가 없는데,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다. 대단한 작업은 아니고, 그게 누구였는지 정도를 밝힌 의미가 있다. 유태흥 전 대법원장(전두환 정권 시절 1981~1986년 재임)도 이법회 출신이다.

벌써 ‘관계자’들의 반응이 꽤 나온다.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두렵다’로 끝나는 짧은 독후감을 올렸다. 정확히 기대했던 반응이다. 판사들이 내 책을 읽고, 60년 후에 어떤 ‘또라이’가 나와서 자기 판결문을 다 쌓아놓고 분석하며 흐름과 모순을 찾아본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두렵다는 말은 그런 마음이 통한 의미 있는 독후감이다.

‘적색 사법관 사건’에 연루된 월북자 남상문의 조카가 영화 같은 가족사를 리뷰로 남겼다.

이 책이 많이 읽히길 바란 이유 중 하나다. 흩어진 월북자 가족이 굉장히 많다. 기록은 없고, 제 능력으로는 다 찾을 방법이 없어서 이후 행적을 쓰지 못한 사람이 많다. 내용을 아는 분이 책을 읽고 연락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남상문 사법관 시보의 가족이 제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남겼다. 공식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자로서 감격스러웠다. 앞으로도 이런 분들이 연락을 주면 만나고 후속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수정을 겸한 2쇄 작업도 하고(웃음).

책을 읽다 보면 이름만 열거된 사람도 꽤 있다. 연락이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남긴 건가?

그런 마음도 있고, 또 별것 아닌 팩트 하나 찾으려고 고생을 좀 했다. 공부하다 보니 예전 기록에 오류가 많았다. 그런데 한 20년 뒤에 또 어떤 이상한 친구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나. 해방공간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이거라도 참고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징검다리 정도 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불필요한 이름을 좀 많이 넣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대중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들이 읽기를 바라나?


모든 사람(웃음). 그냥 청년들. 그다음으로는 한창 어떤 운동 목표에 몸이 달아 있는 사람들이랄까. 어떤 진영이든지 간에 말이다. ‘삶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구나. 나는 늘 옳고 남이 틀린 게 아니구나. 사회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구나’ 하는 사실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8년 현재 이 책의 의미는 무엇인가?


앞서 한 말인데, 법조인들이 두렵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다음에 뭐가 있을까’ ‘밖에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법원이나 검찰 사람들이 자꾸 해봐야 한다. 과거를 비춘 이 책이 할 수 있는 기능이랄까. 법조 비리가 많이 터지면서, 법원이나 검찰 사람들이 이제 바깥 사람들이랑 안 논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노는 문화가 생겼다. 법원 안에 온갖 동호회가 있다. 볼링, 합창, 등산, 비교법 연구회 등. 젊은 판사들은 힘들어죽겠는데, 또 높은 판사에게 눈도장 찍을 방법은 이거밖에 없다. 그러면서 안타깝게도 자기들만의 성이 더 굳건해졌고, 바깥세상 돌아가는 건 더 잘 모르게 되었다. 한 발자국 떨어져 자기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데 이 책이 기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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