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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확대 어찌할 것인가

노동계와 정부·여당이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를 놓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경영계의 요구대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면 노동자는 1년 내내 주 64시간 근무할 수도 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제5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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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주일에 최장 몇 시간 일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주일에 52시간이다. 법정근로시간(40시간)과 연장근로시간(12시간)을 합친 수치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1주일 동안 최장 68시간 일할 수 있다고 해석해왔다. 1주일에서 휴일(토요일·일요일)을 제외했던 것이다. 평일에 52시간 노동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루 8시간(근로기준법상 1일 법정근로시간은 8시간)씩 일하면 모두 68시간(40+ 12+16)이 된다.

그러나 지난 2월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서 1주일 동안의 최장 노동시간을 68시간이 아니라 52시간으로 못 박았다. 1주일은 7일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주 52시간 상한제’다.

2018년 12월 초 현재, 이 제도가 실현 중인 것은 아니다.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지난 7월부터 1주에 최장 52시간까지만 일을 시키게 되었지만, 6개월의 ‘계도 기간’을 주었다. 내년부터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주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키면 처벌받는다.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은 2020년 1월, 그보다 영세한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은 2021년 7월부터 주 52시간 상한제가 적용된다. 1989년과 2003년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된 적은 있지만, 실제로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이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국회는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이전에는 근로시간 상한을 전혀 적용받지 않았던 이른바 ‘근로시간 특례업종’도 26개에서 5개로 대폭 축소했다.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11·21 총파업 대회에서 조합원들이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일의 양이 같고 노동시간을 줄이기 어렵다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다. 하지만 기업 처지에서 추가 고용은 비용이다. 숙련이 필요한 일이라면,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인력을 뽑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찾은 우회로가 바로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다.

탄력근로제에서는, ‘특정 기간의 1주 평균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기만 하면 된다. 지금도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 인정된다. 예를 들어 3개월 가운데 6주는 주 64시간(52+12), 나머지 6주는 주 40시간 일을 시키는 것이다. 계산해보면, ‘3개월 동안의 1주 평균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나온다.

원칙적인 ‘주 52시간 상한제’에서 기업은 일감이 많은 시기에 대비해 인력을 추가 고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행 고용 인력의 노동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사람을 더 뽑을 필요가 없다. 또한 주 40시간을 초과한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수당(통상임금의 50%)을 지급해야 한다. 위의 사례에서 주 64시간이라면 24시간(64-40)에 대해 연장근로수당을 줘야 한다. 탄력근로제가 적용되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12시간에 대해서만 지급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탄력근로제를 활용하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2017년 10인 이상 사업장의 3.4%만이 탄력근로제를 활용했다(관계부처 합동, <노동시간 단축 현장 안착 지원대책>). 최장 노동시간이 주 68시간이었으니, 탄력근로제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탄력근로제를 활용하려면 요건이 까다롭다. 어떤 노동자에게,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어느 날짜에 몇 시간 일을 시킬지 ‘근로자 대표’와 사전에 서면으로 합의해야 한다.


ⓒ연합뉴스
11월10일 열린 ‘위기의 건설산업’ 근로시간 단축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이은권 의원.


그런데 주 52시간 상한제가 되자, 특정 주에 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는 탄력근로제가 기업의 부담을 상쇄할 대안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2월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 보완 입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라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늘리고 실시 요건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에 대해 “6개월 정도로 완화하는 방안이 수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고 방점을 찍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화 교환했어야

현행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면, 3개월 동안 주 64시간 일을 시킬 수 있다. 단위 기간을 잘 조작하면, 6개월 내내 주 64시간 일을 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내년 1분기(1~3월)엔 주 40시간, 2분기(4~6월) 주 64시간, 3분기 주 64시간, 4분기 주 40시간으로 조정하면 된다. 이러면 상반기 6개월과 하반기 6개월의 ‘1주 평균 노동시간’은 모두 52시간으로 합법이다. 그러나 노동자 처지에서는 내년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1주에 64시간씩 일해야 한다. 경영계의 요구대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면, 해당 기업의 노동자는 1년 내내 주 64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로 몰릴 수도 있다.

주 64시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12시간 일하고도 토요일 4시간 더 일해야 채울 수 있다. 뇌혈관·심장·근골격계 질병이 업무상 질병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고용노동부의 기준도 초과한다. 기준에 따르면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과로사 합법화’라는 거친 비판이 나온다. 박성우 노무사(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회장)는 “탄력근로제는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거나 교대제인 사업장에서 쓰이는 생소한 제도였다. 단위 기간이 확대되면 양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탄력근로제와 무관했던 사업장들까지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자칫 사회적으로 초장시간 노동이 당연해질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첫 회의에서 재계·노동계 대표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노동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 탄력근로 단위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회가 근로기준법을 개정한 2월엔 탄력근로제 확대를 꺼내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2년 12월31일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 확대 등 제도 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부칙을 달았을 뿐이다. 당시 논의 상황을 잘 아는 여당 관계자는 “지금도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가 있고 3%대밖에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단위 기간을 확대할 필요성이 없다는 게 여당 생각이었다. 반면 야당은 논의하자고 했다.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이 완료되는 시점인 2022년까지 논의하자고 이야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일단 노동시간을 단축한 뒤에 논의하기로 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 전문가는 “어느 나라나 노동시간 단축을 연착륙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노동시간을 유연화한다. 국회에서 법을 개정할 때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성을 교환했다면 문제가 이런 식으로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간 유연화라는 연착륙 수단을 살릴 기회를 놓쳤고, 결과적으로 노동시간 단축 자체도 (기업의 반발로) 어려워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결정해놓은 상태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를 생짜로 하려니 노동계는 당연히 반발하는데, 노동계에 줄 보상도 뾰족하게 없다. (정부·여당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정년 연장 때랑 똑같이 되어버렸다”라고도 했다. 박근혜 정부 때 국회가 정년 60세 연장을 입법한 뒤 임금체계 개편은 나중으로 미룬 상황을 가리킨다. 정년 연장이 ‘기득권’이 된 상황에서 노동계는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에 사후적으로 동의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정부가 지침으로 밀어붙이다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말았다.

단위 기간 확대, ‘담론’을 넘어 ‘의제’로

정부·여당은 올 하반기부터 ‘탄력근로제 확대 연내 입법’을 압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22일 출범한 사회적 대화 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탄력근로 확대 논의를 넘기면서 일단 연내 입법은 물 건너갔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 문제를 논의할 단위인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 제도개선위원회는 공익위원 인선에 대한 정부와 한국노총의 이견으로 한 차례 파열음을 냈다. 민주노총은 아예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가 “줬다 빼앗는 최저임금 인상”이었다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는 “줬다 빼앗는 노동시간 단축”이라 보고 있다. 김연홍 민주노총 사무부총장은 “주 52시간은 진작 했어야 하는 걸 뒤늦게 한 것이고 앞으로 더 단축해가야 한다. 탄력근로 단위 기간을 왜 연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인지 정부·여당은 어떤 조사도 설명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부는 ‘민주노총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사실상 (사회적 대화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논의의 공을 넘겨받은 경사노위의 한 관계자는 “단위 기간 확대만 가지고 ‘나쁘다’ ‘꼭 필요하다’는 양극단 이야기만 오갈 뿐, 구체적 내용을 가지고 이해 당사자들이 논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해 당사자는 엄연히 노사다. 노동시간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담론’을 넘어 ‘의제’로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단위 기간을 확대하면서도 노동자의 건강권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일일 노동시간을 제한하거나 과로사 인정 기준을 반영하는 식으로), 현재는 선언적으로만 규정되어 있는 ‘(탄력근로로 손실될) 임금 보전’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 노조 조직률이 10.3%에 불과한 현실에서 노동시간의 주권을 노동조합이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등 핵심적인 쟁점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의 명분은 노동시간 단축의 연착륙인데, 정작 노동시간 유연화의 필요성에서 노사정이 대립하는 국면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시간 단축이 먼저라고 보는 반면, 기업들은 지금 당장 탄력근로제를 확대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여당은 후자에 무게를 두는 듯하다. 이렇게 사회적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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