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11월14일 기자들에게 자료를 배포하고 대체복무제 방안(1안·2안)을 공개했다. 1안을 살펴보면 대체복무자들은 육군 현역병 복무 기간(2020년 기준 18개월)의 2배인 36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합숙하며 취사, 물품 보급 등 업무를 담당한다. 대체복무 허용 인원은 연간 600명 수준이며, 대상자를 판정하는 심사위원회는 국방부에 설치한 뒤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2안은 대체복무 기간을 육군의 1.5배인 27개월로 하고, 기관을 교정시설과 소방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는데 1안이 유력하다. 국방부는 11월 초에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반대가 강해 시기를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정부의 대체복무안이 징벌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군인권센터 등 53개 단체는 11월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체복무제 방안 수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 육군의 2배로 하고 복무 영역을 교정시설로 단일화한 국방부 안은 사실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또 다른 처벌이다”라고 주장했다. 11월19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면담했다. 최 위원장은 국제인권기준을 고려해 “대체복무 기간이 육군 현역병 기준의 1.5배인 27개월보다 길면 안 된다”라고 우려를 전했다.

ⓒ연합뉴스11월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기자회견에서 감옥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

국방부와 시민단체 간에는 대체복무제에 관한 근본적인 시각차가 있다. 국방부는 대체복무로 인해 현역 복무 대상자가 이탈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고려한다. 국방부 시각에서 대체복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가해지던 처벌을 대신하는 ‘예외적인 구제책’이다. 국방부는 대체복무 기간을 육군 현역병의 2배인 36개월로 정한 이유에 대해 “현역병과 산업기능요원,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자와 형평성을 유지하고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대체복무제 도입과 군 인권 개선 맞물려가야

시민단체는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측면에서 대체복무제에 접근한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과 맥이 닿아 있다. 대법원은 11월1일 “처벌을 통해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자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위협”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헌법 조항 속 권리인 ‘양심적 자유’를 실제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변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 이후 사회 인식 변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국방부처럼 제도를 만드는 이들의 역할은 대체복무제가 ‘기본권 행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권리를 보장할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징병 문제 연구가이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징역을 마친 백승덕씨는 “대체복무제 형태가 좀 더 자유롭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정부 안은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라기보다는 행정적으로 손쉽게 도입할 수 있는 방안이다”라고 말했다. 백씨는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방안이 징벌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결정적인 결함을 꼽기는 어렵다. 문제는 모든 논의가 거기에 멈춰 있다는 것이다. 그 탓에 공공에 기여하는 방식의 대체복무제를 구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됐다”라고 덧붙였다.

ⓒ시사IN 신선영11월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을 받은 오승헌씨(가운데).

한국의 특수한 안보 상황이라는 이유 앞에서 군대와 관련된 논의는 번번이 가로막힌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논쟁 자체는 특수하지 않다. 국제인권기준에 비추어 모범적으로 대체복무제를 운영하는 국가로 꼽히는 독일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다.

서독은 1949년 헌법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명시하고 1956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대체복무를 허용할 병역거부자 인정 범위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국방부와 여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은 대체복무제를 최대한 엄격하게 운용하고자 했다. 당시 서독은 분단국가였으며 냉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국방부와 보수 정당은 공산 진영의 군사적 위협과 군복무자와 형평성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사회민주당과 시민단체는 ‘양심의 자유’라는 권리의 측면에서 대체복무제를 바라보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폭넓은 인정을 주장했다. 제한적 형태로 출발한 대체복무제는 점차 군복무와 같은 비중으로 확대됐다. 흔히 독일은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급증한 사례로 언급되지만, 실상은 대체복무제가 담당하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필요가 커지면서 독일 정부가 대체복무 인원을 더 늘린 것이다. 2011년 독일은 징병제를 폐지했다.

대체복무제 도입과 군 인권 개선이 맞물려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단체 ‘전쟁없는 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후진적인 곳 중 하나가 군대다. 병사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니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고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대체복무제도 징벌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8월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병역 판정 검사자 527명을 대상으로 한 대면조사 결과는 그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36쪽 표 참조). ‘대체복무 기간이 육군 복무보다 길어야 하는 이유’라는 조사에서 입영 대상자들은 ‘군복무에 비해 자유로운 생활, 평등한 관계 등 기본권 제약이 덜할 것이므로’(44%)를 가장 많이 꼽았다. 두 번째로는 ‘군복무에 비해 업무 강도가 낮을 것으로 예상돼서’(28%)라는 답변이 많았다. 군대 내 인권 수준과 병사들의 처우가 나아져야 대체복무제에 대한 인식도 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용석 활동가는 “군복무와 대체복무제 중 어느 쪽이 더 나쁜지를 저울질하며 젊은이들을 불행 경쟁으로 내모는 구도는 끝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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